지난 글에서는 기원전 15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다는 가설들을 살펴보고, 그 가설들이 가진 문제점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기원전 13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는 가설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노역의 장소: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는가? (1)

「출애굽기 1장 11절」에는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국고성 비돔(Pithom)과 라암셋(Raamses)을 건축하게 하였다는 진술이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비돔은 ‘아툼의 집(Per-Atum)’이라는 뜻으로, 자기 스스로 태어난 신이자 저무는 태양을 주관하는 신, 아툼의 이름을 딴 지역입니다. 이 지역이 정확히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과 논쟁이 많습니다. 최근의 학자들은 나일 델타 동부 지역에 위치한 ‘텔-엘-마스쿠타(Tell El Maskhuta)’가 비돔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곳에서 아툼 신전이 발굴되었기 때문입니다.

‘텔-엘-마스쿠타’에서 1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텔-엘-레타바(Tell El Retaba)’에서도 아툼 신전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람세스Ⅱ(기원전 1279-1213년)’의 조각상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이곳이 「출애굽기 1장 11절」에 나타난 라암셋이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곳이 본래의 비돔이었고, 이 지역이 붕괴한 이후 ‘델-엘-마스쿠타’가 재건되면서 비돔이라는 지명을 이어받게 되었다고 봅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텔-엘-마스쿠타’는 힉소스 시기(기원전 1650-1550년)에 건설되었다가 붕괴되었고, 기원전 7세기 말 ‘네카우Ⅱ(기원전 610-595년)’에 의해 재건됩니다. ‘네카우Ⅱ’는 남왕국 왕 ‘요시야’를 죽였던 바로 ‘느고’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노역해서 건설한 비돔은 ‘텔-엘-레타바’가 되며, 이는 ‘람세스Ⅱ’ 시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노역은 ‘람세스Ⅱ’의 치하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의 비돔은 ‘네카우Ⅱ’에 의해 재건된 ‘텔-엘-레타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 두 장소가 비돔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툼 신전이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비돔으로 확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또 ‘텔-엘-레타바’에서 ‘람세스Ⅱ’ 시절의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출애굽 사건에 나타난 노역 장소가 이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출애굽 사건이 기원전 13세기에 발생했다는 전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순환오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라암셋의 경우, 힉소스 시대에 수도였던 ‘아바리스(Avaris)’에 가깝고 나일 델타 동북부에 위치한 ‘칸티르(Qantir)’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이름은 비돔과 마찬가지로 ‘람세스의 집(Per-Rameses)’이기 때문에 본래는 ‘피람암셋’ 또는 ‘피람세스’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이름에 ‘피’가 빠졌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승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누락이라고 봅니다.

▲ 칸티르 유적, 람세스Ⅱ의 발만 남은 조각상 ⓒ위키피디아

비돔은 장소를 특정하는 일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라암셋의 경우는 장소도 거의 명확하고, 어느 시기에 건설되었는지도 명확합니다. 이 도시는 본래 ‘세티Ⅰ(기원전 1294-1279년)’에 의해 여름 궁전으로 건설되었는데, ‘람세스Ⅱ’ 시기에 증축되어 애굽 제19-20왕조의 수도가 됩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라암셋을 건설했다면 그 시기는 ‘세티Ⅰ’ 혹은 ‘람세스Ⅱ’의 통치기로 볼 수 있습니다만, 이곳은 애굽 제20왕조까지 수도였기 때문에 기원전 1150년 이후 이집트의 국력이 꺾일 때까지는 지속적인 보수와 증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라암셋에서의 노역은 애굽 제19왕조 시기(기원전 1295-1186년) 어느 때라도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노역 시기를 애굽 제19왕조 때로 한정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막아선 민족들: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는가? (2)

출애굽 사건이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다고 보는 성경적 근거는 또 있습니다. 「민수기 20장 14-21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왕의 대로를 통해 이동하는 가운데 에돔과 충돌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길을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민수기 22장」에는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민족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저주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1930년대에 시행된 남부 트랜스요르단 발굴 작업은 고대 에돔과 모압에 속한 지역들이 기원전 20세기경에 붕괴되었고, 기원전 13세기에 이르러서야 재건되었음을 밝혀냈습니다. 즉 에돔과 모압 지역은 기원전 20세기부터 13세기까지 긴 공백 상태였는데, 기원전 15세기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막아선 에돔과 모압은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애돔과 모압이 재건된 기원전 13세기 이후에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1930년대의 조사 결과가 상당수 뒤집히고 있습니다. 트랜스요르단 지역에서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1500년경)로 추정되는 도기가 발견되는 양은 확실히 적어지긴 하지만, 유적과 유물의 양이 적다고 해서 이 시대에 정착해 살고 있던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기원전 13세기 이후로 이 지역이 크게 부흥했다거나 마을의 수가 급증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도 또 살펴보게 되겠지만, ‘메르넵타(기원전 1213-1203년)’ 시기에 기록된 「국경관리인 보고서」에는 에돔 족속에 대한 언급이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에돔 족속은 ‘사수(Shasu)’와 연결되어 나타나는데, 그 이전에 기록된 자료들에 나타난 사수와 이 시기의 에돔을 똑같이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에돔이라는 하나의 민족명이 나타납니다.

이전까지의 기록에서 에돔이라는 민족명을 찾을 수 없다는 점과 일부 학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사수’가 에돔 민족과 연결된다는 점을 보면, ‘메르넵타’ 이전, 기원전 13세기 이전에는 에돔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국가 또는 민족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이동할 때 그들을 막아선 집단이 에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민족이 아니었고, 후대의 역사가들이 그들에게 에돔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만, 「민수기」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에돔과 모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집단의 방해는 기원전 13세기 이후에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카데쉬 조약: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는가? (3)

‘람세스Ⅱ’는 팔레스타인의 패권을 놓고 히타이트(성경의 헷족속)의 ‘무와탈리Ⅱ(기원전 1295–1272년경)’와 카데쉬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5년간 지속된 전쟁은 애굽에게 치명상을 안겼습니다. 이 전쟁의 마지막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는데, ‘무와탈리Ⅱ’가 ‘람세스Ⅱ’에게 종전을 요구하였고, 더 많은 피해를 입었던 이집트 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 카르낙 신전에 기록된 카데쉬 조약 ⓒ위키피디아

전쟁이 끝나고 16년이 지난 후, 애굽의 ‘람세스Ⅱ’와 히타이트의 차차기 왕인 ‘하투실리Ⅲ(기원전 1267-1237년경)’는 평화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것이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알려진 ‘카데쉬 조약’입니다. 이 조약의 내용 중 ‘애굽을 위한 방어 동맹’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에서 학자들이 주목한 부분은 바로를 격분시킨 종들이 범하는 ‘또 다른 범죄’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또 다른’이라는 표현이 ‘람세스Ⅱ’의 의도적 삽입구라고 말합니다. ‘람세스Ⅱ’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 애굽을 탈출한 일은 범죄로 여겨졌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히타이트와의 조약 속에 그 내용을 첨가했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주장은 근거가 빈약해 보입니다. 만약 이 조항에서 앞선 내용이 ‘종들의 반역’이었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범죄’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선 내용은 단순히 ‘바로를 격분하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이는 속국이 조공을 바치지 않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열왕기」의 내용을 살펴볼 때, 일반적으로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경우는 종주국을 향한 반역으로 이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상황에 따라 조공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바로를 격분케 하는 종들의 행동은 다양하게 추측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또 다른 범죄’가 노예들의 탈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은 크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주장입니다.

애굽 서신 속 증거: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는가? (4)

앞서 살펴본 ‘메르넵타’ 시기 「국경관리인 보고서」는 에돔이라는 민족에 대해서 알려줄 뿐만 아니라 기원전 1200년경 어떠한 이유로 인해 애굽에 유입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도 알려줍니다. 특히 그들이 머물도록 했다는 ‘테쿠(Tjeku)’는 「창세기 47장 1절」과 「출애굽기 8장 18절」에 나타난 ‘고센 땅’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고센 땅’에 정착했다고 해서 이들을 이스라엘 민족과 연결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원전 13세기 애굽 제19왕조 시기에 애굽에 유입된 이방인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켰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본다면, 「출애굽기 12장 40절」에 나타난 애굽 거주 430년은 잘못된 연대 기술이 될 뿐이며, ‘요셉’을 비롯한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이주한 시기는 빨라야 기원전 1400년 전후가 될 것입니다.

애굽에 유입된 민족에 관한 보고서가 ‘메르넵타’ 시기인 기원전 13세기 말에 기록되었다면, ‘세티Ⅱ(기원전 1200-1194년)’ 때에 기록된 서신도 있습니다. 이 서신은 애굽을 탈출한 노예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서신은 ‘세트Ⅱ’ 시기에 도망친 노예 두 명을 추적한 내용을 기록하면서, 경계를 넘어간 노예들, 광야로 도망친 노예를 더 추적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를 묻습니다. 이 서신 자체는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없습니다. 또 노예의 탈출은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노예가 탈출했다는 상황을 출애굽과 연결시킬 수도 없습니다.

▲ 노예 추적에 관한 서신이 담긴 파피루스 Anastasi Ⅴ ⓒThe British Museum

다만 ‘세트Ⅱ’ 시기 애굽에서 노역하던 노예들이 애굽의 경계를 넘어 광야로 도망친 사실이 있었고, 이들이 광야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애굽 관료들은 이들을 생각보다 집요하게 추적했다는 점을 알게 합니다. 어쩌면 그들을 추적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에 이런 집요한 추적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서신을 통해 이런 생각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두 명의 노예가 탈출했을 때도 집요하게 추적하던 애굽인들이 노예였던 민족이 통째로 탈출하는 과정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출애굽기」는 10가지 재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바로는 마음을 바꿔 이스라엘 민족을 추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노예 민족의 해방을 바로가 용인했을까의 문제는 고민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이 민족 단위로 애굽에서 벗어났다면, 탈출보다는 추방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 증거: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는가? (5)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500-1200년경)가 끝나갈 무렵 팔레스타인 지역에 광범위한 파괴 활동이 일어났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 중 상당수는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정복 지역이었습니다. 이를 이유로 기원전 13세기 후반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고학 작업이 진행될수록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리고의 경우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 성읍이 존재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그곳에 분명 성읍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여호수아 6장」에 나타난 성벽의 자취는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아이(Ai)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성읍은 기원전 3000년대 중반에 파괴되었고, 기원전 12세기까지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원전 13세기에 아이가 파괴되고 정복되었을 수는 없습니다. 벧엘의 경우는 기원전 13세기 후반에 파괴된 것은 맞지만, 무력에 의한 파괴가 아니라 거대한 화재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여호수아」에 나타난 몇몇 성읍들이 기원전 13세기에 파괴되었고, 이러한 파괴 현상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발견되었지만, 이들의 파괴가 하나의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 파괴된 시기도 「여호수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일정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난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범위한 파괴 현상을 이스라엘 민족의 이동과 연결하려면 「여호수아」에 나타난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났다는 전제를 두어야 합니다. 이런 전제가 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의 어떤 지역에 정착했고, 그곳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세력을 넓혀갔으며, 「여호수아」는 이를 극적인 정복 전쟁 이야기로 각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원전 13세기에 출애굽이 일어났다고 보는 가설의 근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출애굽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 사건의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한정했을 때, 그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며 그려낼 수 있을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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