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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체인지 한국교회,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마 25:31-46; 학 2:6-9; 계 11:15-18)대림절 넷째 주일(12월19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12.16 22:51

1.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는 주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천사들의 초인 ‘만남과 화해’의 촛불을 밝힙니다. 들판의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나심을 알렸던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인간의 만남을, 또 그 만남의 참된 의미가 ‘화해’였던 것을 알았나 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 ‘만남과 화해’의 촛불을 밝히며 요한계시록 본문에 나오는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는 하나님을 마태복음 본문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선을 행함으로,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을 행함으로 만나는 세세토록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오늘 구약 학개 말씀에,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 재건된 스룹바벨 성전(기원전 516년 완공)에 평강을 주시는 것처럼, 오늘 코로나19의 위기 속에 있는 한국교회에 평강을 주시며 다시 회복과 소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말씀부터 볼까요?

▲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계 11:15-17)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가장 먼저 하늘에서 찬송이 크게 울려 퍼집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도 완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 찬송합니다.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이렇게 영원하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그러나 분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8)

이방들이 분노합니다. 여기서 이방들은 시편 말씀에 예고되었죠?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시 2:1-2)”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통치자와 관원, 곧 오늘날 관료(우스개로 한국정당에는 여당과 야당, 그리고 관료당이 있다고 합니다)로 등장하죠?

그러나 시편 말씀처럼 하늘에 계신 이가 그들을 비웃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3-6).” 그리스도를 시온산에 왕으로 세우시고 천하만국을 심판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베푸시고,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멸망시키십니다. 여기서 땅을 망하게 한다는 말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이들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심판 주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이 땅에 화해의 주님으로도 오셨습니다. 그러나 분노하는 이들,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그 만남을 거부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화해 손길을 뿌리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통치자와 권력자의 눈에는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미는 주님의 손은 보잘것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 말씀은 그 거부와 뿌리침을 좀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합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2.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오늘 복음서 본문 마태복음 25장은 ‘천국비유장’입니다. 천국에 관한 비유로, 지난주 말씀인 ‘열 처녀 비유(마 25:1-13)’에 이어 ‘양과 염소의 비유(31-46)’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자, 곧 하나님께서 만남과 화해의 주로 오시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시고 영생으로 인도하시고 이방들에게는 영벌에 처하십니다. 이를 위해 먼저 인자가 영광 보좌에 앉습니다(시편은 그 보좌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 곧 시온산에 있다고 하죠?). 말씀을 볼까요?

▲ 양과 염소의 비유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1-36)

인자는 오른편에 둔 이들에게 복을 베풉니다. 이유는 주께서 고통 가운데 계실 때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인들이 묻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 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7-40)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인자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마 25:41-43)

왼편에 있는 이들에게는 저주를 내립니다. 주께서 고통 가운데 계실 때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도 묻습니다.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4-46)

오늘 아기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우리 주변에 헐벗은 모습으로, 병든 모습으로, 옥에 갇힌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나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유롭지만, 동시에 서로 배려하고 돌보는 그 따스한 공동체가 어느 순간 개인의 자유는 각자도생으로 치닫고, 사람들 간의 소통과 연대는 사라지고 평등은 무늬만 엿보입니다.

3. 경쟁과 각자도생, 선착순의 군대 문화

사실 자유와 평등은 영원한 인류의 숙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로 우리 개인을 자유롭게 하셨지만(요 8:32), 또한 우리들 서로의 관계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인, 평등을 원하십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각자도생하는 강퍅한 세상이 아니라, 서로 돕고 배려하며 베푸는 세상을 만들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평등입니다.

사실 ‘평등(equality)’의 종류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수량적 평등(numerical equality), 비례적 평등(proportional equality), 기회의 평등(equality opportunity)이 그것입니다. 먼저 수량적 평등은 ‘결과의 평등(equality of result)’으로 알려져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욕구나 능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사회적 자원을 똑같이 분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게 제공되는 공공부조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해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자원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례적 평등은 개인의 욕구, 노력, 능력, 기여에 따라 사회적 자원이 다르게 분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공평한 처우(fair treatment)’, 혹은 ‘공평(equity)’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보험의 경우, 보험료(contribution)를 많이 낸 사람에게 더욱 많은 급여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그 예입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일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발상입니다.

마지막으로 기회의 평등은 과정상의 기회만을 똑같이 평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과의 평등 여부는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죠? 따라서 과정상의 기회만 평등하다면 그로 인한 결과의 불평등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기회의 평등입니다. 주어진 조건만 같다면, 결과가 다르게 나와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젊은 세대는 비례적 평등과 기회의 평등을 요구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고, 적어도 과정상의 기회도 공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은 모두 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논리 구조 아래 있습니다. 약자 배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착순의 군대 문화입니다. 이기는 사람이 ‘장땡(제일 좋은 수를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물론 수량적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쟁과 각자도생! 누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양문 옆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사실 이 베데스다 연못은 물이 좋은지, 아니면 가끔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인 후에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 어떤 병이든지 다 낫게 되어 경쟁이 심각한 곳이었습니다.

오늘도 경쟁에 지친 38년 된 병자, 또한 도와줄 친구 하나 없는 이 병자에게 예수님은 경쟁을 통한 그 베데스다 연못의 논리가 아니라, 병들었기 때문에, 약자이기 때문에, 편들어 주시고 고쳐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강퍅한 자본주의 논리와 다른 예수님의 논리, 하나님 나라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죄인을 부르시는 참 사랑의 하나님 말씀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4. 빅체인지 한국교회의 다섯 가지 사역?

코로나19 이후, 세상 속 한국교회는 이렇게 세상과 다른 가치와 논리로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미래 흐름은 무엇일까요? 또한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어디로 되돌아가야 할까요?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문미래학자이자 목회자인 최윤식・최현식 목사는 이 두 가지 큰 질문에 대해 『빅체인지 한국교회: 팬데믹 이후, 하나님이 세상을 빅체인지 하신다』(생명의말씀사, 2021)라는 책에서 몇 가지 해법을 내놓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PART 3. 한국교회, 빅체인지를 이끌라’에서 한국교회가 최우선으로 진행해야 할 새로운 사역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① 신중년을 이끌라.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② 가정 회복을 이끌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③ 메타버스 영성을 이끌라. 새로운 종교 공간이다. ④ 통일 준비를 이끌라. 한민족의 역사적 사역이다. ⑤ 지구 회복을 이끌라. 창조 대명령의 완성이다.”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먼저 ‘신중년을 이끌라’에서 ‘신중년’은 ‘더 건강하고 똑똑해진’ 만 60~75세 사이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50대 중년, 60~70대는 노년이라고 했지만, 이들은 주관적으로 자기 나이를 훨씬 젊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앞으로 청소년이나 청년보다 더 방황하는 세대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성공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할 세대가 바로 이 신중년입니다. 이들을 잘 이끌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중년에게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생각하는 신중년과 세대원 수별 가구 비율

둘째 ‘가정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근 들어 새로운 가족 개념으로 ‘나노 가족’(Nano Family)이 등장했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족은 더 적게 세분되었습니다. 비혼 동거 가족, 동성 결합 가족이 늘어나며 법적 가족에 대한 논쟁도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1인, 혹은 2인 가구의 ‘외로움’과 ‘소외’는 치유해야 할 가장 큰 시대적 고통이 될 것입니다. 최근 반려동물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1인 가구의 외로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정의 건강한 회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셋째 ‘메타버스 영성’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종교의 새로운 공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비대면 환경과 온라인 기반 환경, 나아가 메타버스 떠나지 않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청년, 청소년, 어린이 세대를 아우르는 ‘MZ세대’와 미래에 나타날 ‘A세대(Z세대를 이을 알파세대)’입니다. 이들에게 메타버스는 지금껏 만나 보지 못한 새로운 종교 공간이 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단들도 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기성세대는 비대면 환경, 온라인, 메타버스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와 교회는 떠나도 이단들은 그 공간을 새로운 종교 공간, 포교 공간으로 차근차근 점령해 갈 것이다. 세상도 대면 환경으로 대부분 돌아가지만, 비대면 환경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필자는 코로나19 이후에 ‘혼합 대면’(Mixedtact)이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면(tact) → 비대면(Untact) → 대면(tact)’으로 전환이 아니다. ‘대면 → 비대면 → 혼합 대면(Mixedtact)’으로 전환이다. 교회도 이런 트렌드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혼합 대면은 일상의 주요 접촉 방식은 대면 접촉 방식으로 회귀하지만, 코로나19로 얻은 비대면 접촉 방식의 장점을 십분 살려서 둘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넷째 ‘통일 준비’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명이자 지금이시대 우리들의 사역입니다. 저자들에 의하면, 통일은 3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일찍이 독일의 통일에서 서독 교회가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역사적 소명이기에 한국교회가 통일과 통일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지막 다섯째 ‘지구 회복’입니다. 이것은 창조 명령의 완성이자 피날레입니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인간에 의한 지구 환경 파괴의 결과물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는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세계 전부의 치유와 회복, 구속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괴되고 훼손된 지구를 회복시키는 사역은 하나님의 뜻이자 창조 대명령의 완성입니다.

이렇게 이 5가지 사역은 한국교회를 향한 중요한 시대적 소명입니다. 따라서 이 사역들을 회복하고 지키고 세우는 교회는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맺는말에서 다음과 같이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은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에 필요한 빅체인지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도의 빅체인지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한 사람이, 한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성품과 뜻)으로 빅체인지하면 한국교회 전체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하나님의 기준(성품과 뜻)은 알아듣고 이해하기에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이기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당연히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성령에 사로잡히면 가능하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순종할 수 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도 세상(애굽)에서 배운 모든 지식, 기술, 지혜와 물질(부)을 창조 대명령과 지상 대명령을 준행하는 데 온전히 사용해야 한다. 부디 이 책이 이런 거룩한 도전을 시작하는 교회, 하나님의 성품과 기준으로 빅체인지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5. 내가 이 성전에, 이 교회에 곳에 평강을 주리라!

오늘 구약 본문 학개서 말씀은 과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입니다. 민족의 역사에서 빅체인지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적 빅체인지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점에 무엇이 있었느냐? 바로 하나님의 성전 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업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에 전념치 못하여 공사를 시작한 지 16년이 지나도록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학개는 온 백성이 힘을 합해 성전공사를 끝마치도록 독려하기 위해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 선지자 학개와 성전 재건

선지자 학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건축자들을 향하여 여호와 안에서 용기를 새롭게 하고 삶 속에서 거룩함을 회복하며 우리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라고 촉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렇게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말씀이죠? 말씀을 볼까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6-9)

그렇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이곳에, 이 교회에 평강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 마지막 넷째주일을 맞아 빅체인지 하는 한국교회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 넷째주일, ‘만남과 화해의 촛불’을 밝히며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계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선을 행하는 것에서 가능합니다.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십니다. 경쟁과 각자도생, 선착순의 군대 문화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그런 하나님 나라, 그런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평강이 늘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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