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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되고 거짓된 거룩을 버려라“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브리서 10:5-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12.21 15:28
▲ 매일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우리의 거룩은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상중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외부의 상황에 따라 누릴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평안은 항상 우리 안에 있습니다. ‘진심으로’ 평안을 누리고자 선택하면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평안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이 우리를 충만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복음성가 가사에,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가 있습니다. 이 가사는 요한복음 14:27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예수님은 ‘나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를 대비시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평화’는 로마제국의 군대, 힘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의미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평화로운 세상이야!’라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실상 이 평화는 로마제국의 지배계급들에게만 해당되는 평화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민중들에게는 로마의 평화란 로마의 폭력과 착취로 고통 받는 제국주의 체제, 즉 거짓된 평화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 61:1-2의 말씀에 메시아가 오셔서 하시는 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이지만, 당시에는 더욱이나 가난한 사람들, 포로 된 사람들, 갇힌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평화’는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언젠가 이루어져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포로 된 사람들이 포로로부터 벗어나야지만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평화는 이미 각자에게 주어진 완전한 평화였기 때문입니다.

외부적인 상황에 따라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핍되었다거나, 무언가를 더 얻어야 한다는 식의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내 안에 완전한 평화가 주어져서 평화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삶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중에 ‘오미크론’이라는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유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백신을 만들어내는 제약회사 또는 국가의 이익 때문에 가난한 아프리카는 백신을 거의 공급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오미크론이라는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백신 물량이 부족하다면 백신이 없는 곳에서 제조 역량을 늘려서 백신을 더 생산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제조사를 늘려서 공급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다. 다른 질병과는 달리 코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모든 인구가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여행금지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백신 접종이 늦어질수록 더 많은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나 재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가 백신의 자발적 허가(voluntary license)에 동의해서 기술을 공유하고 더 많은 곳에서 백신을 제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니면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발동해야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매우 소모적인 과정이다.

에이즈나 다른 팬데믹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상황이 예측됐기 때문에 2020년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 정부는 팬데믹 기간 동안만이라도 코로나19와 관련한 의학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유예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이윤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백신 구매 계약을 한 국가들은 필요한 백신보다 더 많은 물량을 주문했고, 코백스의 물량까지도 가져갔다. 모두에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음에도 부유한 국가들은 공급을 제한해 희소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백신 공급 부족은 제약사의 CEO, 미국, 영국, EU의 수반들이 가능한 방안을 막아왔기 때문에 발생한 인위적인 상황이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기 위한 캠페인 연합인 민중의백신캠페인(People's Vaccine Campaign)은 처음부터 기술 공유, 기술 이전, 지적재산권 유예를 요구해왔다. 지적재산권에는 특허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작권, 기업 비밀 등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 부족 문제, 코로나 진단 검사기, 개인보호장비, 백신의 문제, 그리고 치료제의 문제까지 모두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백신을 구하기 위해서는 제약사 CEO와 관계가 있어야 하거나, 아니면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해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 <오마이뉴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336277 기사 중>

결국 돈 때문에 코로나 변이인 오미크론이 발생했고 앞으로도 다른 변이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정의롭거나, 평화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내 안에 평화가 이루어진 사람,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불의를 보고 침묵 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안의 완전한 평화가 확장되기를 원하기에 삶의 실천으로 이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마음을 떠올려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사랑의 표현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도 하게 됩니다. 결혼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지만 ‘사랑’이 이루어졌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지 못 한 것이지, 사랑을 하지 못 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은 당시의 위선적인 거룩, 거짓된 거룩에 대해 폭로하시며 진정한 거룩이 무엇인지,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5-6절의 말씀입니다. “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6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신다.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원하지 않으셨다,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아모스 5:21-24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당시의 민중들은 제사, 예물, 번제, 속죄제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식민지 사람들이 어떻게 율법에 나와 있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나 로마와 결탁한 이들 또는 일부 부유한 이들만 할 수 있는 종교 행사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율법은 당시 민중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기 바빴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처럼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10:1 말씀에도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일 뿐이고, 완전하게 할 수 없고, 오히려 죄에 대한 인식만 더욱 키우는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죄인을 더 양성하는 폐기되어야 할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7-9절 말씀입니다. “7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8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입니다. 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첫 번째 것, 즉 율법을 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폐기된 첫 번째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인가요? 10절 말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0절을 잘 이해하기 위해 로마서 6:1-3의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1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2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3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어 로마서 6:12-14의 말씀입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자 이 땅 가운에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히브리서는 행위로서 누군가에게만 점유되어 있는 ‘거룩’은 거짓이라고 폭로합니다.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불완전하고, 나는 결핍이 있고, 나는 모자란 사람이야 그러니 거룩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는 이미 거룩하다.’고 선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과 연합하여 완전한 거룩함을 두르고 거룩함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거룩해져야 한다며 율법에 갇혀 개인적인 종교생활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율법을 넘어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거룩함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거룩함이 삶을 통해 드러나게 하십시오. 우리 안의 거룩함이 확장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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