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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는 길>이 퀴어 영화라고?<나에게로, 우리에게로 가는 길>, 함께 걷는 영화다!
정리연 | 승인 2021.12.21 16:03
▲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로 가는 길>의 출연진들과 감독과의 만남의 시간. 왼쪽부터 상영회를 주최한 무지개센터 황용연 목사, 비비안 님, 나비 님, 변규리 감독이다. ⓒ무지개센터 제공

“띵~”

앗, 편집장님의 개인 톡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이건 취재를 가야한다는 명령(?)일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늦은 시간이라 국장님 가시기가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영화도 보시고 간략하게 기사 하나 쓰실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행사 소개문과 신청 링크를 보내셨다.

“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가칭) 준비모임(주관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사회선교사 황용연 목사)은 12월 20일(월) 저녁 7시 아트나인 0관(지하철 이수역 7번 출구 부근)에서 성소수자 부모의 삶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상영회를 개최합니다.”

거절할 수 없었다. 편집장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전부터 ‘꼭 봐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오래전, 소설 창작 시간에 성소수자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합평 시간에 교수님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 “그들의 삶과 애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글을 쓰면 안 된다. 소설은 이야기이면서도 진실해야 하고 인물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구성,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라는 요지였다(알고 보니, 교수님의 조카가 성소수자였다). 주변에 아는 성소수자도 없이 건너서 들은 것들로만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고 한심했다. 그들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는데 결과는 처참했던, 쓰리고 아린 기억 때문에 <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영화는 개봉할 때부터 관심이 갔다.

그러나, 바쁘기도 했고, 집 근처에는 CGV만 있어서 마땅한 상영관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홍보와 후기들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마음을 달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혼영도 좋아하고 이수역이면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기도 했기에 ‘딱!’이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월요일 퇴근 후에 가면 시간이 딱 맞겠네요!” 그리고 한 줄을 더 붙였다.
“기사보다는 좀 느슨하게 써도 되겠죠?”

상영 날, “네 맘대로 쓰세요”(하지만, 선은 지켜야겠지?)라는 편집장님의 호탕한 허락도 미리 받았겠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트나인을 찾았다.

그동안 영화나 문학 작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경험했던 성소수자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해서 만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처음엔 설렘이 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동굴 속에서 컴컴하고 무거운 적막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슬픔과 안타까움, 그동안 나의 무관심과 무지, 복잡한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은 이렇게 폭풍처럼 몰려왔다. 아니 ‘너에게로’가 아니라, ‘나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온라인에는 이미 많은 후기와 영화 정보가 소개되어 있으니, 내용은 따로 쓰지 않으련다. 감독과 출연자들, 관객들의 이야기를 담는 게 이 글의 목적이기에.

김규리 감독은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고 <너에게로 가는 길>은 부모님들과 함께 만들었다”라면서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짧게 설명하면 이 영화는 성소수자 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마주한 엄마이자 여성인 당사자들의 성장을 그린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에 연분홍치마와 성수수자부모 모임이 함께 하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이 영화가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관객분과 그 길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트렌스젠더의 엄마인 나비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8년 차 소방 공무원이자 이 영화에서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엄마로 나오는 나비입니다. 저는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제 아들은 28살 transition을 마치고 현재 FTM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영화를 느끼고 감동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나누고 후에 좋은 모습으로 뵙기를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또 다른 게이 아들의 엄마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26살 게이 아들을 둔 엄마 비비안입니다. 저는 30년 차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연대의 마음으로 여기까지 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저희랑 함께 가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 영화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는 사실, 영화는 어떤 기록용이기도 하고 성소수자의 역사를 남기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법에 대해 알리는 여정에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정치나 사회가 바뀌기 마련이죠. 그렇게 기대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활동할 것입니다.”

직장인으로, 엄마로, 한 여성으로 보통 사람, 보통의 언어로 말하며 살아왔던 그들이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좀 더 특별한 삶, 특별한 언어로 말하는 삶이 되었다. 물론, 우리의 혐오와 편견 때문에 ‘특별’하게 보이고 그렇게 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함을 ‘보통’으로 변화시키는 게 너와 나, 우리에게 가는 길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내성적인 성격이라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홀로 서성이고 있는 남성(아마도 60대?)이 보였다. 다가가 살며시 물었다.

“오늘 어떻게 여기에 오시게 됐나요? 느낌은 어떠신지요?”

“평소에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 책도 읽었고요. 그런데도 오늘 영화를 보면서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웃들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살고 있다는 반성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하고 안아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와우! 우리가 흔히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도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이에 용기를 얻어 주위를 스캔했다. 오른쪽에 청년 두 명(20대 남녀)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터넷 언론 에큐메니안입니다.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아, 네! 괜찮아요!” 처음엔 놀랬지만 이내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마스크 너머로 느껴졌다.

“평소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마음이었고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처음엔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차별과 편견이 강한지,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려나 보다 생각했어요. 실은 그런 게 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그 부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가장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거 같아요. 보통의 생각에서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주변의 혐오와 시선 때문에 평범하게 살아가기 힘든 모습이 안타까웠어요.”(청년1, 여성)

“저는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성소수자들을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에 너무 놀랐습니다. 마치 악마 같은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며 성소수자들을 향해 폭언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요. 지금도 험악한 표정이 눈이 선합니다. 저도 교회를 다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게 회의가 들 정도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청년2, 남성)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면서 죄라고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냉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인터뷰하고자 극장을 빠져나가려는 여성(30대)에게 다가갔다. 빨개진 눈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기만 했습니다. 한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성소수자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시달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성소수자로서 여러 가지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었지만, 유복한 환경, 부모님들의 직업과 이해력 등을 볼 때 더 열악한 환경에서 말도 못 하고 그냥 고통 속에 던져져 있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여러 소외 계층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중의 고통이잖아요.”

나 역시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우리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사회 안에서도 그들의 격차가 보였다. 주인공의 자녀들인 ‘예준’과 ‘한결’은 가정환경이 매우 다르다. 부유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예준은 성소수자에게 관대한 캐나다로 유학하고 동성 애인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따스한 부모가 있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게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환하게 웃는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한결은 가슴 제거 수술은 했지만, 남성의 성기 외양을 갖추는 수술은 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성별 정정 신청이 거부되었다. 또한, 성별 정정 신청을 위해 이혼한 후 남남처럼 지내는,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남자에게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분노할 때, 우울증 약을 먹는 한결을 볼 때 슬픔뿐 아니라, 분노와 좌절을 느꼈다. 이는 영화 속에서 밝은 얼굴의 예준과 비교했을 때, 어둡고 우울한 한결의 얼굴은 훨씬 차갑고 험한 삶으로 보였다.

물론, 영화가 의도한 것은 이런 방향이 아님을 안다. 삐딱한 내가 잘 못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차별금지법, 동성혼 법제화는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삶이 모든 차별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게 있다. 국적이나 인종, 성별 같은 거다. 그냥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하면서 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무척 고통스럽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수자의 삶을 선택한다. 권력이나 부를 누리는 소수자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권이나 존엄성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소수자의 삶’이다.

“사람의 고유성, 개체의 다양성,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은 힘들고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에요. 우리 사회가 그것은 불편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며 안 하고 살았던 거죠. 저는 저희 아이가 성소수자라서 이런 기회를 발견했어요.”라는 성소수자 부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성소수자 자녀의 이름을 말하며 그들의 엄마, 아빠임을 고백하는 엔딩 크레딧 장면이 눈에 아른거렸다. 혼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손 내밀게 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한다. 우리에게는 이 영화가 이런 가치를 깨닫게 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11월 17일에 개봉한 <너에게 가는 길>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심사위원 ‘특별언급’ 및 ‘다큐멘터리상’,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용감한 기러기상(특별상)’, 제23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관객상)’, 제3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 ‘관객상’,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부문 선정, 제11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

여전히 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지만, 날갯짓처럼 잔잔하게 일렁이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너에게 가는 길>은 어쩌면 나를 찾는 길, 나에게 가는 길이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는 길이 아닐까?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하는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을 추천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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