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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계신 하지만 오고 계신 하나님은혜와 진리(사무엘하 7:22-24; 요한복음 1:15-18)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12.29 22:08
▲ 고난의 왕으로 오신 예수 ⓒGetty Image

우리는 오신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아기는 잉태되었을 때부터 희망이고 기다림입니다. 그렇지만 아기의 태어남은 그 희망과 기다림의 끝이 아닙니다. 잉태는 태어남으로 마감되지만 그 희망과 기다림은 태어남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그 희망과 기다림의 간절함은 더 강화될까요? 대개 그 반대일 것 같습니다. 예수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예수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에게서 이스라엘의 속량과 이방의 빛을 보았고 선포였습니다. 그 희망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가 자라가면서 그 희망의 성취를 기다렸을까요? 성서는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희망은 시간과 더불어 희미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 희망의 기억을 끄집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그의 활동은 처음부터 예수에게 향해 있었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그는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나기 이전부터 그를 가리켜 내 뒤에 오시지만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것이 바로 예수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예수라는 말은 아니어도 적어도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말은 한층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 나라와 함께 오시는 그 이는 그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그보다 먼저 있었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충만한 그분의 은총은 모든 이들에게 넘치는 은총을 베풀 수 있는 샘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요한의 앎이 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요한이 인식한 대로의 예수는 과연 어떤 분일까요? 요한은 예수에게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보고 시대를 (율)법의 시대와 은총과 진리의 시대로 구분합니다. 율법의 시대는 엄격함과 의무가 한 가지 특징이고 감추어짐(올람)이 다른 한 가지 특징임을 이 구분은 보여줍니다. 진리(알레테이아)는 감추어진 것이 드러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 시대의 특징으로부터 우리는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율법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지기에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그 짐을 주님께서 벗겨주시고 쉬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노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쉼은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울 때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멍에와 짐은 무겁지 않습니다. 또 나 홀로 지는 것도 아니고, 주님이 함께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은총이라고 합니다. 은총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멍에를 메고 사랑하라는 명령을 그 위에 싣고 살아갑니다. 사랑은 분명 의무이지만, 강제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사랑의 불을 지피고 사랑의 불을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가려진 분 또는 숨겨진 분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모세조차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앞을 지나가실 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손으로 덮으셔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 주님은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 하나님이셨고 그런 분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자기를 드러내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생애는 역사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자취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는 감춰진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분으로서 진리입니다.

이것은 요한의 입을 통해 전해진 교회의 고백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시 주님을 그러한 분으로 알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넘치는 은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 사건은 이전 역사 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비록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것을 예시하는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속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난 현장으로 직접 가셔서 그들을 구속하시고 그들 앞에 행진하셨으며 그들을 든든히 세우시고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그 외에 다른 하나님은 없습니다.

이집트로부터의 이스라엘 해방은 감추어진 하나님이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자기를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감추어진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어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없었으면 그리스도 사건도 없었을 것입니다. 양자는 드러냄의 방식과 정도와 대상은 달라도 동일한 성격의 사건입니다.

(율)법은 첫 드러내심 사건의 결과인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들과 평화하게 하는 법이 짐이나 멍에일 리 없는데, 법을 운영하는 자들이 이 법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법이 본래 의도하는 관계를 회복시키고 불변의 것이 되게 하시고자 렘 31,31-33의 새계약을 약속하십니다.

바로 이 약속이 이스라엘 해방 사건과 그리스도 사건을 잇는 고리입니다. 그에 따르면 (율)법을 마음속에 새김으로 돌 판에 새겨진 첫 계약이 종료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라고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때가옵니다. 마음 판에 새겨진 법이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셨다는 예수의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름 아닌 사랑으로 (율)법의 요구에 온전히 응답하셨습니다. 마음판 위의 법은 오직 사랑을 요구하고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므로 사랑의 법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진리로 오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나님은 세상에 드러나시고 (율)법이 우리 마음 판에 사랑으로 새겨집니다. 예수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사랑의 불꽃으로 타올라 우리 주위를 따뜻하게 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빕니다. 그 사랑이 코로나 위기를 이기게 하고 기후 위기 극복의 희망을 낳을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살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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