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사회주의’라는 낡은 유물을 박물관에서 꺼내자칠레의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의 탄생을 바라보며
김건수 | 승인 2022.01.04 14:57
▲ 가브리엘 보리치(35) ⓒAP Photo/Luis Hidalgo

한국은 한계사회에 돌입했다. 오랜 양당체제를 지탱해온 민주-반민주 대립구도는 세대, 성별, 지역, 계급계층 간 갈등구도로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다. 두 정당은 기후정의, 소수자 인권 등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변화엔 무관심하다. 새로운 의제를 만드는 것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의제를 수용하지도 못한다. 반공 아니면 반민족이라는 구시대적 대립구도에 국민을 동원하는 잘못된 정치기획만 난무한다.

비단 정치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시장경제가 마비되자,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앞으로 지속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닌, 공동의 필요를 위한 생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본 중심의 성장을 지속해온 결과, 자본에 독점된 부와 권력을 해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사회는 박근혜 탄핵, 조국사태, 코로나19를 경유하며 양당구조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사회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공유했다. 이 때문에 기존 체제의 틀에서 보다 자유로운 청년세대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호명되고 있다. 그러나 청년세대론은 공정성, 능력주의, 성별간·세대간 갈등구도를 불러오며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렇듯 무엇을, 어떻게 전환할지가 명료하지 않고 사회적 혼란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칠레에선 36살의 젊은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먼 남미의 이야기가 우리와 무관할 듯싶지만, 실제론 유사한 점이 많다. 두 나라 모두 최근의 민중항쟁으로 권력을 교체했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 불안정한 고용, 낮은 공공성,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칠레의 이야기가 한국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사회주의가 세대교체와 정치권력교체의 핵심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세대만 교체하는 세대교체, 정당만 교체하는 정치권력교체라는 불충분한 정치혁신이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는 이러한 한계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 정치의 맥락은 삭제한 채 MZ세대 정치인이 당선되었다는 점에만 주목하거나, 칠레의 새로운 대통령이 K-POP의 지지자라는 민망한 보도일색이다. 한국사회의 정치지형과 논쟁의 구도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도외시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대선이 불과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촛불 이후 두 번째 대선이다. 칠레는 이미 민중항쟁의 성과로 제헌의회를 수립했고, 곧 사회주의 청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다. 그에 반해 우리는 다시금 양당구조의 관성에 갇혀 지난 수십 년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극우정치인 윤석열과 그에 맞서기 위해 개혁정체성을 포기하고 우클릭을 표방하는 이재명의 대립구도에 한국사회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 형국이다.

칠레를 보며, 무엇이 낡았고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사회주의는 낡고 실패했다는 한국사회의 통념부터가 낡은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는 영원히 지속가능한 것이라는 환상이야 말로 낡고 실패한 것이 아닐까. 양당구조와 시장경제의 실패가 야기한 혼란을 역동적인 사회적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선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역사의 박물관에서 꺼내야 할지도 모른다.

김건수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건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