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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인가 그리스도인인가복음을 전하는 마음(고린도전서 1:4-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1.09 15:48
▲ Sieger Köder, 「The apostle Paul writes to the church in Corinth」 (Stained Glass Window at Holy Spirit church in Ellwangen, Germany) ⓒGetty Image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번 주일부터 주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현절을 지키는 이유는 기독교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이는 주현일이 언제인지를 정의하는 데에서 두 가지로 나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신 날이라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방박사가 예수님을 방문한 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둘 다 주현일은 1월 6일이 됩니다.

무엇이 맞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예수님께서 1월 6일에 세례를 받으셨다는 근거도 없고, 동방박사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지 12일에 방문했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처음 1월 6일을 지정한 사람들은 어떤 근거를 내세우기는 했겠습니다만, 성경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주현절의 의미입니다.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 날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날이라는 점이나, 동방박사가 예물을 바친 날이라는 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은혜로 오셔서 그의 신성과 왕권을 나타내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주현절이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께 경배와 찬송을 올리는 절기는 아닙니다. 예로부터 주현절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절기였고, 그렇기에 우리가 가진 선교의 사명을 확인하며 다짐하는 기간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는 복음전파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전도 전문가도 아니고 전도는 제게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전도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잘못된 밑바탕

일전에 메타버스가 무엇이고 그것이 지금 사회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찾아서 글을 적은 일이 있습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말씀이 길어지기 때문에 안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조금 놀랐던 점은 지금 사회에서 메타버스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 지보다, 이미 많은 청소년 선교단체들과 청소년 선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들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때 계속해서 볼 수 있었던 문구가 있었습니다. 청소년, 청년이 교회의 미래인데, 이들을 붙잡지 않으면 한국 교회에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렇기에 청소년이나 청년이 접근하기 용이하고, 그들이 원하는 플랫폼인 메타버스를 이해하며 이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청년, 청소년이 교회를 빠져나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많은 교회에서 고민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사라져간다면, 교회에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도 맞는 말입니다. 앞으로의 교회를 지탱해갈 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글들을 보면서 찜찜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그들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그들을 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제 찜찜한 기분, 불쾌한 기분의 원인이었습니다.

지금 시대 청소년, 청년들은 예전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회의 구조로 인해서 점점 그렇게 변해가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아무리 나라의 미래를 위해 자녀를 낳아야 한다고 정책을 펼쳐봤자, 육아가 개인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자녀를 갖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은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자 하는 청년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출산을 넘어 결혼을 거부하는 이들도 더욱 늘어갈 것입니다.

국가의 출산 장려 정책이 출산을 통해 개인에게 이득이 생기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개인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할 수 없다면, 청년들은 국가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고 인구수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은 어떤 동의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 청년과 청소년을 알아가야 하며, 그들을 교회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는지, 그 기본 전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유지를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청년들, 청소년들을 교회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삶에서 그리스도를 느끼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로 이끕니다. 또 그들이 천국의 소망을 품고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도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몸집 불리기가 목적이 아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적은 편지의 서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담긴 대부분의 내용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적은 내용입니다. 교회 내에서 분쟁을 줄이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고린도전서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왜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이토록 문제가 많은 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야단치면서까지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고 했을까요?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함께 보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까지만 해도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임박한 종말론을 믿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갔어도 그만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자신만 구원받았어도 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이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 앞에 함께 서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구원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말씀은, 5절에 나타난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라고 말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인해 서로 다퉜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말하며 다퉜습니다. 이들이 가진 언변과 지식의 풍족함은 그들이 분쟁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그들에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고, 십자가의 참된 지혜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과 함께 구원의 길을 걷고자 했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 앞에 바로 서고자 했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그 내용을 최대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들이 때때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가 각각 교회를 생각하며, 그 교회 구성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복음이 최대한 잘 전달될 수 있는 논지와 수사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노력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자신과 함께 구원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삶에서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원했고, 종말 때에 함께 그리스도를 만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문제도 많고 말썽도 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도 먼저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현절을 보내면서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분명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인원이 줄어들 때마다 교회를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교하는 이유,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청년,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 대상이 누가 되던지 간에, 그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사람이 나와 함께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도나 선교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공격적인 전도 방식은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옆에서 챙겨주고 돌봐주는 일을 먼저 하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며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은 최대한 삼가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현절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한 우리의 모든 삶은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그 삶이 사랑을 나타내고 마음을 먼저 전하고, 모두가 함께 구원받기를 원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구하기 위해서 청년, 청소년 또는 교회를 떠나간 이들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우리의 삶에서 복음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오히려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늘 능력과 은혜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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