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내 손에 있는 것과 하나님 손에 있는 것“신령한 복을 누리는 한 해”(에베소서 1:3-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1.11 15:37
▲ 복을 풍요와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세상의 목소리는 우리가 계속해서 외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게 만들어 평안을 누리지 못하도록 합니다. 끊임없이 ‘저 상황을 바로 잡아야 네가 평안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기 때문입니다.

돈 문제, 건강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자녀의 문제 등이 평안에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현혹합니다. 이런 ‘나’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서 ‘나’를 우상으로 만들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시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를 듣고자 하면, ‘평화는 나에게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편 29:3-4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 물을 치신다.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

이 구절들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의 목소리는 어디에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목소리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목소리에 순종하는 이들은 평화의 복을 누린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29:11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따르는 이들은 평화의 복을 누리는 줄로 믿습니다. 거짓 목소리, 거짓 평화를 쫓아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참된 목소리, 참 평화를 따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올 한 해 목적을 세우지 말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사랑의 의도’만을 가지고 잠잠히 묵상하고 기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세운 목적이라는 게 대부분,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라는 것이 대부분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우리 자신의 유익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유익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 것이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목소리, 말씀에 귀 기울이고 따를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우선순위의 혼동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의 목소리, 바깥의 목소리에 가려져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전히 말씀하시고 계신 뜻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첫 구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으로는 6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12절과 14절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고백입니다. 왜 마땅할까요?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신령한 복을 4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절 이하의 ‘신령한 복’에 관한 설명을 듣다 보면,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가 너무나도 원하고 필요한 실제적인(사실은 신령한 복이 더 실제적인 것이지만)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는 온갖 신령한 복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제목 대부분을 차지하는 돈, 건강, 자녀 등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창조 전에 이미 자녀로 삼아주신 복,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로 삼아주셔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복, 영원한 생명을 받은 복이 바로 우리가 받은 신령한 복이고 마땅히 누려야 할 복입니다. 차라리 돈을 주세요! 차라리 건강을 주세요! 차라리 자녀가 잘 되게 해주세요! 차라리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차라리 자녀가 승진하게 해주세요! 등등을 요구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온갖 신령한 복은 이런 것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신비한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신비한 뜻’을 깨닫게 될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이 신비한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셨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누구든지 이 신비한 뜻을 깨닫기를 원하면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비한 뜻을 깨달은 자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9-12 “9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 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일꾼인 그대는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12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읍니다.”

돈 대신에 건강, 자녀, 성공, 인정 등을 대신 넣어도 의미는 같아집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고, 이것만 있으면 내가 평안할 것 같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내가 기쁠 것 같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합니다. ‘나’의 목소리와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 않고, 채울 수 없기에 늘 스스로를 결핍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결핍되었기 때문에 불안하고, 염려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소리를 쫓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은 이미 주신 온갖 신령한 복을 누리기에 불안하거나, 염려 가운데 살지 않습니다. 잠시 불안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복능력이 아주 큽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사야 43:1-3a “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3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온갖 신령한 복은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전시하거나, 저축해 놓고 바라보며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를 선명하게 깨달은 사람은 이사야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더이상 두려움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신명기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신명기 11:26-28 “보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 앞에 복과 저주를 내놓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하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며,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그 길을 떠나,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이란 오늘날 ‘나’ 자신 또는 ‘돈’이면 다 된다고 가리키는 세상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갖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업적을 읊조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행위는 온갖 신령한 복을 확장 시켜가는 우리 삶의 모습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마음을 지키면 그 마음에 있는 선함과 사랑의 영향력이 성도님들을 둘러싼 사람과 상황으로 전달이 됩니다. 집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불안에 떨고 있으면 그 불안은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그런데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지만 어느 한 사람이 평안함을 유지하고 있으면 곧 그 평안함이 전달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 속에서 존재하는 삶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만약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또는 살아가고 계시다면 이런 성도는 온갖 신령한 복을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계속해서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도우시고 안내하십니다. “12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14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우리의 상황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낙후된 그렇지만 행복지수에서 늘 상위에 있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가 부탄의 겉모습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낙후 된 지역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조사는 거짓말이다.’ 그래서 부탄의 경제적인 성장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 기도는 부탄 사람들을 위함이 아닌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한 기도 제목일 경우가 큽니다. 자기가 느끼고, 본 것만을 토대로 불행하다고 판단하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향해 기도할 때도 이런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나의 부채감을 덜어내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 모든 기도는 결국 우리의 경험, 지식, 가치관을 통해 나온 목소리일 뿐입니다.

성숙한 기도는, “하나님 제가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삶의 전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린 기도입니다.

하지만 성도님들이 생각하기에 그 사람의 필요가 거기에 있다고 여겨진다면 얼마든지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기도 중에도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반드시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온갖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나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상속자로 삼아주시고, 자신을 찬미하도록 만드신 분인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것을 믿기에 삶을 맡깁니다.

성령은 ‘나’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및 다른 우상들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은혜와 사랑을 확장하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성탄절이 지나고 이제 교회력은 주현절이 되었습니다. 주현절 또는 공현절 이라고도 합니다. 주님이 나타나신 날, 공식적으로 드러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아기 예수로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으로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주현절에 우리의 모습을 통해 누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을지 기도하고 또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통해 이미 주신 온갖 신령한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