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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와 폭력은 제사로 해결되지 않는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사야 1:10-20; 히브리서 10:1-9)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1.12 16:05
▲ 불의와 폭력이 제사로 해결될 수 없다. ⓒGetty Image

성서는 우리 곁에 있지만 생각보다는 멀고 자주 오해되는 책입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도 아니고 시간적 차이 때문도 아니고 성서의 말들이 어려워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말씀이 우리 밖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신 30,11-15).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시겠다고 우리가 잘 아는 약속을 주십니다(렘 31,31-34).

하지만 아직 그때는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는 편견과 고집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교리화된 편견과 바리새파적 우월의식이 낳은 고집 때문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고 왜곡하기 때문일 것입니다(벧후 2,3 비교). 그래서 지금은 말씀이 도처에 넘쳐나는데도 말씀은 수난을 당하고 사람들은 말씀의 기근을 겪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암 8,11 비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할 수 있고 ‘깨달은 마음’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말씀이 어떻게 말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히브리서 10,1-9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A 1a 율법: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
        B 1b-4 제사의 한계와 기능
                  C 5-7 시 40,6-8 인용: 대안을 찾기 위해
                  C 8-9a 인용 반복 요약 해석
                       8a 5-6절 인용 해석적 반복: 예물과 제사, 번제와 속죄제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음 
                            8b 예물과 제사 해석: 율법에 따라 드리는 것
                        9a 7절 인용 반복 요약: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
        B 9b 결론: 첫째 것 폐지,
A                         둘째 것 세움

이를 보면 본문은 9b의 첫째 것과 둘째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곧 첫째 것은 8a에 언급된 예물과 제사 번제와 속죄제를 가리키고, 둘째 것은 9a에 언급된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10-14.15-18절이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엇을 더하느냐 또는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독자에 따라 달라질지라도 본문의 지시 관계는 혼동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파악하는 것으로 본문 이해가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구약의 말씀을 어떻게 인용하는가의 문제는 여기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를 차치하더라도 정작 본문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것들이 모두 율법에 따라 드려지는 것이라는 8b의 설명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임의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들을 폐지하는 것은 그것들에 관한 율법을 폐지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사에 관한 법은 율법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율법 수여자이시므로 하나님이 율법을 폐지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구절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그것이 복음서들에서 율법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들과 충돌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혹시 폐지라는 말을 완성이라는 의미의 폐지로 이해한다면, 해결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지나치게 변증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둘째 것을 완성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히브리서 기자는 앞의 것이 지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이렇게 이해하면,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세우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은 율법의 폐지를 결과했을 뿐 아니라 10절 이하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온전케 된 우리는 율법과 무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의 요구를 실현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것은 예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율법의 요구를 실현시킬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위에 언급된 예레미야 본문을 인용하고(16절)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하자”는 말로 이를 나타냅니다(24절).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를 통해 ‘거룩하게 된 자’로 이러한 관계 속에 들어왔고 그 안에서 이러한 요구를 받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예전에 이스라엘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폭력을 일삼으면서도 하나님께 꼬박꼬박 제사드리러 오는 이스라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하나님의 법’에 귀기울이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법’이란 여기서 법 규정들이 아니라 법의 요구 내지 법정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폭력과 제사의 양립을 견디시지 못합니다. 그러한 제사를 무거운 짐으로 느끼시고 그 때문에 지치셨다고 할 만큼 그러한 모습을 ‘혐오’하십니다. 그러니 그러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십니다. 그런데도 폭력을 휘두르며 손에 피가 넘쳐흐르는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선한 일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를 위해 변호하고 과부를 위해 변론해라.” 히브리서 기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여기서 좀더 구체화되고 방향이 한층 더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이 이 요구를 받아들여 실천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피를 흘린 붉은 죄도 용서받고 눈처럼 깨끗해지고 양털처럼 희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다시 히브리서로 돌아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약속이 우리에게서 실현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기뻐하고 감사드리며 그 요구를 따라 사는 것뿐입니다. 사랑과 선한 일은 정의를 이루고 평화를 수립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고통을 알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그 고통을 덜어내는 일에 소망을 갖고 참여하기를 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에게서도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그때 지상의 마지막 세대가 될 지도 모를 우리 다음 세대가 우리에게서 희망을 볼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서로 격려하고 볼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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