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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숨막힘“나를 샅샅이 아시는 하나님”(시편 139:1-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1.17 19:49
▲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시나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날마다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여 누리시고 또 주변으로 내 안의 평안을 확장하실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이 세상이 말하는 복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을 누리는 한 해로 만들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온갖 신령한 복은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전시하거나, 저축해 놓고 바라보며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아는 것, 이 변화된 신분이 우리가 누려야 할 온갖 신령한 복 자체입니다. 이게 왜 신령한 복인지를 선명하게 깨달은 성도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도 두려움 속에 머물지 않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누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0:30 예수님의 말씀,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처럼 빈틈없이, 단 하나도 놓치는 것 없이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샅샅이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시기에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온 모든 발자취, 흔적, 심지어 머릿속으로 했던 모든 상상과 생각들 그리고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다는 이 시편의 고백은 속을 후련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떤 일을 겪은 뒤에 아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당신 괜찮아요?” 이 질문에 저는 괜찮은 것 같아서,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안 되었으니까. 당신 안 괜찮잖아. 괜찮지 않은 거에요.”라고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저의 기분을 정확하게 짚어줄 때가 있었습니다.

또는 제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뭘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라고 고민하고 있으면, “당신 지금 이거 하고 싶은 거죠?”라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짚어 줄 때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잘 몰랐던 마음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 알아주고, 알려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고맙고, 위안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상대방을 100% 다 알지 못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눈빛이나 말투, 조금의 행동으로도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고,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 알 수 있다고 여기지만 100% 알 수가 없는 게 바로 인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100% 알고 계시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불완전한 위로가 아닌 완전한 위로로 함께 하십니다. 왜 100% 아실 수밖에 없는지 13-14절의 시편 기자의 고백을 보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13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00% 알고 계시다는 이런 성경의 말씀들 때문에 때론 숨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숨 막히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대부분의 시간을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런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좋은 점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오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부모도, 친구도, 배우자도 할 수 없는 위로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주여”, “아버지” 라는 한 마디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까닭입니다.

얼마 전에 ‘런 온’이라는 로맨스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연애를 하기 전까지 여러 위기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연애 이후에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기까지 또 위기를 겪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가 이런 여러 위기의 과정들을 거칩니다.

그런데 남녀 주인공들 위기의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 상대방이 이미 편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기는 오해 등등입니다.

“아오, 저것도 못 알아 듣냐?” 또는 “아니, 표현을 왜 저렇게 해?” 하며 드라마를 답답하게 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런데 드라마에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오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이런 오해들 때문에 얼마나 피곤합니까? 오해를 풀려고 말을 시작했는데 오해가 더 증폭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서 지치기도 합니다.

오늘 시편의 고백은 하나님을 대할 때 이런 피곤함을 겪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보다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5:11 “'죽음'과 '파멸'도 주님 앞에서 드러나거늘, 사람의 마음이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잠언 21:2 “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눈에는 모두 옳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 사무엘상 16:7b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하나님 앞에 서면 구구절절 변명을 해야 하거나, 어떤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지금 성도님들처럼 하나님 안에서 그저 앉아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절 말씀에 2-4절의 말씀을 덧붙여 설명합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이처럼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와 부족함을 모르실리도 없으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부족함도 채워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가 나누고자 하는 핵심이 5-6절에 있습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나를 아시기에,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면서 손을 얹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고통과 절망, 슬품, 위기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출애굽기 13:3 “3 모세가 백성에게 선포하였다.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곧 당신들이 종살이하던 집에서 나온 이 날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거기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날이니, 누룩을 넣은 빵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11:7a “7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다.” 시편 145:16 “16 주님께서는 손을 펴시어서, 살아 있는 피조물의 온갖 소원을 만족스럽게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기에 나의 삶에 손을 얹어 주실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감히 측량조차 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깨달음이 저와 성도님들에게도 너무 놀랍고, 높아서 감히 측량조차 할 수 없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자신의 깨달음을 확장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에서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피해 어디에 있던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건, 찾지 않을 때건, 심지어 하나님을 피해 도망다닐 지라도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상상을 합니다. “7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8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10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하게 아시기에, 어디에 있더라도 주님은 언제나 그 손으로 인도하시며,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고백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 손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 손으로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손은 우리가 어둠에서 환한 빛으로 이동하도록 돕습니다. “11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시편 139편 전체를 읽어보면 시편 저자가 복수를 간청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신이 복수할 대상을 미워한다는 고백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3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24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사실 시인은 고통 속에서 오늘 시편 139편을 고백했습니다. 고통 속에 있다 보면 복수, 분노, 미움, 절망 등의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만약 내가 잘못된 표현을 하고, 잘못된 기도를 드릴지라도 나의 중심, 마음을 샅샅이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으며 고백합니다.

한 주석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시편 저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진심과 느낌을 구분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마음껏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 같은 확신으로 기도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WBC 시편 하)

전도서 9:11-12 “11 나는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되는 것도 아니더라.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12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

아무리 방비를 해도 이런 시간은 우리에게 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 속에서 갈팡질팡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거나, 잘못 된 선택들을 내리게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이 어둠에서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시편의 구절은 우리가 더 잊지 말아야 할 고백이 됩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를 아시기에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주님의 손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자유함을 얻습니다.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안에 거하셔서 신령한 복을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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