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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하나님께 맡겨라(출애굽기 1:1-9; 요한복음 2:1-11)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1.20 15:29
▲ Gerard David, 「The Marriage at Cana」 ⓒWikipedia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었고 또 축복이었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자연재해나 특히 전쟁 같이 것들이 끊이지 않고 일상을 위협했었지만, 이렇게 전세계의 일상을 동시에 뒤흔든 사건은 아마도 코로나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다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상을 넘어 존재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미지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은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할 텐데 이미 회복된 일상을 달라진 일상으로 사는데 익숙해져 가는 세상입니다. 그럴지라도 가까이 와 있는 존재위기는 그렇게 익숙해져 가면 안 된다고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이 경고 앞에서 예컨대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이 일상에서 전지구적으로 펼쳐져야 하는데,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위험하게만 느껴집니다.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되는가요? 여기서 이 문제를 직접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그 문제에 다가가야 하는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자주 존재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물이 없었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로서는 모세와 하나님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비록 강제노동을 할지라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때가 더 낫게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셨고 위기들을 극복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계약에 담긴 그의 말씀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계약을 넓은 의미로 이해하면 계약의 목적은 단순하게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출 23,25; 19,5-6)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평화로운 일상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그들을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안해졌습니다. 그들이 이 불안을 달래기 위해 찾은 방법이 좀 이상합니다. 모세의 부재가 원인이라면 아론을 대신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 아론은 모세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들은 모세를 신처럼 생각한 것일까요? 앞서 그들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이 두려워 모세에게 혼자 하나님에게 나아가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주할 수 있는 모세여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들에게 모세의 인도는 곧 신의 인도였습니다. 모세는 신을 형상화한 사람이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부재는 신의 부재와 같았고 아론이나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말한 이유를 볼 수 있습니다. 아론이 송아지 상을 만들자 그들은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너희 신”이라고 외칩니다.

이 말은 계약을 맺으며 하나님이 자기를 가리켜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말씀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모든 관계의 초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형상화함으로써 하나님이 사람처럼 자기들 곁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그 관계를 영구화함으로써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신의 형상화를 하나님은 명백하게 금지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그러한 형상으로 이해했다면, 이는 인간의 우상화라 할 수 있고, 따라서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며 의도하셨던 것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를 의지했고 모세가 사라지자 형상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왜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를 비난했는지를 이해하게 합니다. 우상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사람이든 형상이든 다른 무엇에게 내주고 그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잊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숱한 어려움들이 발생하고 그것들은 사람에게 의지할 곳을 찾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경우 과연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지요? 이렇게 말한다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광야의 이스라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러줍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신 일종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돕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신’처럼 의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나 돈은 수단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게 됩니다. 수단이 수단에 머물 때 그것은 본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고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상 제조 이야기와 달리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잔치집에서 잔치에 꼭 있어야 되는 술이 도중에 떨어진다는 것은 잔치의 흥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주인은 미안하고 손님들은 섭섭해 하며 수군수군 거릴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초대 받은 잔치집에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잔치집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술 부족 사태를 그는 예수에게 알립니다. 그저 지나가는 말이었을까요? 예수의 반응으로 보아 마리아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술 부족 사태가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예수의 대답은 아주 쌀쌀하게 들립니다. 이 느낌은 내 때가 아직 아니라는 말 때문에 조금은 누그러지지만 그래도 그 느낌이 다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랬을 때 말하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요? 괜히 말했나 하며 물러서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또는 그러지 말고 어떻게 해봐라고 다시 한 번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에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일꾼들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리 말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가 말은 그렇게 해도 무언가 할 거라고 예상해서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일꾼들에게 말함으로써 예수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한 것일까요? 어떤 경우든 마리아는 예수에게 개입할 여지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예수의 행동을 기다립니다. 예수는 마침내 행동하기 시작했고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려움 앞에 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문제를 하나님께 알리고 준비하고 하나님의 행동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짤막한 이야기라 마리아가 준비하는 행동은 작고 단순했던데 비해 우리의 상황은 훨씬 더 많고 복잡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보여준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이스라엘과 마리아가 보여준 행동들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볼 수 있고 우리의 상황에서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우리 시대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이 대단히 심각하지만, 그 문제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 위기들이 우리들의 태도에 따라 파국으로 귀결될 수도 있고 축제로 마감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신뢰와 의지가 우리들을 올바른 선택과 바른 행동으로 이끌고 최종적으로 문제 해결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행동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그 끝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도움을 함께 노래하게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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