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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목 집중 시험’(대하 24:4-14; 갈 4:8-11; 마 4:5-7)주현절 셋째 주일(1월23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1.21 00:47

1. 이목 집중,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주현절 셋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현현과 공생애 사역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복음서 말씀은 먼저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내용이 계속됩니다. 지난주 ‘상황 적합 시험’에 이어 이번 주에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으로, ‘이목 집중의 시험’입니다. 말씀을 바로 볼까요?

▲ 두 번째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 4:5-6)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놀랄 것입니다. 이목이 집중되겠죠? 그렇게 능력을 행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라고 마귀가 유혹한 것입니다. 여기서 능력을 행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곧 은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따라서 마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능력을 행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라고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귀의 시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성전에서 뛰어내려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사람들을 설득하고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상황 적합 시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시험을 극복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7)”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이목을 집중하는데, 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험에 잘 넘어갑니다. 목회 현장에서는 이것을 ‘자기 이름 석 자 알리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능력으로 변질되어 소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목회자가 여기에 걸려 넘어집니다. 목회에 성공하고 교회가 성장하면 성전 꼭대기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뭔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뛰어내리거나, 혹은 뭔가를 하고 싶어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마귀의 시험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은사를 올바로 사용하지 않고 남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은사(恩賜)는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도모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교회에 속한 다른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기에 기이하고 특별한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놀라움과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목을 집중하게 되죠? 마귀는 바로 이것을 노린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은사를 남용하거나 혹은 부인하지 말고 참된 은사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은혜로 주신 영적 선물, 은사

성경에는 성령의 은사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서 12:6-8, 에베소서 4:11, 고린도전서 12:8-10입니다. 먼저 은사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20번 정도 나오는데, ‘도시스(δοσις, 얻음)’가 한 번(약 1:7), 그리고 ‘도레아(δωρεα, 은사)’가 두 번(고후 9:15, 히 6:4) 사용되었으며 그 외 열일곱 번은 모두 ‘카리스마(χαρισμα, 신령한 은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롬 1:11, 5:15, 16, 벧전 4:10 등). 물론 이 세 가지 용어 모두 동일하게 ‘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은사, 교회를 위한 것!

중요한 것은 이 세 은사 모두 성도 각 개인의 신앙적 유익을 도모하거나 교회 봉사를 잘 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또한 은사는 원칙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 개인의 공로나 욕구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결국 은사란 하나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주어지는 강력한 신적 능력을 수반하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럼 은사를 구분해 볼까요? 로마서와 에베소서, 고린도전서를 중심으로 크게 ‘이적 은사’, ‘비이적 은사’, ‘생활과 관계된 은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적 은사는 ① 믿음, ② 예언, ③ 영 분별, ④ 능력 행함, ⑤ 병 고침, ⑥ 방언, ⑦ 방언 통역 등이고, 비이적 은사는 ① 사도직, ② 선지자직, ③ 목사와 교사, ④ 지혜의 말씀, ⑤ 지식의 말씀, ⑥ 복음 전하는 것, ⑦ 가르치는 것 등이며 마지막 생활과 관계된 은사는 ① 섬기는 것, ② 구제하는 것, ③ 다스리는 것, ④ 권위 하는 것, ⑤ 긍휼을 베푸는 것, ⑥서로 돕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사를 활용하는 데 있어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요?

첫째, 은사를 자신의 과시나 세속적 유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오직 자신의 신앙 향상과 교회의 유익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여야 합니다(고전 4:2). 오늘 복음서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죠? 이목 집중의 시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다른 은사들과 조화를 이루며 질서를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주신 은사는 통일성을 지니며 상호 보완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하고, 공동체 내의 질서를 위해 자신의 은사에 절제가 필요하면 절제하여야 합니다.

셋째, 참된 은사와 거짓 은사를 구별해야 합니다. 미혹의 영인 사탄은 때로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고 성도에게 다가와 거짓된 은사를 참된 은사로 믿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도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지, 올바른 은사 사용이 아닙니다. 참된 은사는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덕을 끼치는 것이며 교회에 바른 봉사를 위해 사용됩니다. 무엇보다 은사는 하나님께 최종적인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나아갑니다(벧전 4:11). 이목 집중시켜 하나님의 선물을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이렇게 은사 사용을 통한 이목 집중의 시험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왜 다른 곳이 아니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을까요? 성전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살펴보고 다시 성전에 관한 말씀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3.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라!

구약 역대하 말씀은 남 유다 8대 요아스 왕 당시,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한 이야기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요아스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인 일곱 살에 왕위에 즉위하여 무려 사십 년 동안(B.C. 835-796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요아스는 바알을 숭배하던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딸인 아달랴 여왕의 왕위 찬탈로 인해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다윗 왕권을 회복하고 계승한 왕입니다.

당시 요아스에게는 여호야다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죠?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대부(代父) 또는 정치적 고문과 다름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야다가 생존한 모든 날 동안에 요아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왕국을 통치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는 그릇된 길로 갑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까지 죽여버립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다윗 왕권을 찬탈하고 유다에 우상 숭배를 만연케 한 아달랴를 처형하였을 뿐 아니라, 다윗의 혈통인 요아스를 즉위시킴으로 단절될 뻔한 다윗 왕권을 회복시킨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두 사람이 종교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너희의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하지 아니한지라.” (대하 24:4-5)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수리비를 거두라 하였으나, 성전관리를 담당한 레위 사람들이 빨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 제사장을 부른 것입니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성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을 바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음이었더라.”(대하 24:6-7)

▲ 여호야다 제사장과 요아스에 의해 쫓겨나는 아달랴와 요아스의 성전 수리

아달랴 이야기가 나오죠? 유다의 7대 왕이자, 6대 왕인 아하시야의 어머니입니다. 유다 왕국의 유일한 여왕입니다. 아달랴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이사벨의 딸이죠? 이달랴는 남 유다 왕국의 5대 왕이었던 여호람과 결혼하여 유다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북 왕국은 아합의 아들인 요람이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외삼촌과 조카 사이인 북 왕국의 요람 왕과 남 왕국의 아하시야 왕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둘 다 우상 숭배하며 아합의 길로 행하여(대하 22:3), 백성들을 악한 길로 잘못 인도하였습니다. 따라서 둘 다 북이스라엘의 이륜 전차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관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을 예후 혁명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아달랴 여왕 당시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남 유다에도 심각하게 퍼졌습니다. 종교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요아스 왕과 여호야다는 먼저 성전을 보수합니다. 이것을 요아스의 종교개혁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에 왕이 말하여 한 궤를 만들어 여호와의 전 문밖에 두게 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라 하였더니,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지니라.”(대하 24:8-10)

성전을 사모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기술자들이 공사를 진행하여 하나님의 전이 이전처럼 견고해집니다.

“레위 사람들이 언제든지 궤를 메고 왕의 관리에게 가지고 가서 돈이 많은 것을 보이면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관원이 와서 그 궤를 쏟고 다시 그곳에 가져다 두었더라. 때때로 이렇게 하여 돈을 많이 거두매, 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감독자에게 주어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며 또 철공과 놋쇠 공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더니, 기술자들이 맡아서 수리하는 공사가 점점 진척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하게 하니라.”(대하 24:11-13)

이렇게 공사가 끝난 후, 성전에서 쓸 그릇을 만들고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 항상 번제가 드려졌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공사를 마친 후에 그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 앞으로 가져왔으므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곧 섬겨 제사 드리는 그릇이며 또 숟가락과 금은 그릇들이라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대하 24:14)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성전을 빼고 유대교를 논할 수 없죠? 이것은 바벨론과 로마에 의해 성전이 불타 없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마귀는 예수님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예수의 이름을 알리라고 시험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을까?

사실 예루살렘 성전은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 왕국이 굳건하게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과 시내 광야에서 주어진 모세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성막을 건축하죠?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까지 삼백여 년 동안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건축하여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그 안에 법궤를 둠으로써 성막은 안착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성전을 통해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들의 성전 제사를 통해 언약의 민족임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성전은 예루살렘, 곧 모리아 산에 건축되었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친 곳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이 예루살렘 성전의 참다운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아브라함의 제사 의미, 곧 순종과 믿음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성전 건물만 절대시한다면 제사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의 제사 의미와 하나님의 뜻보다,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절대시함으로써 우상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마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절대시하는 성전 꼭대기에서 만약 예수님께서 뛰어내리면, 엄청난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들로 하여금 손으로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시험합니다. 귀가 솔깃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전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이름 석자 알리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참된 순종과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이 사람들의 믿음의 중심에 서게 되는 잘못된 길입니다. 이렇게 시작을 잘못하게 되면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가 아니라, 이상한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유대교처럼 성전 중심 종교도 아니죠?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에 의하면, 유대교는 초등학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은사 중심 기독교도 초등종교입니다. 결국 ‘말씀 중심’, ‘예수 중심’이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5. 천박한 초등학문을 넘어!

따라서 오늘 서신서 말씀인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시 율법과 날과 달과 절기라는 형식에 치우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8-11)

그리고 사도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이 말씀 다음에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이 이어집니다.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율법의 종교인 유대교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목 집중의 시험에 넘어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이름 석 자’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또한 은사를 통해서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성전의 참된 의미도 깨달아야 합니다. 성전은 거기서 뛰어내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믿음의 장소입니다. 바벨탑처럼 높게 쌓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건축자의 이름 석 자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장소입니다. 믿음을 연단하는 신앙 훈련장인 것입니다. 이것이 천박한 초등학문을 넘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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