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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아편이 아니라 몰약이어야 한다기독청년현장심방 II: ‘더 가까이’ 참가자 증언 ⑶
김주역 | 승인 2022.01.22 16:27
▲ 김주역 청년이 기독청년 현장심방 증언대회 및 수료식에서 수료증을 받고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제공
4회에 걸쳐 게재되는 “기독청년현장심방 II: ‘더 가까이’ 참가자 증언”은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기독청년현장심방 II: 심화과정 – 산재현장을 중심으로”를 수료한 청년들의 후기입니다. 현장을 보고 들은 청년들이 남긴 글을 통해 우리 사회 노동의 현실과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청년들과 영등포산업선교회 실무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편집자 주

산재는 산재다

사회의 여러 부분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다면 인권적 측면이나 다른 사회 부분의 자유 역시 보장되거나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유기적인 연결망 속에서 소외된 유일한 존재는 노동자였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천부인권이 보장되어 있으나 노동자만큼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이런 인식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는 민주정부 3기네 4기네 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정치적 자유와 해빙무드로 들어선 권력계층들의 야합은 지지자들에게는 살만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전 정권이나 현 정권의 지지자들은 살기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군부는 지금까지도 쿠테타를 모의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386대학생들은 시위를 즐기면서 나이 먹으면 대기업에 손쉽게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의 정치 역사는 여야 모두 손해 없이 이권의 지분률을 조정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현 정권의 지지자들에게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인과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노동자들은 반동이고 불순분자일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권과 산재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만의 단독적인 투쟁과 권리 쟁취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한 마르크스-레닌의 주장은 비노동자들의 위험성을 충분히 예견한 것이었고, 레닌이 그토록 경계한 멘셰비키-사회민주주의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를 자신들과 다른 단체와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실질적인 권리향상에는 침묵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 것이었다. 결국 산재는 어떤 높으신 양반이나 이념도 그 누구도 대변할 수 없고 오로지 노동자와 노동문제에 연대하는 사람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회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비둘기를 제물로 바칩니다

성경에서는 재산이 적은 사람은 자신의 속죄제물로 비둘기를 바치라고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비싼 제물을 바치는 사이에도 가난한 사람들 역시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한 배려이자 공동체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는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철을 앞둔 시기, 정치인에게 나아가기 위한 제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득표를 보장하는 조직력, 사회적 영향력과 재산 들이 제물일 것이다. 그 사이 제물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인 앞에 나아가 고해성사를 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산재 현장을 방문하며 많은 유가족분들의 외침을 들었지만 그 소리에 귀를 닫은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제물은 오로지 숫송아지만 골라 받는 이기적인 모습이 있었을 뿐이었다.

아편을 넘어 몰약으로

종교는 몰약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와 종기를 싸매는 몰약이 되어 그들을 치료하고 위로해야 할 것이다. 다행이도 많은 현장의 유가족과 피해자분들, 관계자 분들께서는 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종교가, 기독교가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취제로써 사회적 약자들을 하루하루 연명하게만 하는 아편이 아니라, 실제로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하게 하는 몰약의 기능을 잘 실천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산재는 죽음과 영구적인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가져온다. 이런 상황일수록 종교의 위로와 치유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노동 현장과 다르게 산재현장은 치유와 회복의 역할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주역  ydpu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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