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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촉을 뚫고 화살표가 된 어떤 이를 생각하며2021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12월호 ⑷
배영미(기독여민회 홍보출판위원장) | 승인 2022.01.25 15:34
▲ 조동연 교수를 향해 화살촉을 자임했던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돕기 위해 나섰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자행된 무자비한 공격으로 사퇴해야 했던 조동연 교수를 생각하노라니 묵직한 아픔이 올라온다. 그녀에게 아낌없이 ‘화살촉’을 던진 일베(류) 강용석 일당의 거침없는 공격과 그것을 은근히 즐기며 확대 재생산한 언론 참칭 수구 기득권 신문지 회사들과, 난도질당하는 여성 인권과 가족들을 보면서도 대체로 침묵하는 주류 여성계의 비겁함은 현실판 <지옥>의 도래를 실감케 하였다.

덴마크의 작가 쇠렌 스바이스트루프가 쓴 범죄 스릴러 소설 <더 체스트넛 맨>(The Chestnut man)에 나오는 일하느라 바쁜 엄마들은 자녀를 돌보는 데 소홀했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당한다. 가장 바쁜 엄마의 대표격인 사회복지부 장관 로사는 본인이 살해당하는 대신 딸이 실종되고 아들마저 납치되는 테러를 당한다.

혈연가족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입양 가정에서 왜곡된 양육으로 결핍된 영혼은 엉뚱한 대상에게 원한을 품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사적 복수를 감행한다. 살해당한 엄마들은 직장 일로 바쁘거나 너무 젊어서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여성들이다. 이런 엄마들에게 방치당하는 아이를 보면서 살인자는 자기의 범행을 합리화하고 거침없이 엄마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도려낸다.

<더 체스트넛 맨>은 성평등이 제법 구조화된 것처럼 보이는 북유럽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일차적인 일은 가정 내에서의 돌봄이라는 정서가 뿌리 깊다는 것을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순진하게도, 나는 이 소설 내용이 정말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조동연 교수에게 가해지는 우리 사회의 그악스러운 폭력을 보기 전까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마치 엄청난 범죄인냥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패륜적인 말을 쏟아내고, 이에 환호하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퍼 챗을 보내며 열광했던 사람들과 입양 가정에서의 폭력 피해 트라우마로 인해 다른 아이들의 소중한 엄마를 살해하는 체스트넛 맨의 살인자. 당신이 보기에 누가 더 잔악하고 소름 끼치는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미혼모 ‘동백이’는 그렇게 응원하면서 피해를 당했음에도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였고, 그 와중에 자신의 전문성을 갈고 닦으며 누구보다 뛰어난 프로가 된 조동연 교수에게는 온 사회가 일어나 마녀사냥을 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더 체스트넛 맨>의 로사 장관은 어릴 때의 실수로 어린 남매를 지옥과도 같은 환경에 떨어뜨렸다는 아주 간접적인 원인이라도 있지만, 조동연 교수는 무차별 공격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자신보다 잘나가는 육사 동기에 대한 남성들의 질시와 개인사를 사회적 폭력의 소재로 기꺼이 상납한 전남편의 복수심과 이를 등에 업고 때는 이때라며 온갖 적나라한 말로 조동연 교수를 악마화하는 유튜브 가로세로***과 민주 진영 인사들에게는 먼지 하나조차 기소하듯이 보도하는 기득권 언론들과 정파에 따른 온도 차를 심하게 드러내는 여성계의 비겁한 대응이 합쳐져 이러한 유혈 낭자극이 탄생한 것이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는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 세상을 상상함과 동시에 사랑에 대해서도 이렇게 강조했다.

“사랑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이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다시 돌아와 사랑이 가진 변화의 힘을 선언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혁명과 같다.”

페미니스트가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니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 이 사회에서 주류가 된 페미니즘 구호에 사랑 비슷한 무엇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된 까닭이리라.

혹자는, 조동연 교수 사건을 여성에게만 가혹한 도덕주의, 정상 가족 담론의 허구성, 개인사와 가정사에 대한 언론의 선정주의적 보도 행태 등 대선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 와중에서 일어난 문화적 폭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더 체스트넛 맨>의 가해자처럼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방어와 성공하는 여성에 대한 질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평가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유독, 이 사건에서 드러난, 진영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페미니즘 때문에 서럽고 속상하다.

페미니즘이 그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가? 지난 4월에 페미니스트 시장이 되겠노라며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던 녹색당 신지예 씨가 최근 국민의 힘에 전격 입당했다. 그녀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이 이번 행보에 실망하며 지지를 철회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녀는 대체로 페미니즘을 자신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 언제든 쓰고 버리는 도구로 활용해왔다. 대안적 세상에 대한 비전은 오간 데 없이 늘 거대 정당의 ‘안티’로만 존재하면서 ‘돋보이려는’ 도구로 페미니즘을 선택하는 이런 행동이야말로 페미니즘이 얼마나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가 아닐까? 나아가 여성을 타자화하고 도구화하고 수단으로 삼는 것을 비판했던 페미니즘은 이제 그 페미니즘이라는 도구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을 공격하고 타자화함으로써 진영을 위한 편리한 방어논리로 전락한 것도 같다.

이렇게 길을 잃은 페미니즘을 보며 여성도 인간임을 외치며 함께 자매애를 외쳤던 시간이 꿈인 듯 사라지는 것 같아 내내 씁쓸하다. 또한, 어느 틈엔가 우리 사회에 “방향을 알려주던 화살표 같은 존재들이 이젠 이 세상에 없다는 것”(홍은전, 2020)을 처절히 깨닫게도 된다.

공직을 맡은 것도, 부도덕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닌 조동연 교수에게 가해지는 테러와 그 상황을 멀뚱히 지켜보면서 “민주당에서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은 탓”이라는 논평을 내는 여성단체를 보노라니 내가 알던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나 아득한 추락의 느낌마저 든다.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은 끝없이 흔들리며 갈 길을 알려준다.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기에 페미니즘은 쉼 없이 갈등하면서도 끊임없이 바른 방향을 모색한다. 입장이 다른 부딪힘으로 자잘한 상처가 나더라도 페미니즘은 언제나 바른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끊임없는 흔들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거짓을 감추고 범법 행위를 감싸는 도구로 페미니즘을 활용하는 그들에게선 어떠한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도 당당히 확신에 차서 자기편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화살촉을 날리며 세상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데 보탬이 되는 화살표를 없애버린다.

화살표가 사라진 세상에서 화살촉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조동연 교수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꿋꿋하게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한 그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덧붙여, 당신은 이미 무수한 화살촉을 맞으면서도 사랑을 선택했기에 이미 충분히 페미니스트라고도 말하고 싶다.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는 언제나 우리를 속박에서 자유로, 사랑이 없는 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이끈다. 페미니즘 정치를 택하는 것은 곧 사랑을 택하는 것”(벨 훅스)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택함으로써 방향을 알려준 화살표가 된 당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초라한 글을 올린다.

* 이 글은 소설 『더 체스트넛 맨』, 드라마 ‘지옥’, ‘벨 훅스’에 대한 전지윤 님의 포스팅, 홍은전 님의 책 『그냥,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배영미(기독여민회 홍보출판위원장)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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