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tthias Grünewald, 「The Isenheim Altarpiece」 (1509-1515) ⓒWikimediaCommons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누구든지 바르트 신학의 출발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선포의 필요와 약속”(미주 1)에서 바르트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목사로서의 바르트와 대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목사의 특별한 문제, 곧 설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깨달았고, 그로부터 철저한 성서 연구를 통하여 마침내 “성서 안에 있는 신기하고 새로운 세계”(2),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계시하면서 주권적으로 그리고 활동적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3)

특히, 1916년 6월부터는 그가 소년 시절에 견신례를 받으려고 성서 교육을 받을 때 그 책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던 로마서를 마치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읽지 않았던 것처럼 읽고 주석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결국 1919년에 출판된 유명한 『로마서 강해』가 되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돌 하나도 처음 장소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개작하고 1922년에 제2판을 내놓았는데, 바로 이 1922년판 『로마서 강해』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4)과도 같은 효과를 냈다. 바르트는 이 『로마서 강해』 제2판 서문에서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들을 열거한다.(5)

그러나 거기에 빠진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독일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2-1528)이다. 바르트는 그의 새로운 신학적 추구의 과정에서 그뤼네발트를, 무엇보다도 ‘이젠하임(Isenheim)’ 성당의 제단장식화인 그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crucifixion)라는 그림에서 힘차게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거룩함과 존엄을 지시하는 이상하게 생긴 집게손가락을 가진 세례 요한을 발견했다.(6) 그때부터 바르트는 이 그림의 사본을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그의 책상 위에 줄곧 걸어놓았다.

바르트는 후에 여러 곳에서 그가 그 당시 이 그림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적 증언의 참된 성격”이었다고 밝히고, 신학의 기능과 역할은, 특히 그리스도론의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세례 요한의 집게손가락이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그뤼네발트의 그림에서 바르트가 발견했던 ‘성서적 증언의 성격’을 해명하고, 이어서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참된 증인인 세례 요한의 관계에 대한 해명을 통하여 성서적 증언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학의 학문성에 대한 간단한 논의와 함께 신학의 특징을 성서적 증언과의 관련 속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같은 신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해명을 통해서 신학의 과제를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노선과 성서적 통찰

이 천재적인 화가가 그린 이젠하임 성당의 제단 장식화는 그 자체로 신약성서 요한복음의 요약이다. 그림의 오른 쪽에서는 세례 요한이 이상하게 생긴 집게손가락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의 뒤에는 라틴어로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 요3:30)는 말씀이 적혀있다. 그의 발아래에는 십자가를 짊어진 어린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가리킨다(2:29, 36). 그림 왼쪽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이 애통해하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Mater dolorosa)를 부축하고 있다. 그 아래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십자가를 우러러보는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이다(19:25-27).

바르트는 언젠가 그가 매우 좋아했던 18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모차르트(W. A. Mozart)를 평하면서 그에게는 “광적인 자기표현이 없고”(CD Ⅲ/3, 298), 그의 음악은 마치 청자들을 그의 주관성이라는 “달팽이 껍질로부터 헤어 나올 수 있게” 초대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7) 바르트가 그뤼네발트의 그림에서 발견했던 것은 정확히 그와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은 주관성이라는 달팽이 껍질에 갇힌 채 자기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넘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만을 가리킨다. 바르트가 이 그림에서 발견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고, 그 이후 그는 성서적 증언의 기능을, 그뤼네발트의 제단 장식 그림에서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기꺼이 묘사했다.

이와 같이 바르트에 의하면 “증언하는 것은 자신을 넘어서 타자를 향하여 한 특정한 방향을 지시하는 것을 의미한다”(CD Ⅰ/1, 111). 증언은 자신이 아니라 타자의 진리를 보증한다는 점에서 타자에 대한 섬김이고, 그 섬김은 이 타자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섬김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개념에 구성적인 요소이다. 고전 9장 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라고 진술한다. 바르트는 바울의 이 말이 정확히 구약의 예언자와 신약의 사도 모두에게 공통적인 상황을 서술한 것이라고 말한다(CD Ⅰ/1, 111).

이러한 섬김의 자리에 서 있는 성서적 증언들은 한결같이 그들 자신을 넘어서 저 복음의 하나님을 지시한다. 성서의 증언에는 하나님의 권위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있다. 예수는 궁극적인 것이 종교적인 교리나 전통에서(참고, 마 5:21이하, 막 11:28이하), 혹은 국가의 권리(막 12:13-17)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거부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죽이는 문자와 생명을 주는 성령을 구별했다(고후 3:6). 또한 개혁자 루터는 구원과 자유를 주시는 그리스도의 해방하는 메세지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모든 성서 본문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지푸라기’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칼빈은 루터처럼 그렇게 강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성서의 문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비로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주는”(시 19:7) 생명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했다.(8)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 그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증언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증언(성서)과 증언된 것(살아 계신 하나님)을 구분하는 문제이다.(9) 그래서 바르트는 “진정한 증언은 그것이 증언하는 내용과 동일하지 않고, 다만 우리 앞에 그 내용을 내놓을 뿐이다”(CDⅠ/2, 463)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서적 증언들은 그 자체로 진리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참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그 자체와 무관한 진리를 지시하기 때문에 참된 것이고, 정확히 이렇게 해서 성서의 증언들은 그들 자체를 넘어서 하나님의 객관적인 현실성을 가리키는 진술들로서 간주되는 것이다.(10)

바르트는 그 형식의 통일성에서 성서적 증언들의 모델을 구약과 신약 사이, 예언자들과 사도들 사이의 한 가운데 그렇게 두드러지게 서 있는 세례 요한이라고 본다. 여기서 바르트는 다시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나타난 세례 요한을, 특히 그의 비정상적으로 긴 집게손가락을 회상한다: “어느 누가 자신을 넘어서 다른 누구를 그보다 더 인상적이고 완전하게 지시할 수 있는가, 또한 어느 누가 여기서 지시된 것을 그 보다 더 인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지시할 수 있겠는가?” 바르트는 이것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이 요한, 그러므로 다른 요한에 대하여, 따라서 아주 명백하게 모든 “요한”, 즉 모든 진정한 증언자들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천명한다(CDⅠ/1, 112).

바르트에 의하면 그리스도론은 “성서에서 눈에 띄는 바로 이 손가락”(11)의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이 그뤼네발트의 그림이 충실한 ‘그리스도론’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론의 역할은 단지 세례 요한과 같이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일이고,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그를 경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CDⅠ/2, 125). 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인 세례 요한은 그가 확고하게 가리키기 시작한 바로 그 대상을 위하여 전면에서 사라진다. 바르트는 1920년에 행한 한 강연에서 세례 요한이 그가 증언하는 그 대상을 보면서 했던 바로 이 말이 ‘성서의 노선’이고, ‘성서적 통찰’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예언자, 하나님의 사람, 보는 자요 듣는 자가 그의 힘차게 가리키는 대상을 대하는 입장이다. 대상, 본질, 신적인 것 그 자체는 점차 더 큰 의미를 획득하고, 역할, 경건, 교회의 의미는 점차 더 약해지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성서노선, 성서적 통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1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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