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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1.30 13:49
▲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Getty Image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 받는 일이 결코 없다.(로마서 8,1)

기독교인들에게 이 말처럼 듣기 좋은 말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바로 앞에서 바울은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고백했는데도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듣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는 말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흔히 말하듯 예수를 믿고 주로 고백하는 자인가요? 그럴 수 있겠지만 이 문맥에는 그러한 내용의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그 고백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백의 실제 의미 내지 전제에 더 관심이 있어서 그럴 것 같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고백행위가 중심인데 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존재 위치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영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며, 그 예로 ‘우리’ 곧 바울 같은 사람들을 들며,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9절).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했던 바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길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그는 육신대로 살면 곧 죄의 법을 '계속' 섬기면 반드시 죽고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니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말라고 권고합니다(13절). 그는 이렇게 살고자 했고 또 살았을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서도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정죄 받는 일이 결코 없을까요? 육신에 져서 육신 대로 산다면 그 고백은 아무 효과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되고 영의 일을 생각하며 그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삶이 바뀔 때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일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영의 요구를 따를 때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고 율법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른바 율법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최고의 것은 다 아시는 대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소극적으로는 남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남을 불쌍히 여기며 자기 몸처럼 대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영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등치관계가 아닙니다. 전자는 후자를 꼭 동반하지 않으나, 후자는 전자를 반드시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사랑으로 확증하는 오늘이기를. 영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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