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걸개그림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홍성담씨가 그해 8월 8일 오전 광주 금남로 매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정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홍씨는 허수아비로 묘사해 논란이 된 박 대통령의 모습 위에 닭을 그려 넣어 “고통 받는 민중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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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중미술가 홍성담은 1955년 전남의 한 해변에서 태어났다. 1980년 광주, 그가 미술을 공부하던 도시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으나, 군부에 의해 민중항쟁은 처참하게 실패로 끝났다. 홍성담은 판화 시리즈를 통해 당시 광주 시민군을 진압했던 군부독재의 실상을 증언했다. 군부의 잔혹한 진압과 살해당한 시민들의 모습을 판화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기억 자체가 금지되었던 시대에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판화 시리즈에서 홍성담은 광주 민중항쟁 기간 중에 보여주었던 민중의 저항정신과 헌신적인 연대, 형제자매애를 형상화했다.(1) 1980년의 광주 민중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한국현대사에서 민중의 투쟁과 희망의 역사적 원천을 홍성담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찾는다.

홍성담은 억압과 해방의 현실을 언제나 역사의 빛에서, 역사와의 대화에서 조명한다. 그것은 기억의 힘에 대한 그의 신념 때문이다. 저항과 투쟁의 역사에 대한 기억은 지배자들에게는 위험한 기억이다. 그러나 억압받는 민중에게 그것은 희망과 저항을 위한 상상력의 원천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그에게 한국은 빈곤과 권위주의적 권력의 감시와 압제가 일상화된 나라였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권이 유보된 겨울공화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홍성담에게는 저항이었다. 양심이 그를 저항의 길로 인도했고, 그의 예술은 칼이 되었다.(2)

예술이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싸움의 도구로 이용되는 세상은 그 자체가 지옥이다. 독재자가 입을 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한다. 지식인들과 예술가의 자기검열도 시작된다.(3) 그런데 홍성담은 침묵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스스로 묶지 않았다. 그는 광주를 판화 시리즈로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고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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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남한에서는 여름 올림픽이 열렸고, 그 다음 해인 1989년 7월, 북한의 평양에서는 제13차 세계청년대회가 ‘반제 연대, 평화와 우애’를 주제로 개최되었다. 홍성담도 이 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심하였다. 남한 사람이 북한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북한에 몰래 보냈다.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망명해 있던 친구를 통해 그는 12장의 슬라이드를 북한에 보냈다. 북한 예술가들이 작품을 재생할 것을 부탁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벽화였다. 억압과 저항의 한국역사의 연대기였다.

북한의 젊은 예술가 70여명이 홍성담의 작품을 재생했고, 그것은 가로 77미터 세로 2.4미터 크기의 거대한 작품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대중매체는 이 작품의 작가가 홍성담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남한 경찰은 곧바로 홍성담을 체포했다. 1990년 2월 홍성담은 국가보안법에 의거, 작품의 슬라이드를 북한에 보냈다는 이유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의 젊은 예술가들이 재현한 이 벽화는 아직 평양에 있지만, 원본은 남한 경찰에 의해 파손되었다.(4)

수사과정에서 홍성담은 고문을 당했다. 20일 동안 물고문을 당한 것이다. ‘물속에서의 스무날’(1999년) 연작(5)과 ‘반가사유’(1999년)(6)는 이 시기에 그가 당한 물고문 경험을 10년이 지난 후에 형상화한 작품 시리즈이다. 자신이 겪은 물고문 경험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기까지 10년이 지났다는 것은 물고문이 그의 몸과 영혼에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반가사유’(1999년, 130x193cm)에는 물고문을 하는 두 명의 심문관과 고문당하는 홍성담 자신이 등장한다. 심문관 한 명은 책상 위에 앉아 고문당하는 사람의 머리를 뒤로 제쳐 붙잡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주전자에 담긴 물을 손과 발이 묶여 있는 고문당하는 사람의 얼굴에 붓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고문의 도구들(주전자, 책상과 걸상, 손발을 묶은 끈 등)은 보이는데, 두 명의 심문관과 고문당하는 사람은 윤곽만 있을 뿐, 투명하고 잘 보이지 않으며 배경 속에 흡수되어 있다.

▲ 홍성담의 ‘반가사유’

고문은 고문당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고문하는 사람도 비인간화시킨다.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선과 형태로 구별되지만 고문하는 사람과 고문당하는 사람은 배경에 흡수되어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체제와 그들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고문당하는 사람은 체제의 적이므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고문하는 자는 체제 속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계급과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다. 고문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때에도 그들은 먹어야 한다. 책상 아래 놓인 두 개의 밥그릇과 반찬그릇들은 고문의 일상성, 고문하는 자도 인간임을 보여준다. 고문이 끝나면 그들은 자식 걱정,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걱정을 서로 나누는 평범한 인간이다. 우리가 길 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고문당하는 사람은 발가벗겨져 붉은 색 밧줄로 묶여 있다. 고문당하는 사람에게는 고통과 고난을, 고문하는 자에게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체제 반대자는 모두 공산주의자이다. 분단된 한반도에서만 통용된 논리가 아니다. 반공주의는 고문을 정당화했다. 모든 반체제론자들은 공산주의자라는 거짓이 체제유지의 힘이었다.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작가 솔제니친(A. I. Solzhenitzyn)은 “폭력은 어김없이 거짓과 하나로 얽혀있다. … 폭력은 거짓말에서 은신처를 찾고, 거짓말은 폭력에 의지한다.”고 말했다.(7) 폭력이 유지되는 것은 권력의 거짓을 대중매체가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언제나 직접적인 물리적인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거짓에의 공모와 충성을 강요하고, 언론은 그 목적에 이용당한다.

그러나 홍성담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독재정권도 그를 고문하는 심문관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홍성담에게는 그것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고문하는 심문관에게서 그는 어떤 정치적 신념도 - 설령 그것이 잘못된 신념일지라도 -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기계였다. 홍성담은 고문당하는 사람과 고문하는 사람 모두를 파괴하는 국가 시스템은 용서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고문한 사람을 그는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악에 대한 연약함’은 인간의 근본문제이고, 그들 심문관들도 ‘악에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 체제에 대한 그의 저항이 이로써 약화된 것은 아니다. 고문이 고문하는 사람과 고문당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비인간화하는지를 확인 할수록, 인간이 악에 대하여 얼마나 약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수록, 악한 체제에 대한 그의 분노와 저항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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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를 정작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물’에 대한 그의 생각에 혼돈이 일어난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홍성담에게 물은 바다 속 숲을 물고기와 함께 자유롭게 헤엄치던 유년시절의 기억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물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제공한다.(8) 물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의 근원이다.(9) 섬에서 자란 그에게 물은 경계를 의미한다. 바다 건너 저 편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꿈을 꾸게 했고, 바다 건너에는 보다 더 낳은 세계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일깨웠다. 물은 경계이자 다리였다. 섬과 육지, 생명과 죽음의 경계이자 다리였던 것이다.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치던 홍성담은 이제 채 50cm 깊이도 되지 않은 욕조에서 다른 물을 체험한다. 묶인 채 거꾸로 욕조 속으로 처박힐 때, 그는 익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꼈다고 한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물고문 자체만이 아니었다. 생명의 근원, 자유, 꿈을 의미했던 물이 고문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10) 물속에 잠긴 순간, 바닥없는 깊이에로 한 없이 가라앉는다고 느끼는 순간,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억은 되살아난다. 그 기억은 일상적 경험이다. 밥, 물고기, 헤엄치기, 집, 달과 별, 감옥, 닭, 섹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은 물 밖에 있다.(11)

홍성담은 어떻게 이런 정신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떠올랐던 수많은 기억들, 자신의 삶과 의식을 형성했고 지배하고 있는 모든 다양한 기억들이 파도 혹은 작은 물고기들로 변하여 바다 안으로 들어온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다. 물고기들과 함께 자유롭게 헤엄치던 홍성담 자신도 물고기로 변한다. 가라앉는 의식 속에 떠올랐던 기억들 속을 헤엄치던 물고기는 눈이 없다.(12)

그런데 기억이 파도 혹은 작은 물고기들로 변한 ‘물속에서의 스무날, 8’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큰 물고기들은 눈을 뜨고 있다. 고문당한 의식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 변한 것은 물고기의 눈만이 아니다. 밥의 색깔도 변했다. 황토색 밥이 하얀 색 밥으로 바뀐 것이다. 고문 받던 의자(13)가 있던 자리에 밥그릇이 놓여있다.(14) 죽음이 있던 자리에 생명이 되돌아 온 것이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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