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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 민중교회” 목회자를 향한 발걸음정상시 목사, 34년만에 안민교회에서 은퇴하다 ⑵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2.02.06 13:14
▲ 어려웠던 시절 4년 동안이나 감옥을 오가며 늦깎이로 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던 정상시 목사는 “복음적 민중교회”라는 이상을 품고 교회로 다시 돌아간다. ⓒ홍인식

군사독재시절 한 가운데를 살아가며 그 자신도 학생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정상시 목사. 이러저러한 일로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옥을 오가야 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못다한 공부와 독서의 시간을 보냈다며 너털 웃음을 지어보였던 정 목사.

그렇게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앞날을 준비하며 여러 시민사회단체도 전전해야 했다. 그렇지만 정 목사의 가슴 한 켠에는 늘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소위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우성이었다.

결국 정 목사는 개척교회를 시작하며 사회운동가에서 목회자의 길로 접어든다. 두메산골, 한국에서 보수적이고 신앙 좋기로 두 번째 가라고 하면 서러울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 출신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 듣기 딱 좋은 “복음적 민중교회”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스스로가 만들어낸 용어는 아니었지만 그의 가슴을 붙들고 있었던 “복음적 민중교회”를 향한 발걸음은 어떠했을까?

▲ 개척 경험이 결국 목사님을 사회운동가에서 목사의 길로 접어 들게 만들었던 거군요?

정상시(이하 정): 그렇죠. 제가 지향했던 방향은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적 민중교회 운동’입니다. 목마름 교회 이후 85년도에 저는 안양 박달동에 박달교회를 개척합니다. 저는 수도권, 노동선교를 생각하고 결국에는 안양 박달동 지역을 선교지로 택하고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개척초기에는 당연이 교인이 없었고 어떤 때는(방문자가 없을 때는) 아내와 단 둘이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목회 활동 외에도 나는 교회 내에 노동 상담소, 박달 지역사회학교, 마을 무료 진료소 등을 설치하고 운영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교회의 본연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예배와 성경공부 기도회 등 일명 영적 활동보다는 사회적 활동이 더 많았습니다. 이렇게 일단 민중교육 운동을 통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하긴 했는데 당시에 민중교회로서의 목회자적인 준비나 혹은 소양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영적인 측면과 물질적 측면에서도 준비가 안 됐지만, 당시 우리는 우선적으로 교회가 민중들을 향한 관심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죽어가는 민중 아벨의 핏 소리를 듣지 않은 교회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가면서 교회를 교회되게 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또 한편으로는 민중의 피눈물을 무시하는 기성교회에 대한 분노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어우러져서 민중교회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목사님께서는 이번에 발간하신 책에서 복음적 민중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복음적 민중교회라는 개념이 당시의 운동권 기독교인들한테는 낯선 것이었고 따라서 문제를 일으켰을 것 같은데요. 수정적 개념이 아니냐는 논쟁도 발생했을 것 같은데요?

정: 그렇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에서 제가 이것에 대하여 쓰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라”입니다. 이번에 교회를 은퇴하면서 마지막 고별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민교회에서도 어느 해인가 목회표어도 그렇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굳이 민중교회도 필요 없고 복음적 민중교회도 필요 없고 원래는 교회라는 말 안에다 들어가는 소리인데 당시로서는 너무 반민중적인 교회가 대다수였고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중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그리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부터 복음적이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닙니다. 민중교회 운동을 하는데 내 자신도 완전히 사회 운동가로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그러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 사회운동가라는 정체성이 더 강력했다고 봅니다.

제가 시무했던 안민교회의 경우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는 우리 교회가 노동 상담소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상담자 수는 당시 대투쟁 때는 미어터집니다. 평일에는 얼마나 많이들 찾아오는지요. 그런데 주일날에는 아무도 안 옵니다. 그래서 어떤 주일에는 나하고 아내하고 둘이 예배드린 적도 많았습니다. 평일 날은 교회가 좁은 공간인데도 그렇게 많이 오고… 베란다에 신발을 갖다가 착착 싸놓아야만 될 정도로 모인 적도 있고 그랬어요.(웃음)

하여간 그런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 운동을 하고 노동 문제, 지역 문제, 혹은 역사 문제들을 제기하고 투쟁에 참여하면서 민중들을 위로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그 고민의 일환으로 당시 복음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체가 공유한 개념이라기보다 제가 의도적으로 많이 썼던 표현이고 개념이었습니다.

복음적 교회에 대한 고민을 정 목사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정상시 목사에게 교회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곳이어야 했다. ⓒ홍인식

격동의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을 다시 물었다. 안민교회,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사회운동의 연장선에서 시작된 교회, 민중교회 운동의 정체성 위기를 겪었다. 전체 사회 운동의 부문으로서 민중교회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 회복으로서 복음적 민중교회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교회 이름도 박달교회에서 안민교회로 바꾸었다. 교회 주소가 박달동에서 안양동으로 변경된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복음적 민중교회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 담겼다. 안양의 복음적 민중교회를 표방한 이름이 안민교회'였다. 교회 선교 프로그램도 달라졌다. 노동자 선교 프로그램에서 지역 주민 선교 프로그램인 지역아동센터, 어르신 사랑둥지, 경로식당 등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지역을 들여다보니 노동자가 못된 위기 당한 이웃들이 많았다. 지하 단칸방의 독거 어르신들, 결식아동들, 실직자들.... 전에 보이지 않던 주변 이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하고 교회 선교지형도 바뀌었다. 국내외 정세도 80년대와 달라졌다. 소련의 붕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세계화의 밀물, 문민정부의 탄생 등이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안민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다시 물었던 것이다. 그런 질문 속에서 신앙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성경공부 등 양육 프로그램에도 열심이었다. 그런 변화의 함의가 담긴 '안민교회'인데 어머님이 한마디 하셨다. “얘야, 좋은 이름 놔두고 왜 하필 안 믿는 교회냐?" 하셨다. 안민교회가 안 믿는 교회'로 들리셨나 보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목사였으면 어머님이 저러셨을까 생각하니 새삼 내 부족함이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믿는 교회, 신앙공동체로서, 복음적 민중교회로서 조용한 성장을 해갔다.(『평화로 가는 길』, 21)

▲ 목사님 입장에서는 현장에서의 실천과 교회의 전통적인 목회의 균형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결과로서 복음적 민중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정: 제가 본래 고신파 출신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복음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복음이라는 말이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데 이 말이 많이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복음이라는 말을 회복시키고 싶었습니다. 역사를 떠나 존재하는 복음은 본래 복음이 아니죠. 복음은 언제나 역사와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와 현장이 있는 갈릴리 복음의 회복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갈망이었지요.

일상의 삶 속에서의 신앙 삶의 신앙으로서 민중 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 민중의 삶 현장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런 의미에서 민중적 신앙 공동체가 서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민중의 삶의 현장 즉 일상성 속에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문제를 복음적 민중교회라는 말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 목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요약해 보면 복음적 민중교회는 역사의 현장 한 복판에 참여하고, 또한 사건으로서도 참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성-신앙적 공동체로서의 모습의 교회공동체라는 말로 들립니다. 복음적 민중 혹은 해방복음적 민중교회라는 그 개념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많은 사람들한테 공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 네 그렇습니다.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안민교회에서 34년, 그 전에 서울에서 청년 목회 2년 포함해서 약 36년을 목회했습니다. 어찌 보면 복음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이야기의 핵심은 ‘복음을 복음 되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자.’라는 것에 집중됩니다.

▲ 해방복음적 민중교회 개념은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될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론이 발전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은퇴하는 하셨으니까 좀 더 자유로운 시간이 많으실 텐데 지금까지의 복음적 민중교회의 경험을 살려서 위의 개념들을 연구하고 좀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안민교회를 개척하고 처음에는 사회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교회는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홍인식

정: 사실은 제가 어떻게 보면 저는 이 공부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거의 4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생활로 보냈고 그래서 늦깎이 졸업도 했지요. 그래서 제가 그런 연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도 있기는 합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에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습니다.(웃음)

제 경험으로 돌아보면 목회 현장에서 민중적 개념과 신앙적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과제예요. 어떻게 보면 해방과 초월의 문제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해요. 이것을 어떻게 목회적으로 녹여내느냐 이것이 민중교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손쉽게 사회운동으로 빠져버리고 아니면 영지주의적 초월로 완전히 가버립니다.

민중교회를 하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사회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늘 예배와 영성적인 면도  많이 강조를 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이랄까, 어쨌든 기본으로 해야 될 걸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이를 테면 예배를 혼신을 다해서 준비하려고 했고 예배 설교와 성경 공부도 계속해 나갔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목회자의 정체성도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에 대한 좀 자기 내적 성찰이나 싸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김경재 교수님이 추천사에서 저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책 2부에 실린 저의 설교를 읽으시면서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운동권 목사를 넘어 목사라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제가 총회나 노회에서 소위 붉은 레벨을 달고 있는 운동가로만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경재 교수님의 추천사나 홍 목사님의 ‘정 목사님은 진짜 목사님입니다.’라는 말이 좋게 들립니다.(웃음)

지금까지 교회를 목회하면서 ‘열 명이건 수백 명이건 숫자는 상관없이 이 교인들하고 어떻게 목사의 마음으로 교회를 나갈 지켜나갈 수 있느냐’가 저의 고민이었고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했지요.

▲ 목사님, 이제 마지막으로 교회 이야기를 넘어 에큐메니컬 운동 쪽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라든지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도 참여 하셨죠?

정: 네, 인권센터 이사도 하고 화해통일위원회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일했습니다. 70-80년대 NCCK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굉장히 고마운 보루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에 비해 처음 사랑을 좀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위상도 많이 약해졌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양성 속의 일치 운동으로 그 중요성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너무 교단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단 협의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NCCK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이 존중되고 협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습니다.

요즘 지역 NCC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 NCC가 여기저기 많이 세워졌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기중부에도 설립되었고 아직은 열악한 상태지만 방향성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NCC의 활성화가 오늘 NCC운동이 당면한 문제들의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가 NCCK운동에 대해서 감히 무슨 조언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지금은 어떻게 보면 조정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기간 동안에 에큐미니안 같은 언론의 지형 역할들이 좀 강화돼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관심이 모아지고 해서 나아갈 방향이 잘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NCCK 내부를 넘어 NCCK 바깥의 운동들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지역 NCC 운동의 활성화를 통하여 너무 교단에 휘둘리는 NCCK 운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것은 은퇴하고 원로가 된 사람도 많이 있잖아요. 역사성에서 나오는 역사적 영성을 가진 분들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우리 사회의 비빌 언덕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사람들이 좋은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다음 세대들하고 연결을 해서 운동을 발전시키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원로들과 젊은 세대들이 소통을 하면서 서로 나누는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니 소통이 단절되고 맙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지요. 이런 네트워킹이 필요합니다.

▲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큐메니안이 상상하고 생각하고 있는 운동이 있습니다. ‘오이 숙숙 운동’이라고요. 오이는 ‘오병이어’라는 의미도 있고 오이 자체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이가 숙숙 자라듯이 선배들이 오이를 잘 길러내자는 의미입니다. 오병이어 다시 말하면  조그마한 것들이 쑥쑥 자랄 수 있도록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오이(오병이어)서로 내고 다음 세대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오이(오병이어)나누고 해서 오이를 쑥쑥 키워보자는 운동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네트워크가 이루어져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게 하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목사님이 제안하신 네트워킹과 같은 의미의 운동일 것입니다. 목사님 오랜 시간동안 대화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목회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겨 주십시오.

▲ 이제 새로운 담임목사와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안민교회 ⓒ홍인식
정: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많이 닥칩니다. 그럴 때 마다 ‘양철 지붕’이 되지 말고 잘 버텨달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목회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힘들겠죠. 그렇지만 그 고비와 위기를 고난의 영성의 기회로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보면 고개 마루에서 뭔가 좀 보이지 않겠습니까.(웃음) 감사합니다.

정상시 목사는 그의 책 “평화로 가는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비난거리가 되고 세상의 근심이 되고 있다. 세상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 자신을 위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극우 반공주의, 물신주의의 탁류에 교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염되어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동시에 진보적 교회는 이념적 울타리에 스스로 갇혀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극단이 문제이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본질로서 다양성 속의 일치 공동체로서, 평화를 만드는 교회를 새롭게 세워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도적인 교회 밖에서 평화를 만드는 다양한 대안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런 평화 담론을 만드는 이야기 공동체, 밥상 공동체, 놀이마당, 섬김과 나눔 공동체 말이다. 나의 새로운 시작, 평화 동산 등산도 마찬가지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평화로 가는 길은 있다. 평화 공동체가 평화로 가는 길이다.”(『평화로 가는 길』, 25)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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