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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달콤한 미래를 약속하는 자들아시대와 거짓의 분간(예레미야 23:30-32; 누가복음 12:51-5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2.06 13:12
▲ Theophile Alexandre Steinlen, 「Prophet by Swiss」 (1902) ⓒNational Gallery of Art

30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3:30-32)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12:51-53)

이번 주일은 주현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간 성서일과에 따른 본문은 예레미야 23장 23-32절, 시편 147편 1-11절과 20절, 누가복음 12장 49-59절, 요한계시록 8장 1-5절입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예레미야 본문은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47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회복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장 말씀은 오래전에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분쟁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이고, 요한계시록 8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각각의 본문은 따로 생각해봐야 할 부분들도 많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심판의 때에 관련된 말씀들이고, 시편은 그 이후 하나님께서 이루실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들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현절이라는 절기에 따라 생각했을 때, 심판의 때를 잊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함을 전하기 위해서 이런 본문이 정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저희는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예전에 전해드렸던, 누가복음 12장 49-59절의 말씀을 잠시 살펴본 후에 예레미야 23장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시대의 분간과 화해

누가복음 12장 49-59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이상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 평화와 기쁨을 주러 오신 예수님께서 분쟁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불’로 표현되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검’을 주러 오셨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이런 말씀을 전하셨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유대-로마 전쟁 이후 교회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전쟁의 암운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하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를 파악하긴 쉽지 않지만, 마태와 누가가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전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마태의 경우에는 가족을 버리고 제자의 길을 걸으라는 의미로 이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10장에는 이 말씀 뒤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방랑하며 회개를 선포하셨던 예수님의 의도는 마태복음이 생각했던 바와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이와 다르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였습니다. 저희 성경에는 누가복음 12장 49-53절이 한 단락이고 54-59절은 다른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저는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9-59절의 말씀은 시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분쟁하는 가운데 서로의 시대를 바라보게 되고, 서로가 살아가는 시대를 알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며 날씨를 예측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58절에 나타난 화해로 끝맺게 됩니다.

시대를 분간하려면 그 시대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쟁을 단순한 다툼, 분열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분쟁이고 분열입니다. 그렇기에 서로를 바라보게 하며 화해의 길로 이끄는 분쟁이 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분열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드렸습니다. 지금 서로가 갈라지고 나뉘어 싸우고 있는 상황들은 어쩌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분쟁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논쟁과 다툼 속에서 우리는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바라보게 되고 인식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조금 양보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지금의 분열을 더욱 큰 분열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이런 분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더욱 큰 분열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먹구름이 끼고 습도가 높아지고 관절이 쑤셔옴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 생각한다고 말하며 그 의지를 꺾지 않기에 내리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화해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시대를 분간하며 바라보고, 서로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를 올바르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거짓에 대한 분간

누가복음 12장이 시대를 분간하며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면, 예레미야 23장의 본문은 거짓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레미야는 잘 아시다시피 바벨론 포로기 직전부터 포로기가 시작될 때까지 예언을 선포했던 인물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시기를 ‘예언의 종말기’라고 부릅니다. 당시 바벨론에 의한 남왕국 유다의 패망과 포로기를 두고 너무나 많은 예언이 난립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기가 70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예레미야 28장에 나타난 예언자 하나냐는 2년 만에 포로기가 끝나리라고 선포했습니다. 당시 이런 식의 예언을 선포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언을 듣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누가 참된 예언자인지 당장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예언서에는 예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직접 부름 받은 참된 예언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명 사건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예언자를 쉽게 믿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자신은 소명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바벨론 포로기가 길어지고,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됨에 따라 예언자들은 점차 어떤 말도 선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바벨론에서 예언을 선포했던 에스겔이 예언자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제사장의 정체성까지도 강조하면서 예언자와 제사장 중간 정도의 위치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는 점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릅니다. 또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예언서 스가랴를 보면, 13장에 더 이상 이 땅에 예언자가 없을 것이며, 예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죽이라고까지 말하는데, 이 역시도 바벨론 포로기 이후 겪었던 예언의 난립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문제는 당시 사람들도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가 거짓 예언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는 쉽게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22절을 보면 거짓 예언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도록 전하지 않는 이들이 거짓 예언자입니다.

선행과 악행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가 안 따르는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과도하게 율법 중심으로 나갈 경우 그것 역시도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길과 악할 행위라는 말만 가지고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하는 일도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거짓이라는 것이 완전히 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거짓말은 진실, 사실과 상반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아이들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진실과 상반된 진술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이제 이런 식의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뻔히 들킬 줄 알기 때문에 진실과 상반된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에 거짓을 섞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눈에 보이는 정보가 A와 C밖에 없다면, 그 사이에 있는, 부모가 볼 수 없는 B를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내용으로 바꿔서 전달합니다. 아마 성인들 대부분이 하는 거짓말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대적했던 예언자 하나냐의 이야기도 살펴보면 크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강하시기에 바벨론의 왕권을 꺾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죄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저 강하신 구원의 하나님만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거짓 예언자들은 거짓과 헛된 자만을 늘어놓아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포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회개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구원과 복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편하게 받을 수 있는 복이기에 사람들을 현혹시키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심판이라는 결과만을 남기게 됩니다.

거짓은 우리에게 순간의 달콤함을 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혼나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삶에서 어떤 순간을 넘기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순간적인 달콤함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거짓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들은 거짓으로 우리를 현혹합니다. 특히 지금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수많은 거짓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거짓들은 진실이 섞여있기 때문에 우리가 분간하기 어려운 그런 거짓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이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달콤한 미래만을 이야기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입니다. 좋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이겨내야 할 어려움과 역경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가 거짓을 말하게 되는 이유, 또 거짓에 현혹되는 이유는 어려움과 고통 없이 편한 길을 가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편한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된 복의 길로 나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선한 길로 나아가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서 그저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힘들고 지치는데, 선하게 살아가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워한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도우십니다.

우리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분열을 넘어 화해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편한 길로 치장한 거짓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 길 끝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참된 평안과 복이 기다리고 있을 줄 믿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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