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의 학문성은 그 대상의 차별성을 인식할 때 드러난다. ⓒGetty Image

일반적으로 학문이란 자연과 세계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하여 정확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연구 활동을 말한다. 그 연구 결과는 언제나 정확한 검증을 거쳐서 그 진위가 판명되고, 진리로 인식된 결과는 학문적인 언어로 체계화되고 정식화되어 천명된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같은 연구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언제나 동일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를 기초로 하여 아직 증명되지 않은 현상의 결과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들은 합리성, 객관성, 정확성, 그리고 보편성의 원리로 추진되고 전문화되며 특수화된다. 서로 반대되는 가설과 진술은 경험적인 실험을 통하여 그 진위가 드러난다. 이와 같이 실험과 검증의 원리에 따라서 정확하게 그 진위를 판명하는 것이 학문의 근본 성격이다. 이 학문성은 자연과학을 지탱해 온 확고한 기반이다. 자연과학은 본래 그 자체를 현상들의 연구와 설명에 제한한다.(1)

신학의 학문성

자연과학에 타당한 이러한 학문성이 신학에도 타당한가? 바르트는 신학과 자연과학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세 가지 주된 특징에 대한 해명을 통하여 이 물음에 답하였다.(2)

첫째, 신학과 자연과학은 ‘유일한 전제’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떠한 전제들이라도 거절한다. 신학과 자연과학은 일정한 세계관과 함께 일하지 않고, 특정한 우주론적 전망을 발전시키지도 않는다. 그 연구 대상에 대한 헌신에 의하여, 그것들은 우주에 대한 모든 전이해를 포기하고,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특별한 우주론적 설명에 전념하는 것을 거절한다. 예컨대, 자연과학은 엄격하게 우주에 대한 경험적-이론적인 연구에만 국한하고, 그것의 설명적 이론들을 철학과 혼합하는 것을 거부한다.

물론 자연과학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그것을 전제들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그것이 보다 순수한 객관성을 향하도록 도와주는 한에서는 귀를 기울인다. 신학도 마찬가지로 그것의 고유한 대상에 헌신하며, 철학이나 전통 혹은 어느 다른 근원에서 발원하는 모든 전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으로 그것의 대상에 정확하게 속한다. 그러므로 신학자 혹은 자연과학자에게는 유일한 전제가 되는 그 연구 대상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전제들을 방법론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둘째, 신학과 자연과학은 모두 인간이 우주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학과 자연과학 양쪽 다 인간의 노력, 인간의 생각과 연구의 관점들이며, 그 연구 활동에서 인간적 계수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연과학은 우주를 인간의 우주, 인간의 관찰과 추론의 우주, 그에 따라서 제한되는 지식으로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신학에서도 우주는 인간 중심적인 지향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지식의 출발점이 인간 자신에게 있다거나, 단순히 그가 인간의 생각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 우주 가운데서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겨나고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하나님의 견지를 강탈할 수도 없고, 그렇게 노력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 자신에 대한 모든 지식을 인간이 쉽게 얻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의 인간적 견지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가 만든 세상을 사랑하시어 그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그의 말씀을 건네셨기 때문이다.

셋째, 신학과 자연과학은 양쪽 다 두 개의 기본적으로 구별되는 영역들, 즉 관찰할 수 있고 객관화할 수 있는 영역과 인간의 관찰과 이해의 범위 밖에 있는 영역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바르트의 신학에서 이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하늘과 땅’으로 나타난다.(3) 자연과학도 마찬가지로, 다른 언어와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를 중요시한다.

즉, 자연과학은 인간의 관찰, 연구, 묘사, 그리고 설명의 제한된 범위를 중요시하고, 인간이 도달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을 적어도 그것의 지식의 경계로서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것은 정확히 정밀과학이 되기 위하여 정지를 명한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으로서 그것은 그것의 경계 저편에 있는 것에 대하여 존경할 만한 침묵을 지키고, 그것의 방법을 그것의 범위를 넘어서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거나 변조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연과학이 엄격한 학문적인 성실성을 유지할 때, 신학은 다른 과학들과 유익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신학은 다른 이 과학들이, 특히 인간의 현상들이나 혹은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특징들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을 인지하고, 그들의 발견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끌어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것의 고유한 지식과 관련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신학의 방법론적인 친밀함은 자연과학이 그것의 연구방법을 전개하는 본질적으로 좀 더 과학적인 방식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어떤 학문을 과학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 학문의 연구자가 자유로운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 분야의 대상의 성격에 매이고, 그 대상의 객관적인 현실과 고유한 합리성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연구 방법은 자유롭게 연구 대상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혹은 냉정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되는 근거들에 의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그리고 사물의 성격과 과학적인 탐구의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의 그것의 고유한 합리적인 질서에 따라서 엄격하게 설명적 이론이나 법칙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4)

이와 같은 과학적 방법이 신학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신학적 지식의 구체적인 대상,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서 우리 자신의 인식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확히 바르트가 그의 『교회 교의학』에서 채택했던 절차이고(5), 그 방식은 “복음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이 하나님에 의하여 제시된 방법으로 인지하고 이해하며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6)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특징과 과제

바르트에 의하면 이와 같이 연구 대상에 의하여 그 연구 방법이 규정되는 신학의 특징은 경우에 따라서 다른 학문들의 특징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 학문의 특징을 논하거나 이 일반 학문의 특징과 공통적일 수도 있는 신학의 학문적 특징이 아니라 신학의 고유한 학문적 특징을 묘사하려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의 생애 말년에(1962년), 주저하지 않고 신학을 학문, 그것도 “행복한 학문”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신학이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이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했다.(7) 바르트는 이 복음의 하나님을 대상으로 삼는 자신의 신학을 ‘프로테스탄트 신학’(8)이라고 칭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러므로,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학을 규제하고, 신학의 초석을 놓고, 신학을 구축한다. 이 말씀은 신학에 의하여 비로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학은 이 말씀에 의하여 가능하게 되고, 신학의 자리는 정확히 이 말씀 아래, 이 말씀과 대면하여 있다. 바르트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갖는 신학의 특수한 관계를 규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서적 증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규정했다.(10)

첫째,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인 한, 신학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하던 일과 공통점을 갖는다. 신약과 구약성서의 증인들은 인간으로서 시공의 제약을 받은 통찰과 사고방식과 인간의 언어로써 저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였고 증언하였다. 그들은 신학자로서 역시 신구약성서의 증인들이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이 성서의 증인들의 의도를 그대로 따른다. 이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위되어 있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언어양식을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그러나 둘째로, 신학은 예언자나 사도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과 맺는 관계는 성서적 증인들의 반향에 의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언자나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맺었던 관계와는 다르다. 따라서 신학의 위치는 저 최초의 성서적 증인들의 위치와 동일하거나 비슷할 수도 없다. 신학은 말씀의 증인들과 함께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최초의 증인들의 말을 통하여 저 말씀에 대하여 물어야 한다.

따라서, 셋째로, 신학의 자리는 성서적 증인들의 자리보다 높지 않다. 오늘의 신학자는 성서의 증인들보다 더 훌륭한 천문학, 지리학, 물리학, 심리학, 생리학 등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신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저 증인들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가장 알려지지 않은 성서적 증인이라도 가장 경건하고 학구적이며 예리한 현대의 신학자보다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 그것은 성서적 증인들이 그들의 특수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시적인 말씀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통하여 그 말씀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넷째로, 신학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이 성서의 자리 밑에 있다. 이 신학이 취급하는 성서는 인간의 문서로서 인간적으로 제약된 글이지만, 하나님의 행동과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 때문에 거룩하고 탁월한 책이고, 특별한 존경과 주의를 받을 만한 책이다. 신학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글에서 중심이 되는 것, 곧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배워야 한다. 성서적 증인들은 저 중심적인 것에 대하여 신학보다 더 이해가 깊기 때문이다.

다섯째, 신학은 성서의 증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새롭게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시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신학이 성서를 연구한다고 하는 것은 성서 본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가, 증거한다면 어느 정도 증거하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성서의 본문이 그것의 인간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반사하고 반향한다는 사실이나, 혹은 어느 정도 그러한가는 그 어디에서도 자명한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항상 다시 이해되고 들려져야 하며 항상 새롭게 밝혀져야 한다. 신학은 이와 같은 개방적이고 솔직한 물음을 가지고 성서본문에 접근해야 한다. 다른 모든 물음들은 부차적이고 이 중요한 물음에 종속하며 이 중요한 물음의 해답을 위해서 도울 수 있을 뿐이다.

바르트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성격과 과제를 이와 같이 해명하고, 현대 역사비평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역사비평학은 성서의 내용과 뜻과 의도는 쉽게 알 수 있다고 전제하고, 언어학적 열쇠의 방법을 사용하여 현대인에게 말하고 이해시키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성서의 중심내용인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느 곳에서도 단순히 자명한 것으로 전제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수단들이 사용되어야 한다. 언어학적, 역사적 비평과 분석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가깝고 보다 먼 본문들과의 관련도 주의 깊게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저 중요한 물음, 단지 그 물음만이 성서 기자들과 본문들의 의도에 상응하게 될 것이고 들어맞게 될 것이다. 현대인이 진정 성서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갖는다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성서의 중심내용이 무엇인가를 보다 자세히 아는 일이다. 이것은 신학이 성서와 성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일 때, 단지 그때 가능한 일이다.(1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의 학문성

지금까지 우리는 성서의 기본 노선과 통찰이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을 복음서들에 나타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과제는 오로지 성서와 성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매이고, 그 말씀을 증언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2000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수행된 심판의 비밀은 하나님의 버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인간의 파멸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다. 하나님은 이 은총의 심판을 통하여 자유로운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함에 상응하는 신실함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게 하셨다.(12)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전대미문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의 신앙경험이나 풍부한 신학사상, 혹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빛나는 도덕률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백했듯이,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고전 2:1-2)만을 선포하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유일한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더욱 밝아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늘진 곳에 서고, 작아지는 일이다(참고, 요 3:30). 참으로 교회의 모든 불행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이 빛을 가로막고 그 불빛을 어둡게 한데 있지 않았던가?(13)

제4 복음서에 의하면 증인, 곧 “신랑의 친구”는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유일한 관심은 증언된 자, “신랑”에게 있을 뿐이다(요 3:29):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3:30).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고(고전 2:4), 세상을 밝히는 빛과 세상을 보존하는 소금과 누룩(마 13:33)일 수 있다. 이점에서 바르트가 발견한 그뤼네발트의 ‘세례 요한’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르트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전 9:16)는 바울의 말과 관련하여 특히 개인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내가 그 말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내가 누구이고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내가 가치가 있거나 혹은 없거나, 유능하거나 무능하거나 하는 것에 상관없이 나는 이 말씀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증언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인가?(CDⅣ/3-2, 679). 이에 대한 유일하고 적절한 기독교적인 대답은 기쁜 긍정의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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