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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그 후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1월호 ⑵
최철영(원주 <함께하는 공동체> 대표) | 승인 2022.02.15 16:07
▲ 지난해 9월 충남지역에서 외국인들의 코로나19 확진이 급증했었다. 확진자 4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들인데, 특히, 미등록 외국인들은 사실상 관리사각지대에 놓여 확산 차단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 목소리로 비난했었다. ⓒKBS뉴스 화면 갈무리

홍수가 나고 지진해일이 일어나면 저지대에 있는 이들부터 피해를 입기 시작하고, 재해의 크기에 따라 피해정도와 범위가 결정된다. 당연히 모든 이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평온한 곳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비용과 기회의 불평등은 누구에게나 그런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연재해만 아니라 2년여 넘게 진행된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홍수의 상황도 동일한 결과와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이 먼저 심각한 피해를 입고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규모가 크지 않고 제한적인 영역에서의 범람이라면 그나마 다른 이를 생각하고 도울 여지를 남기지만, 나도 적잖이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순간 본능적인 방어기제는 여지없이 작동되어 자신의 문제에만 함몰되게 만든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스스로 털고 일어날 여지가 있는 반면에 누군가는 밀려오는 쓰레기와 여전히 찰랑거리는 물줄기를 오롯이 홀로 받아내야 한다.

재해가 나고 사고가 터진 후 수습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이들부터 구제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거주 외국인들은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홍수의 최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습과정의 도움을 기대하기 보다는 잊히는 존재이거나 문제의 원인제공자로 낙인찍히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일어나는 아시아계 혐오와 이에 따른 차별, 범죄의 뉴스를 접하며 나를 그 피해의 당사자와 동일시하는 마음이 들었던가!

놀랍지 않게도 우리 사회 역시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 등을 팬데믹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원흉으로 치부하고 그렇게 시종일관 대하고 있다. 2020년 감염의 공포가 물밀 듯이 밀려오던 팬데믹 초창기 내가 거주하는 이 지역의 일부 공장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과 후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공장 내 감금이 발생한 것이다. 방역 물품을 나눠주고 싶어 연락을 취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는 감염으로부터 안전하고, 외국인 노동자는 특별히 취약하다고 여기는 것인가? 바이러스는 국적과 피부색을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감염시키는 것인가?

무엇이든 다른 것을 발견하여 차별의 근거로 삼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그 다른 존재를 향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말과 행동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더군다나 피해의 원인과 책임을 특정하기 곤란한 때에 약한 존재, 가난한 이들을 향한 희생양 삼기는 어렵지 않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낸다. 특정 지역 출신이 이 지난한 COVID-19 대유행의 원인이거나 책임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누구라도 원망과 한탄, 분노의 수렴처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특정 아시아계 사람이 혹은 외국인 노동자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졸렬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더 심각한 어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는 가장 저지대의 사람들을 희생양 삼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어 온 이의 경험에서 지금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하는 것도 처음이다.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서 친지들을 만나고 타국에서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최소한의 재충전도 불가하고, 일요일에 함께 모여 한국어를 공부하고 밥 한 끼 나누며 향수를 달래고 활력을 되찾던 모임이 중단 된지도 오래다. 방역 물품 지급과 재난지원금, 백신 접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최종순위가 되거나 혹은 배제가 일상이어서 암묵적이던 차별이 수면 위로 떠올라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것을 견딜 수밖에 없다. 뒤에서의 수군거림도 참기 어려운 법인데, 대놓고 뺨을 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놀이터나 바닷가에서 모래를 쌓아 놓고 막대기를 꽂은 후, 번갈아가며 밑에서부터 모래를 훔쳐낸다. 밑바닥 모래를 쓸어내면 위에 있는 모래가 아래로 떨어져 다시 밑바닥이 되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막대기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놀이의 결론이 내려진다. 가장 밑바닥이라고 놀림을 받던 이들이 사실은 그 구조의 기저가 되어 다른 이들을 든든히 떠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물이 불어 밑바닥을 쓸어버리면 위에 있던 누군가가 굴러 떨어져 밑바닥이 되는 것이 섭리이다. 약하다고 가난하다고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내가 무관심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권리와 삶의 정황은 머지않은 미래의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닌듯해도 우리 모두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공동운명체이다.

자연재해로의 홍수나 지진해일이 그러하듯 이미 일어난 현상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우선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리고, 지나고 난 후의 일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당장의 화풀이를 위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없애고 나면 그 부재의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차례의 몫이 된다. 알다시피 다음 홍수와 지진해일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수시설을 정비하고 저지대에 방파제를 쌓고 긴급히 피난할 방책을 마련해주는 등의 일을 해야만 하는, 그렇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나의 일처럼 돌봐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까지는 일단 초동대처에서부터 저지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현상이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거의 휩쓸려간 밑바닥을 어떻게 다지고 재충전할지 홍수, 그 후가 기대된다.

최철영(원주 <함께하는 공동체> 대표)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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