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전신갑주를 입고 늘 하던 대로 기도하라!(단 6:10-18; 엡 6:10-17; 마 6:5-13)주현절 일곱째 주일(2월20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2.18 15:14

1. 주의 기도

예수님은 공생애 활동 가운데 많은 사역을 하셨습니다.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유대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을 앓는 자, 중풍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마 4:23-24). 물론 지난주 말씀처럼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워 파송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 선포와 치유 활동, 제자 세우기가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 선포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많은 것들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는 이들인 율법 학자와 바리새인들과는 율법에 관해 논쟁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제대로 된 믿음이 무엇인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선포한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설교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이 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근처의 어느 산, 언덕에서 행하신 설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성도들은, 곧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어떤 믿음과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자세가 있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도자의 자세와 기도의 내용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도가 있죠?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의 기도’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인데 한번 살펴볼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방대한 주기도문에 관한 내용을 다 살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다만 오늘 세 본문 말씀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 핵심은, 곧 삶의 자세는 ‘죄 사함을 간구하고’,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우리는 늘 죄에 빠져 살며 시험을 당해 힘들어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방해하는 이들, 곧 시험하려고 해코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다니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다니엘을 해코지하여 사자 굴 속에 던져넣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악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소개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불의한 세상에서 시험을 하는 자들과 맞서 싸우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또한 다니엘의 기도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너희는 골방에서, 늘 하던 대로 기도하라!

복음서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기도자의 모습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회당과 큰 거리 어귀가 아니라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시죠? 중언부언(重言復言, 이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함)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5-8)

또한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늘 하던 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도 해보았지만, ‘특별기도’ 등이 있는데, 사실 기도는 이렇게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하던 대로 늘 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말씀에 나오는 다니엘의 기도가 그렇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기원전 605년경 16세의 나이로 바벨론에 포로(1차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 멸망 당시, 고대 근동에 새로운 맹주로 등장한 메대와 바사(페르시아) 나라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바벨론은 남 유다의 뛰어난 소년들을 선발해 인질로 끌고 갔습니다. 이때 소년들 선발 기준이 엄격했는데, 왕족이나 귀족이어야 했습니다. 또한 외모적으로 흠이 없고, 준수했습니다. 이렇게 신체적으로나 두뇌적으로 뛰어난 소년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이 소년들에게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쳐 바벨론 제국의 에데올로기 교육을 시킵니다. 이것은 바벨론 치하 모든 식민지를 바벨론 제국의 속국으로, 혹은 2등 국민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창씨개명(創氏改名, 1940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한 것)이 있습니다. 원래 다니엘의 이름 뜻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그의 이름을 ‘벨드사살’로 바꿉니다. 그 뜻은 “바벨론의 신, 벨이 나의 생명을 보호한다.”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아니라, 벨 신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이름 속에 이데올로기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창씨개명도 같은 맥락이죠? 아무튼 다니엘은 그의 뛰어난 능력으로 잡혀간 바벨론 땅에서 관리로 발탁이 되고 이후 메대 왕국 때는 총리가 됩니다.

물론 다니엘은 총리가 되어서도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서 내용을 보면 미래 고대 근동과 지중해 세계 제국들의 멸망을 예언하죠? 이렇게 늘 하던 대로 기도하는 사람인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미래의 일, 곧 제국들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기도가 다니엘을 지켜주었고 그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역사적 안목을 키워 준 것입니다.

3. 기도자를 향한 악한 무리의 음모

오늘 본문 말씀은 메대의 다리오 왕 통치 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총리직에 있던 다니엘을 질투한 악한 무리의 음모가 진행됩니다. 당시 바벨론이나 메대 땅에는 수많은 민족이 포로로 잡혀 와 있었습니다. 그 포로들 가운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출세합니다. 다니엘도 그런 인물이죠? 그런데 그들 눈에는 유대인인 다니엘이 총리가 된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단 6:11-12)

▲ 메대, 바사 왕과 바벨론 왕

당시 메대 왕은 다리오(Darius the Mede)였고, 바사의 왕은 고레스(Cyrus Ⅱ, ‘태양과 같다’는 뜻, B.C. 590-529)였습니다. 같은 아리안족인 메대와 바사는 결혼을 통하여 동맹을 맺습니다. 또한 이때 바벨론의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 B.C. 556~539)였으나 장기적인 원정을 떠나 아들인 벨사살(Belshazzar Ⅱ, B.C. 553-535)이 섭정왕으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벨사살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입니다.

다니엘 5장에 보면 벨사살 왕이 귀족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푸는 장면이 나옵니다(단 5:1). 이때는 바벨론 성이 고레스에 의해 포위당한 상태인데, 벨사살은 신들이 자기를 버렸기 때문에 이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신들을 달래고 백성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결국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쓴 글자대로(‘메메 메네 데겔 우바르신’, 세어보고 세어보아 심판하여 깨뜨린다), 그날 밤에 벨사살 왕이 죽고 다리오가 바벨론을 차지합니다(단 5:5-31).

이후 다리오는 전국 120개 도에 자신의 사람으로 지방관을 보내고 중앙에는 총리를 새로 임명하여 전국의 행정을 장악하였습니다. 또한 다리오는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뛰어난 능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립니다(단 6:2-3). 당시 다리오 왕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유일무이한 통치자로 만들기 위해 우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물론 그 결과 나중에 메대는 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병합됩니다). 아무튼 이러한 다리오의 우상화 작업을 이용하여 악한 무리가 다니엘을 해코지하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단 6:13-14)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능력과 품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이 악한 무리가 다니엘을 해코지하려는 것도 알았습니다. 따라서 근심합니다. 그러나 해코지하려는 이들은 포기할 줄 모릅니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단 6:15)”, 그러자 왕이 어쩔 수 없이 명령합니다.

▲ 브리톤 리비에르 <사자굴의 다니엘>(1890)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단 6:16a).” 그럼에도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단 6:16b).”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절대권력을 가진 자도 해코지하려는 자, 이간질하려는 자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지막 구절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 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단 6:17-18)

4. 소셜온난화, 소셜네트워크에도 펼쳐진 악한 무리의 음모

▲ 소셜온난화 표지와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

오늘날에도 불의한 자들이 음모를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가짜뉴스나 부분적인 사실만 강조하는 편파적인 정보를 통한 언론의 왜곡과 음모론이 심각합니다.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 분야만 파고든 최고의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작가 찰스 아서는 『소셜온난화』(위즈덤하우스, 2022)라는 책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사람들이 충돌하는 것, 또한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확증편향에 빠지게 하는 것,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사람들을 연결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고 수익 창출에만 골몰한 상황을 기후 온난화에 빗대 ‘소셜온난화’라고 이름을 붙이고 책 제목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온난화’라는 말을 붙인 것은 소셜미디어의 폐해가 매우 심각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와 같이 되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셜네트워크가 널리 사용되면서 페이스북은 집단학살에 연루되었고, 트위터는 여성 혐오 캠페인을 위한 전쟁터가 되면서 현실 세계에서도 심각한 위협과 공격이 이어졌으며, 유튜브는 처음에는 무슬림 무장 조직들을 과격해지게 했다는 비난을, 나중에는 우파 백인 남성들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여성들은 지폐 속 인물에 여성을 넣자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이유로 살해 및 강간 위협을 받았다. 익명의 열두 살짜리들이 유명 축구선수들을 인종차별의 표적으로 삼았다. 또한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다고 파악한 알고리듬 덕분에 의기투합한 두 남성이 페이스북 그룹에서 소통하기 시작했고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관심 주제는 내전을 일으키자는 것이었고 그들의 행동은 경찰관을 살해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유별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의도하고 설계한 대로 이용될 경우, 소셜네트워크는 이런 결과로 이어집니다. 결국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해서 추천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소셜네트워크와 연관된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의 확증편향으로 인한 작은 차이가 더 큰 의견 충돌로 증폭되며, 이렇게 상반되는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신념으로 폭력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아서의 말을 들어볼까요?

“이들 소셜네트워크는 우리의 주목을 끄는 데 최적화되어 있고 분노와 양극화를 추구하는 타고난 성향을 이용하려는 소프트웨어로부터 동력을 얻는다. 소셜네트워크들이 현재의 설계 방침을 유지하는 한 이런 사건들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며 소셜네트워크 사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더 악화될 것이다. 그리고 5년 후면 스마트폰 사용자가 10억 명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소셜온난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소셜온난화는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려는 기술이 진보하면서 의도와 다르게 나타난 부작용이다. ‘온난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점진적이기 때문이다. 점진적이라는 건, 상황이 악화되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 가짜뉴스 처벌법과 대책

지금 언론개혁이 필요한 우리나라 상황에 꼭 필요한 말입니다. 특별히 아서는 소셜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는 요인을 세 가지로 분석합니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입니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대부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할 수 있게 됐고, SNS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회적 단절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알고리즘입니다. 알고리즘엔 도덕관념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용자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극단주의자들은 서로를 더 잘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노와 혐오의 말이 넘쳐나, 이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세 번째는 이러한 스마트폰의 확장과 알고리즘의 도덕성 없음 현상에 대한 규제나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콘텐츠를 관리하는 성의를 보일 수는 있지만 통제하지는 않습니다. 이전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우리나라의 네이버, 다음 플랫폼이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노출해 광고가 붙게 만드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경험하는바, 특히 정치 이벤트가 있을 때 소셜네트워크는 허위 정보와 편 가르기가 판을 치는 장이 됩니다. 정치인들은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주목을 받습니다. 언론은 또 이것을 대서특필합니다.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면 돈이 생기고 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상식과 올바른 가치보다 광고가 붙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정치인들은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언론을 활용합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과 권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둘러싸고도 허위 정보가 퍼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죠? 음모론이 바로 그 중심에 있습니다. 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어떤 음모론을 믿기 시작한 사람은 바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점점 더 설득된다. 유튜브에서 그런 견해를 강화하는 동영상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 간의 거리를 허물어뜨리는 인터넷의 능력 때문에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고, 따라서 현실에 맞닥뜨려도 그 같은 믿음을 지탱할 수 있다. 인터넷 이전에는 음모론을 지속해나가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음모론 지지자들이 자기 생각에 동의하는 다른 사람들을 잘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양치기 개가 양 떼를 몰고 가듯이 잘 속는 사람들을 한데 몰아넣는 알고리듬이 거들기 때문에- 음모론을 피할 수 없다. 음모론에 대한 확신이 커지는 것 자체가 소셜온난화, 즉 알고리듬 시스템이 가져온 달갑지 않은 부작용의 한 형태다.”

물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소셜미디어가 ‘아랍의 봄’ 시위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목소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을 파괴하고, 극단적인 생각으로 확증편향을 만들며 민주주의를 학살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5. 하나님의 전신갑주

이렇게 음모론과 편 가르기가 판을 치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이간질하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아니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소개합니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사탄·마귀와 대적하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을 들어볼까요?

▲ 하나님의 전신갑주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0-11).” 왜냐하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엡 6:12)”이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초대 교회는 많은 박해에 휩싸였습니다. 에베소서는 옥중서신이죠? 바울도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도가 붙잡혔으며 재산을 잃었습니다.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고, 십자가에 달린 채 불에 타 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초대 교회는 300여 년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늘 하던 대로 기도하며 날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죄 사함을 간구하고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견뎠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바울은 영적으로 무장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이 전신 갑주는 로마군 보병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성도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장비를 먼저 열거합니다. 진리(허리띠), 의(호심경, 갑옷), 평안(신), 믿음(방패), 구원에 대한 소망(투구)이라는 방어 무기를 장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공격용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검)입니다. 수비로 제대로 방어하고 공격으로 악의 영들을 무너뜨리라는 것입니다. 이때 늘 하던 대로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늘 하던 대로 기도함으로, 가짜뉴스가 우리를 혼란케 하는 이 불의한 세상과의 매일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