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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이슈 없는 대선, 노동 없는 민주주의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43)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2.02.21 16:04
▲ 대선 후보들의 정책에 노동에 관한 언급이 없다. ⓒ화면 갈무리

그랜드 비전이 아예 없는 대선

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에서는 어느 후보도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관한 그랜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유능한 대통령,’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 교체’라는 구호가 떠들썩하지만, 알맹이가 없다. 대선 후보들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도전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그 도전들에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제위기’ 구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인 사회통합 위기와 생태계 위기가 가려지지는 않았는가? 현 정권을 ‘부패와 무능’의 색깔로 회칠한 다음에 유력 야당 후보가 검찰의 수사·기소권 재통합과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 원칙의 폐지 이외에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는가? 대선 후보들이 기껏해야 지역 개발 공약이나 심지어 복합쇼핑몰 공약처럼 도지사나 시장이나 군수 후보에게나 어울리는 공약을 제시하는 데 그쳐야 하겠는가?

2022년 대선에서 노동 이슈가 거의 실종된 것도 대선 후보들의 그랜드 비전 상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노동 능력이 있고 노동 의사가 있는 사람이 2천 9백만 명이 넘고, 기후위기와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가장 큰 사회적 도전으로 대두하고 있는데도, 노동 문제를 대선의 핵심 이슈로 설정한 후보가 하나도 없다니 어이가 없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는 그랜드 비전 아래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핵심 의제로 설정했고, 최저임금 인상, 소득 주도 경제, 노동법 개정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이슈들을 제시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대선에는 그런 담론이 아예 없다.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은 막연하고 공허하다

물론 대선 후보들의 개별적인 노동 공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 가운데 일자리 공약은 그나마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각 당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대선 후보들은 디지털 경제에서만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돌봄 노동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서 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호언한다. 디지털 경제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한 대선 후보가 그처럼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내세울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이 돌봄 노동 중심으로 백만 개 이상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성과는 5% 이하에 불과했는데, 그것을 검토한 대선 후보가 어떻게 똑같은 공약을 들고나올 수 있을까?

언론에 보도된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들은 2020년 11월에 처리된 이른바 ‘전태일’ 3법의 보완에 집중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5인 이하 사업장 적용, 특별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노동자성 인정,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등이 공약의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2020년 11월의 ‘노동3법’ 개정이 워낙 미진했기에 그 쟁점들을 대선 과정에서 이슈로 삼은 것은 바람직하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노동3법 보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아예 견해를 밝히지조차 않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하다.

심상정 후보가 ‘주4일 근무제’와 공약 실현 로드맵을 들고나온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 이에 대응해서 이재명 후보는 ‘주 4.5일 근무’에 관한 논의를 검토해 보겠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간 정책에 관한 공약은 ‘주 52시간 근무제’조차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다는 인상을 자아냈고, 윤석열 후보의 ‘주 120시간 근무’ 발언에 따른 소동에 가려져 정작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부 대선 후보들이 최저임금 인상,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귀족노조의 병폐 등을 문제로 삼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 이슈들에 대한 논의가 대선판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으나, 그 공약에 구체적인 방안이 담겨 있지는 않다.

대선에서 노동 이슈가 부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선 후보들이나 언론의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사회적 모순들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대선 공간의 정치투쟁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모순을 안고 있는 노동 문제가 전면에 놓이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과 노동조합들이 정치투쟁의 역량을 보이지 못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들의 힘이 빠진 것이다.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 정당이 없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뿌리를 둔 오늘의 정의당은 기후위기, 불평등, 성차별 등의 해결을 앞세운 신사회운동의 정치적 거점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한 신사회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결합하여야 하겠지만, 그 운동이 정의당에서 서로 어떻게 매개되고 있는가는 분명치 않다.

노조가 힘이 빠졌지만, 그것만 탓할 일도 아니다

노동조합이 힘이 빠진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노동시장의 분단으로 인해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이 커져서 연대와 단결에 바탕을 둔 노동자 권력이 약화하였다고 주장한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이 귀족노조가 된 나머지, 그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관심을 기울일 뿐 같은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과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에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귀족노조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구조조정도 방해해서 경영의 효율성과 기업의 생산성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이러한 견해를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는 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다. 안 후보가 공기업 노동이사제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진단과 비난은 사태의 한 측면에 고착된 것이어서 편협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의 분단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다. 1987년 체제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노사교섭창구 일원화와 단위사업장 노사교섭을 강제하다시피 하는 제도로 인해 사업장 단위 운동에 묶여 있었다. 각각의 사업장은 노동시장의 분단과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확산에 따른 비정형 노동자 증가 등과 같이 산업영역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사업장 단위의 노조 운동은 산업영역과 국민경제 차원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었다. 사업장 바깥에서 결정되어 사업장에 강제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단에 사업장 단위의 노동조합이 어떻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겠는가? 사업장 단위의 노동조합이 정규직 호봉제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무시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아래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조정하거나 호봉제와 직무급제의 격차를 철폐하면서 경영진과 임금 교섭에 임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들고 나서는 모습이 어떻게 희화화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더 나아가 사업장 단위의 노동조합은 대기업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과정에서 금융자본의 수탈 아래 놓이는 재벌 구성 대기업은 자본 분파인 중소기업을 무자비하게 수탈함으로써 대기업 노동 임금을 관대하게 지급하고도 초과이윤을 달성하고, 그렇게 무자비한 수탈에 노출된 중소기업은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함으로써 존립 기회를 얻는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자본분파들 사이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 구축된 수탈-착취 구조를 산업영역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타파하지 않고서 노동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깃발 아래서 연대와 단결을 이루고 노동자 권력을 강화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노총의 노사 타협주의나 민주노총의 계급투쟁 노선이 과연 현실 적합성이 있는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단위사업장 중심의 노사교섭 제도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국민경제 수준의 노사정 타협은 무엇을 지향하자는 것인가?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조합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산업영역과 지역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어느 만큼 강고하게 구축할 수 있는가? 그러한 연대와 단결 없이 사업장 투쟁을 넘어서는 계급투쟁이 어떻게 가능한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노동사회의 질곡을 깨뜨리려면 사업장을 넘어서서 산업영역, 지역경제, 국민경제 차원에서 서로 단결하고 연대하여 자본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본 측이 고집하는 노사교섭창구 일원화와 사업장 단위 노사교섭 제도를 깨뜨리고, 산별 노사교섭 제도와 중앙교섭 제도를 확립하여 실질적인 사회적 협약제도를 구축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노동 이슈를 제대로 다루자!

노동 문제는 우리 사회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형성할 수 없다. 노동 문제를 풀지 않고서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디지털 혁명과 플랫폼 경제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논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과연 설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큰 문제들에 대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늘 노동자들이 부딪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들도 정교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를 종합해서 분석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1990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6년 현재 80 정도로 20% 정도 떨어졌고, 그 사이에 임금 지니계수는 거꾸로 20% 올라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 플랫폼 경제의 확장에 따르는 비정형 노동자들의 지위 불안정성과 소득 불안정성, 엄청난 규모로 증가하는 실업과 미취업 문제 등은 우리 시대의 노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그러한 노동 문제들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 그러한 해법은 노동 문제 해결의 세 주체인 노동, 자본,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통 큰 거래를 할 때 비로소 마련될 것이다. 그것이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뉴딜이다. 그러한 뉴딜의 핵심은 세 가지다. 하나는 사업장 중심의 노사교섭 제도를 폐지하고 산별 노사교섭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플랫폼 노동의 확장에서 나타나는 노동 문제를 중앙교섭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사업장 수준에서 노사공동결정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아래서는 그러한 뉴딜을 위해서 노동, 자본, 정부가 각각 전제해야 할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제안하고 싶다.

첫째, 노동조합은 사업장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산별 노동조합을 조직한다. 기존의 사업장 노동조합은 산별 노사교섭의 결정을 사업장 단위에서 실현하고 노사공동결정의 원칙에 따라 사업장을 운영하는 데 참여하는 평의회 기구로 전환한다. 산별 노동조합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보다 전문적으로는 동일직무 동일임금의 원칙을 산업영역에서 관철한다.

호봉제를 실시하는 사업장에서 최저 호봉과 최고 호봉의 격차가 최고 4.6배나 나는 것은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직무제가 정착한 독일에서는 최저 호봉과 최고 호봉의 격차가 1.3배를 넘지 않는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2배 이상이 되고, 동일직무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 급여의 격차가 3:2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민주노총은 “2022년 대선 요구안”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에 관련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원칙은 사업장 안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지역경제와 산업영역에서 동일노동과 동일직무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자본 측은 산업영역별로 노사교섭에 책임 있게 임하는 경영자협회를 조직한다. 산별 경영자협회는 산별 노사교섭에 성실하게 응한다.

셋째, 정부는 산별 노사교섭과 중앙노동교섭을 법제화한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배-종속 관계에서 나타나는 수탈을 금지하는 법제를 마련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한다. 

지금과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생산력 격차와 임금 격차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격차를 줄이는 중장기적인 이행기를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뉴딜에서 정부는 산업영역별로 산업 생산력 장려 기금과 임금 평준화 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가칭) 산업 생산력 장려 기금법은 대기업의 영업이익 가운데 일부를 산업 생산력 장려 기여금으로 환수하여, 중소기업의 산업 생산력 향상에 투입하기 위한 제도이다. (가칭) 산별 임금 평준화 기금법은 산별 노사협약에서 체결된 임금수준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 가운데 일정 부분을 임금 평준화 기여금으로 환수하고, 그 기금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전하는 제도이다.

넷째, 기업과 공장 등 사업장 수준에서는 노사공동결정 제도를 운영한다. 노사공동결정은 사업장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이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도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사회적 파트너 관계를 맺게 하는 제도적인 바탕이다.

지난 1월 11일 국회에서 의결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앞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기업으로 확산하여야 한다. 노동이사제는 노사공동결정로 가는 과도적인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이사제는 영미식 이사회 모델에 따라 사외이사로 참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그러한 제도는 노동의 직접적인 경영 간섭을 불러온다는 우려를 낳는다. 그러한 우려를 불식하려면, 독일처럼 경영이사회와 그것을 감독하는 감독위원회를 이원화하고, 감독위원회를 노사동등성의 원칙에 따라 노동 측 위원과 자본 측 위원을 동수로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진들이 대립적인 노사관계 때문에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 반대가 진리다. 노사공동결정제도는 노사의 적대적 대립 관계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독일이 이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실례이다. 독일은 1951년에 석탄·철강 산업 분야에서 노사공동결정 법제를 제정하기 시작하여 세 가지 종류의 공동결정법을 제정했는데, 노사공동결정제도는 독일에서 산업평화와 기업 생산성을 높은 수준에서 동시에 실현하는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사회적 협약에 더 들어가야 할 중요한 의제들

앞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 자본, 정부가 통 큰 거래를 통해 확립할 기본 프레임을 언급하였지만, 아래서는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뉴딜 차원에서 더 다루어야 할 몇 가지 의제들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정부는 고용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일자리 보장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한다. 시장경제에서 경기변동은 불가피하다. 경기가 하락하여 고용불안이 커질 때, 정부는 ‘기능적 재정’의 원칙에 따라 일자리 보장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아바 러너(Abba P. Lerner)가 정교하게 가다듬은 ‘기능적 재정’ 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경기 하락 시에 정부 부채를 늘려서라도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산업 설비가동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재정 건전성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펄쩍 뛰겠지만,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한, 정부 부채를 두려워할 까닭은 전혀 없다. 경기가 상승하여 세수가 늘어나면 정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데다가 화폐발행자의 지위를 갖는 정부는 파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불안이 심화할 때, 정부는 재정수단을 투입하여 일자리를 공급하고, 그 일자리를 갖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계 급여를 지급한다. 그 급여 수준이 곧 최저임금 수준일 것이다. 경기가 회복하여 노동시장의 수요가 늘어나면,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일자리 보장제는 경기변동에 대처하는 자동안정화 장치의 구실을 한다.

둘째,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내세운 ‘주4일 근무제’ 공약은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뉴딜의 핵심 의제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 지난 1960년대 말 이래로 꾸준히 진행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노동자들의 복지를 향상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생산성 발전에 따라 줄어드는 일자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이 성공하려면 소득보장과 연계되어야 한다. 심상정 후보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최저 노동시간을 보장하도록 하여 소득보장이 이루어지도록 설계했는데, 그러한 설계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노동 생산성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소득 감축이 비례관계를 이룰 필요가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심 후보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 주권 개념을 설정하기도 했다. 그 의견도 진보적이다. 노동시간 단축, 소득보장, 노동시간 주권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노동 정책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노동세계를 혁신하는 것은 문명국가의 큰 과제이다.

셋째,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 과정, 산업 구조조정 과정, 고용 구조조정 과정 등이 정의롭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예컨대 석탄발전소, 내연자동차기관 제작소 등을 퇴출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많은 노동자는 직업을 잃을 것이다. 그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관한 결정이 내려지는 의사결정 기구에 이해당사자로 동등하게 참여하여 함께 결정하는 거버넌스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전환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향하여

한때 ‘노동 있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오랜 민주화 운동을 통해 1987년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과제는 사회적 민주주의,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것이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고, 자본의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여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그러한 민주주의가 ‘노동 있는 민주주의’다.

우리는 아직 노동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노동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함께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방식이다. 사람의 사회는 노동의 세계이다. 사람이 노동하면서 존엄한 존재로서 현존하고, 노동의 성과를 갖고서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며 존엄한 삶을 꾸려가야 한다면, 오늘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동 문제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체계적인 방안을 일관성 있는 관점에서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은 없다.

2022년 대선에서 노동 이슈가 실종된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노동은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이끌어가는 그랜드 비전의 한복판에 놓여야 한다.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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