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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코이노니아를 생각하며: 정신장애인 교우 A와의 인터뷰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1월호 ⑶
강세희(이화여대 신대원 조직신학 석사과정) | 승인 2022.02.21 22:43
▲ 지난 2020년 2월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기자회견’를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3년차로 접어들며…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겨울, 나는 사건과 신학의 지면을 통해 코로나19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주일 성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1) 에클레시아의 지향성을 성찰해야한다는 논지의 글을 2차례 기고했었다.(2) 방역지침이 종교시설과 대면예배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예배당 중심의 ‘주일 성수’의 과정과 규모는 간소화되었다. 대신에 ‘삶의 자리’와 ‘가정’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강조하고, 온라인/미디어 예배를 활성화하는 목회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한 듯하다. ‘새로운 목회 비전’으로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예배의 확장성을 도모하는 교회가 있는 한편, 예배와 모임을 유보하고 재개하기를 반복하다가 공간과 장소의 상실을 경험하는 교회도 생겨났다.

어느새 3년차로 접어든 코로나19 시대에 대한 성찰의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를 잡은 한 문장을 두고 반성을 먼저 해야했다.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며 생각과 행동을 미루고 접어둔 것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인 듯하다. 간소화 된 주일의 풍경만큼, 우리의 교제도 간소화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쉬운 소리가 서로에게 부담이 될까봐 그저 묵묵히 견디고 서로를 도닥이고 있는건 아닐까. 나는 이번 기회에 ‘어쩔 수 없지.’라는 문장과 이별하겠다는 마음으로, 예배공동체를 함께 꾸리고 있는 교우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각각 어떻게 경험하고 견디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떻게 함께 살아야할까?

정신장애인 교우 A와의 인터뷰

A는 정신장애 당사자이면서 활동가이다. 수년 전에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의 기도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지금은 ‘예배공동체 사이’에서 함께 예배와 교제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날에 혜화동에서 만났는데, 나와 만났을 때 A는 그토록 고대하던 활동지원 계약서에 사인을 한 직후였다. 그래서인지 A는 평소보다 편안해보였고, 또 약간은 들뜬 것처럼 보였다.  A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쌍화탕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신장애 특성상 갑자기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는 활동 지원이 있으면 편하거든요. 급성기(비교적 단기간에 갑작스럽게 증상이 심해지는 시기) 이전에는 일상생활 다 가능해요. 숟가락도 들 수 있어요. 먹을 수 있어요. 목욕할 수 있어요. 근데 내가 갑자기 우울해지면 못 해요. 물론 정신장애인마다 증상이 다르겠지만, 정신장애 중에서 목욕을 잘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긴 해요. 우울증이나 조현병 때문에 못하는 분도 계시는데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하겠죠. 이런 것도 정신장애의 특징이에요. (중략) 회전문 현상이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정신장애인들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집에만 있어요. 병원과 집을 반복하는 거에요. (정신장애인들이 흔히 처하는 상황은) 딱 세 가지예요. 집에만 있거나, 집에만 있다가 병원에 가거나. 회전문처럼. 계속 빙빙 돈다 해서 회전문. 나는 그런 특징들을 알고 그게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병원에 있기도 싫고, 집에도 있기 싫고, 그냥 사회에서 놀다가 그냥 살고 싶은데.”

교우들과 함께 놀기 좋아하는 A는 자타공인 ‘예배자’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일뿐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에도 다양한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사회선교 현장기도회가 열리는 곳에는 A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A는 친구 같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우들과 어울리며 함께 지내는 시간을 소중하다고 했다. 자신이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은 아주 한정되어있지만, 자신을 지지해주는 기독교인들과의 관계는 든든하고 단단해진 것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정신장애인 중에서도 다 다르지만, 저는 솔직하게 치유하시고 그런 걸 안 좋아해요. 저는 정신장애인 관련해서 지지자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이해시켜줬던 부분이 필요했고, 그게 예수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중략)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가 반복돼서 이제 서로서로를 아는 거지. (중략) 근데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저랑 정반대로 관계가 깨져요. 그게 특징이에요. (그 이유는) 증상 때문에도 있고 사회적 시선도 있고 다양한데, 병원에 왔다갔다 하면 깨진대요. 입원 기간이 길기 때문에요. 예를 들어 친구랑 되게 친해졌어요. 친해졌는데 1년 동안 못 보다가 갑자기 또 나타나요. 그게 한 번이면 용인되죠. 근데 정신 장애인 대부분이 (입원을) 한 서너 번 하면 이제 관계가 확 끊어지죠.”

A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정신병원에 계속 머무르는 선택을 하는 데에는 (1)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2) 정신병원에 이미 너무 오래 있어서 사회 적응이 어려운 상태이거나, (3) 자립할 수 있는 개인적인 방안 또는 사회적 제도가 없는 경우 등이 있다고 했다. 덧붙여 (4) ‘주거 공간’이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많은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인식이나 구조적 문제로 관계 맺기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집(주거)부터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토대와 형태를 이루는 장소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A는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포함한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 공동체들이 해체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요즘은 갈 곳이 없어요. 이건 장애인이라면 공통점 같은데요. 이전에는 복지관에 모여서 뭘 하자든가 했죠. 아니면 ‘우리 모여서 뭘 합시다’하고 싶은데 장소와 돈이 없잖아요. 장소가 없어서 못 모이니까 더 집에만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매주 교회를 가서 밖에 나가서 뭔가 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그 거리 두기 때문에 교회를 못 가고 계속 온라인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더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어려워요. 정신장애이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면 그래도 좀 나아짐으로 가는데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 못 모이고 그리고 갈 데는 없고 돈은 없고 그러다 보니까 집에만 더 틀어박혀 있어서 병세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코로나19 시대의 방역과 코이노니아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3년차로 접어들었다. 일상생활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역 정책을 펼치는 한국의 경우, 사람들은 몇 주마다 발표되는 방역 지침을 체크하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백신보급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금방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는 야속하게 빗나갔다. 변이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대확산을 엔데믹(특정 지역 내 인구에서 질병이나 감염원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거나 유행하는 상태)단계로의 이행으로 분석하기도 한다.(3) 엔데믹 선언을 통해 코로나19를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질병으로 취급하고 지속적으로 대응하며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시사할지라도,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복합적인 위협을 경험하고, 복잡하게 더 취약해진다.(4)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코로나 시대의 연대는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또한 어떤 목사는 연대를 코이노니아로 바꾸어서 “코로나 시대의 코이노니아는,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라고 다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구호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 구호는 사회와 공동의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구성원 누군가의 희생과 견딤을 요청해왔던 방식과 크게 다른 것인가? 나는 A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코로나19 시대 가운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역량마저 위축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경각심을 갖는다. 코로나19 시대의 코이노니아는 돌봄과 연대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상호 돌봄의 장소와 관계가 되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않나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야기하는 개별적인 고충과 어려움을 각자 ‘어쩔 수 없이’ 견디게 하지 않고 물심양면의 나눔과 사귐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코이노니아를 이루자고 말하고 싶다. 

미주

(미주 1) 강세희, 「흩어져있는 동안에도 ‘주님의 날’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NCCK 사건과 신학, 2020.03.31, 18:55
(미주 2) 강세희, 「대면하고 새로워지는 뉴노멀 신앙」, NCCK 사건과신학, 2020.11.02, 03:12
(미주 3) 구경하, 「유럽 “코로나 엔데믹” 전망…뭐가 달라지나?」, KBS News, 2022.01.25, 07:02
(미주 4) 한국장애포럼, 「[해외 장애계 뉴스 브리핑] 장애인 고려 없는 팬데믹 상황」, 비마이너, 2022.01.18, 13:16

강세희(이화여대 신대원 조직신학 석사과정)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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