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긴 터널에도 끝은 있다“감사의 제사”(시편 50:1-14, 2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3.01 02:41
▲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좋은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이 아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언제나 우리 안에 주어져 있습니다. 외부의 상황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 한 편을 읽으며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은 ‘정화’이고, 지은이는 ‘웬델 베리’입니다.

마음 챙김의 시 中

봄이 시작되면 나는 대지에 구멍 하나를 판다.
그리고 그 안에 겨울 동안 모아 온 것들을 넣는다.
종이 뭉치들, 다시 읽고 싶지 않은 페이지들,
무의미한 말들, 생각의 파편들과 실수들을.
또한 헛간에 보관했던 것들도 그 안에 넣는다.
한 움큼의 햇빛과 함께, 땅 위에서 상징과 여정을 마무리한 것들을.

그런 다음 하늘에게, 바람에게, 충직한 나무들에게 나는 고백한다.
나의 죄를.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
칭찬을 갈망했다.

그러고 나서 그곳에 모여진 몸과 마음의 부스러기들 위로 구멍을 메운다.
그 어둠의 문을, 죽음이라는 것은 없는 대지를 다시 닫으며.
그 봉인 아래서 낡은 것이 새것으로 피어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와닿은 문장은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입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이느라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 시의 문장에 오랫동안 머물며 묵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상중 목사가 겪은 한 주간의 일들과 감정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자가 격리가 2주로 끝나지 않고 3주차로 넘어가야 한다는 저의 확진 소식이 들려왔을 때는 절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감정을 추스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불평의 대상이 되었고, 불만족스러웠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불안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까지 느껴졌습니다. 코로나 초기에도 느껴보지 못 한 감정들이었습니다.

문자로도 성도님들께 남겼지만,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두움을 끝낼 빛을 끌어올 수 있었지만, 이 빛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어두움에 스스로를 내동댕이치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습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음,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이 환상의 콜라보를 이루며 저를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안이 외부의 소음과 내부의 소음 때문에 사라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안은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끌려다닐 것이냐 아니면 평안을 누릴 것이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평안은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여전히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하지만, 소음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미 주어진 행복에 눈을 돌리고, 소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함께 읽은 시편 본문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삶입니다.

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 3 우리 하나님은 오실 때에,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4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

시편의 고백은 대다수가 고난 중에 쓰였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기다리며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 받는 현실이 바뀌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오실 날을 생각하며 자신의 오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의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오셔서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십니다. 당신은 주님을 기다리며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 어떤 원망을 했는지 혹시 하나님을 배신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떠나 제멋대로 살지는 않았는지. 또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굳게 믿으며 온전함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썼는지, 더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았는지를 묻게 되는 그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5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희생제물로 나와 언약을 세운 사람들을 나에게로 불러 모아라.” 6 하늘이 주님의 공의를 선포함은, 하나님, 그분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셀라) 7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말한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겠다.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 8 나는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너희를 탓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번제를 바쳤다.”

우리가 들으며 긴장해야 할 말씀입니다.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번제를 바쳤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의 상황, 바쁜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를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번제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조차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9 너희 집에 있는 수소나 너희 가축우리에 있는 숫염소가 내게는 필요 없다. 10 숲 속의 뭇 짐승이 다 나의 것이요, 수많은 산짐승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11 산에 있는 저 모든 새도 내가 다 알고 있고, 들에서 움직이는 저 모든 생물도 다 내 품 안에 있다. 12 내가 배고프다고 한들, 너희에게 달라고 하겠느냐? 온 누리와 거기 가득한 것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의 서원한 것을 가장 높으신 분에게 갚아라.

습관처럼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50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23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

14절의 구절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구절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쳐라. 올바른 길을 걸어라.’ 그런데 사실 고난 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일이 가능할까요? 살길을 찾기도 힘든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혹하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올바른 길을 걸을 때만이 내가 살 수 있고, 공동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어렸을 때 그냥 나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억지로 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시면서 “밥은 먹어야지.”라고 한 부모님과 같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밥 먹기도 싫고, 입맛도 없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쥐어준 숟가락을 들고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 넣었을 때, 마치 온몸에 작은 생명력이 다시 도는 느낌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할 것도 없는 것 같고, 올바른 길을 걸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지만 하라고 하시니 조금이나마 있는 힘을 쥐어짜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올바른 길을 걸을 때 우리의 삶과 마음이 변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는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감사는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더 많은 감사를 불러옵니다. 감사는 삶의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감사는 삶에 빛을 비춥니다. 

돌아오는 3월2일 재의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번 사순절은 따로 묵상집을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도님들께 ‘감사노트’를 나누어 드립니다. 매일 감사내용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의 걷잡을 수 없는 삶의 풍파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방법이 바로 ‘감사’였습니다. 작은 것,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의 제목을 찾기 시작했고 이내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으로 채워지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를 찾기로 선택하고, ‘평안’을 누리기로 선택함으로 깊고 짙은 어두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지금 펼쳐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또는 고난의 상황을 감사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재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재능으로 나와 상황을 변화시켜 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