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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불려진 이름들, 활자로 다시 살아나다무지개센터, 『유언을 만난 세계』 북토크 진행
정리연 | 승인 2022.03.01 03:42
▲ 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가 북토크를 개최하고 장애해방열사들이 남긴 유언을 우리 사회가 만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화면 갈무리

『유언을 만난 세계-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오월의 봄, 2021) 북토크가 2월28일 온라인을 통해 열렸다. 이번 모임은 ‘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대표 황용연 목사)에서 준비했다. 무지개센터는 이번 북 토크 개최 취지에 대해 “장애해방열사 8명이 이 세상에 남긴 유언을 만난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함께 얘기 나누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유언을 만난 세계』는 지난 2019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 기획 연재했던 글들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장애해방열사 8명의 흔적을 기록한 책이다.

몇 주 전이었다. “요거 부탁드립니다”라는 편집장의 메시지와 함께 북토크 안내장이 날아왔다. “아하! 이 책 홍보하는 거 봤어요.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지만,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최근에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을 접하면서 겨우 눈길을 돌렸을 뿐,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장애인의 삶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함께 묶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죄스러운 마음 때문에 저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과거를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묻히지 못하고 떠도는 말의 조각들

불에 그을리고 삐뚤빼뚤, 맞춤법도 틀리게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이 책 표지에 새겨 있었다.

“나의 주위에 계신은 동료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읍니다. 네 이루어지지 안는 것들을 꼭 이어주십시요. 나의 시신은 화장해서 두망강에 뿌려주세요. 준호야 사랑한다. 꼭 너하고 사려고 해는데, 준호야 준호야 네가 보고 싶군나.”

최옥란 열사의 유서였다. 불에 타다 만 종이처럼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재가 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직 살아있는 자들의 발목을 붙드는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뿐만 아니라, 이 책에 열사로 ‘명명’된 이들-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은 어떻게 살았고, 왜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투쟁했던 현장으로 자꾸만 데리고 갔다.

제목을 보고 좀 의문이 생겼다. 유언이 세계를 만난 게 아니라, 세계가 유언을 만났다는 건가? 단어를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서 요리조리 맞춰보면서 의미를 짚어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창조 활동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유언이라는 게 가까이 있을수록, 평소에 의미하지 않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순간 더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열사들이 죽기 전에 했던 말들이라든가 유서,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만들고 그 사람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죠. 그래서 죽은 자가, 그들의 유언이 능동적으로 작동을 해서 저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한, 사랑하는 자들이 이를 만남으로써 그런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 제목을 지었어요.”

낯선 이름, 장애해방열사

부제로 달린 ‘열사’라는 표현도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열사라는 틀에 맞지 않게 느껴졌다. 흔히, 우리는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서 투쟁하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을 열사라고 칭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열사는 단순한 일반인이 아니라, ‘영웅’ 같은 존재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널리 알려진 열사 외에, 그 목록 한 귀퉁이에 들지 못한 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기존 열사의 문법에 그간 기록되지 못했던 ‘변방의 열사’들의 삶과 죽음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변방의 열사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나는 대로 드러내고, 이로써 ‘열사’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책, 16쪽)

그냥 그들이 걸어온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들이 맞는지, 다르다면 바로 알아달라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주변인이었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수없이 넘었지만, 점점 높아져 벽이 되어 버린 ‘턱’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 도대체 움익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꺽어 놓았습니다 ….”

김순석은 유서 다섯 장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비장애인은 발 하나를 들어서 내밀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동할 수 있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아주 낮은 ‘턱’이라도 그들에게는 사회를 가로막는 장벽처럼 아주 높다. 가족을 먹여 살기 위해서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남대문 시장에 납품하러 집 밖을 나선 김순석 앞을 ‘턱’이 가로막았다. 건널목을 건너야 했기에 낯선 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좁은 시장길을 휠체어가 돌아다닌다고 욕먹기 다반사였다. 겨우 뚫은 거래처 사장이 제품을 헐값으로 받아도 항의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다니다가 교통경찰에게 잡혀 유치장 신세를 졌다. 이 모든 게 장애인, 불구자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순석은 차별과 모욕을 참고 수없이 부딪혔던 사회의 ‘턱’을 끝내 넘지 못했다.

▲ 장애해방열사 8인을 다룬 『유언을 만난 세계-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재가 된 목소리

“복수해 달라,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최정환은 비장애인이었다. 21살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얻고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하지만, 자립심이 강했다. 종교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2년 남짓 있다가 지역사회로 나와서 처음에는 껌, 수세미 등을 팔았다. 고무 튜브에 다리를 끼고 온종일 바닥을 기어 다녔다. 온몸이 먼지와 땀범벅이었지만, 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다. 연락도 닿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얼마 안 되는 생활보호대상 지원비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카세트 노점을 시작했고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불법 노점이어서 구청 단속반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물건들이 망가지기도 했고, 94년 여름에는 왼쪽 다리마저 쓸 수 없게 되었다. 자비로 3개월간 입원하면서 생계가 힘들어진 그는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서초구청은 고소하지 않으면 편하게 장사하게 해준다며 합의를 제시하지만, 결국 그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 장사 밑천인 스피커와 배터리를 뺏어 가버린다. 그날, 서초구청 마당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던 날은 빼앗겼던 스피커와 배터리를 찾으러 간 날이었다. 휠체어를 굴리며 찾아온 그를 귀찮다는 듯 모멸 어린 시선으로 쏘아보며 내쫓던 공무원의 눈빛은 칼이 되어 겨우 붙어 있던 최정환 삶의 희망을 조각내었으리라. 숯덩이가 된 그는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며칠 후 생을 마감한다.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자

상의가 벗겨진 채 양손은 포승줄에 묶여 있는 상태로 바다 위로 사체가 떠올랐다. 이덕인이었다. 그는 인천 아암도에서 노점을 하던 장애 청년이었다. 인천시와 연수구에서 노점상 강제 철거를 시작하면서 용역회사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했다. 지붕도 외벽도 없이 철골로 지어 합판을 올려 만든 망루 위로 올라간 30여 명의 노점상인들은 포크레인의 충격과 소방 살수를 맞으며 버텼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연행되었고 이덕인은 경찰의 눈을 피해 망루를 내려와 해변을 따라 탈출을 시도했다. 소식이 없다가 사흘 후 온몸에 상처와 멍이 들고 묶인 채 죽어서 나타났다. 경찰은 이덕인의 시체를 마음대로 탈취해서 부검하더니 죽음의 원인을 익사로 발표했다.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른 이덕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 있다. 죽어서야 겨우 존재를 알렸지만, 죽음조차 불평등하다.

결국엔 많은 이들이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

해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즈음해서 장애인들은 한 달간 ‘420공동투쟁단’을 출범한다. 3월 26일부터 시작하는데, 이날은 최옥란의 기일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녀는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가 생기면서 28만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임대주택 관리비, 공과금, 병원 오가는 택시비, 정기적으로 근육에 맞아야 하는 주사비 등 기본 지출만 28만 원을 훨씬 넘었다.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노점을 하면 수입이 생긴다는 이유로 수급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는 최저생계비보다, 의료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최옥란에게는 다른 싸움도 있었다. 어렵게 낳은 아들을 이혼하면서 상대방에게 보내야만 했다. 소득이 없는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였다. 월 2회의 면접교섭권을 얻었지만, 희박했다. 아이를 만나는 것도 생계 안정도 그녀에게는 희미할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 생존권 쟁취와 아들을 되찾고자 하는 싸움은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길이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평범한 바람이었다.

이러한 모든 게 그녀를 명동성당 앞으로 불러내었다.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시작했다. 일주일 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집에 찾아가 “28만 원으로 살아보라”는 쪽지와 자신의 급여 286,000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스스로 생을 마쳤고 일 년 전부터 써놓은 유서가 발견되었다. 그 일부가 이 책의 표지에 실렸다.

‘변방’ 없는 나라

이 글에서는 전부 다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이 외에도 4명의 열사가 더 있다. 하나같이 모두 한낱 미미하고 나약한 존재들이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난했고 성한 몸이 아니었다. 사회의 큰 이슈를 위해 투쟁한 것도 아니었고, 화려한 집중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과 죽음은 차별과 배제, 혐오로 얼룩진 장애인들과 소수자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당당하게 삶에 맞서자면서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관심 갖지 않으면 절대 들어볼 수 없는 이름들,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장애해방 운동이 시작되었고, 계속 더 단단해졌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우주로 흩날리면서 이 땅에 마지막 말들을 심었다. 지금은 발아한 싹이 돋아나 힘차게 자라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은 내가 겪어온 이들이 건네는 말이다. 동지들이 겪어온 이들이 건네는 말이다. 살아남은 동지들이 죽은 동지들을 겪어내는 만남의 장소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열사들을 겪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_발문 중에서

글을 쓰다 보니, 북토크 내용 정리하기보다는 책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허나, ‘두 가지 형식, 말과 글자는 결국 경계 없이 넘나들며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 내니까’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책을 읽으면서 사회와 구조의 폭력성과 파렴치한 민낯에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사회의 일원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어서 부끄러웠다. 살고 싶었지만, 살 수 없었던 한 맺힌 죽음을 접하면서 요즘 핫이슈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떠올랐다. 비장애인은 지하철이 연착되고 출근 시간에 늦게 되면서부터 장애인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장애인이 눈에 보인 것이다. 살고자, 살아보고자 온몸을 던지는 장애인들도 다치면 똑같이 아프다. 부딪히면 멍들고 상처가 난다. 누가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어도 물지 않고, 사자와 양이 함께 뛰어노는 나라가 너와 내가 다름이 구별 없고, 강하고 약함이 상관 없는 나라라면, 이 땅에서 우리가 만들어갈 파라다이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열사들의 죽음은 장애 운동의 불쏘시개가 되었고,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다. 유언은 마지막 행위로 끝난 게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살아 있는 자들의 삶과 길로 이어짐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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