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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혼란)의 이유, 소유물과 아들(창 22:1-12; 행 5:1-11; 마 21:1-11)사순절 첫째 주일(3월6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3.04 15:47

1. 예루살렘 성이 소동하다!

오늘 복음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을 때 온 성이 소동하였다고 합니다. 말씀을 바로 볼까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ἐσείσθη)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 21:10-11)”

여기서 ‘소동하여’라는 말인 에세이스데는 ‘세이오(σείω)’ 동사의 과거 수동태로 ‘지진이 났다’, ‘사람들이 선동되어 동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성의 질서에 균열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ἐταράχθη’(마 2:3).” 물론 여기서 ‘소동한지라’는 말인 에타라크데 역시 ‘타라소(ταράσσω)’의 과거수동태로 ‘혼란하게 되다’, ‘어지럽혀지다’, ‘선동되다’, ‘동요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 사역 이후 예루살렘 입성으로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혼란스러워 동요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오시면 옛 질서는 동요합니다. 새로운 세상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세상에 걸림돌이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걸림돌과 그 걸림돌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며 또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말씀은 걸림돌에 관한 이야기고, 창세기 말씀은 그 걸림돌을 제거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복음서 말씀은 걸림돌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말씀은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시험에 빠져 성령을 속이고 자신의 소유물을 감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약 말씀에 나오는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지만, 그것을 잘 극복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믿음으로 잘 극복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극복하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 당시 군마가 아니라,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험을 이기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부활절 전 40일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고난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 땅에 오시어 거짓된 질서와 잘못된 가치를 깨뜨리셨지만, 세상이 소동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립니다. 이렇게 세상의 불의한 질서는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이 그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위기가 터졌습니다.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이렇게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범하고 지배하려는 힘의 논리에 많은 이가 고통을 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을 받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첫 번째 소동의 이유, 소유

새 생명이 태어나기까지는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이 오기까지도 마찬가지로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야 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길에 걸림돌이 있습니다. 따라서 혼란스러워하고 소동하는 것입니다. 그럼 사도행전 본문 말씀에 나오는 첫 번째 소동의 이유를 살펴볼까요?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1-4)

잘 아시다시피, 초대교회는 유무상통의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을 볼까요?

“초대교회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감추었습니다. 소유 때문에 시험에 걸려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곧 혼란스러워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책망을 듣습니다. 그 결과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행 5:5-6).”

소유 때문에 소동한 아나니아가 죽습니다. 그런데 남편 아나니아의 일을 모르는 아내 삽비라가 사도들 앞으로 옵니다.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행 5:7-11)

▲ 니콜라스 푸신 <삽비라의 죽음>(1652)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람을 살리는 부활을 믿는 교회 공동체가 사람을 죽이다니,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대부분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일이 ‘유무상통의 초대교회 사랑의 공동체를 해치기 때문’이고, 둘째, ‘성령을 속인 두 부부의 위선’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적 권징과 하나님의 심판’을 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책망하고 심판하는 권위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입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권위입니다.

그러나 오늘 세 본문의 맥락에서는 첫 번째 해석에 기초하여 소유물이라는 걸림돌에 넘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유무상통해야 하는데, 소유 때문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소유 사건이기도 하고(창 3:6), 여호수아의 아이성 점령 당시 아간이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을 소유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수 7:1). 그만큼 인간의 소유욕과 탐욕 때문에 새로운 세상은 쉽게 도래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공동체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나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이러한 소유욕으로 인해 무너지기 쉽습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거짓된 제사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상은 더디 오는 것이며 이들이 바로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상에 걸림돌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서울대 백낙청 명예 교수의 진단입니다.

3. 중근병 걸린 엘리트 카르텔

“똑똑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해지곤 하는 것도 요즘 세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냥 똑똑한 게 아니라, 진취적이라는 명성마저 얻었던 이들도 많다. 특히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사람들의 변화가 눈을 끄는데, 극우세력이나 할 법한 소리를 어느새 내뱉기 시작하는가 하면 교묘한 양비론으로 쟁점을 흐리고 민중의 기운을 빼곤 한다.”

백낙청 교수는 이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중근병(中根病)’이라고 합니다. ‘공부와 사업이 어느 정도 뜻대로 잘 되다가 큰 경계를 만나게 될 때’, 혹은 ‘공부와 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잘 되어질 때’ 중근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백낙청 교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해지는 현실 하나만 봐도 혁명기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냥 정체하는 게 아니라, 퇴행하게 마련이라는 진실을 실감하게 되며, 설혹 2기 촛불 정부가 탄생하더라도 그 앞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중근병에 걸린 엘리트들의 눈에는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헛것이 보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시험에 걸려 걸림돌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은 눈에 헛것이 아니라, 진실이 보일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엘리트 카르텔’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백낙청 교수는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 교수를 언급합니다. 백낙청 교수의 말입니다.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한국의 독특한 부패구조를 ‘엘리트 카르텔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관료, 정치인, 청와대, 군, 동일 지역 또는 동일 학교 출신 엘리트들이 뭉쳐서 권력 기반을 유지하고 부패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공무원들과 달리 중앙 관료(적어도 간부직 이상의 관료)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몸통의 일부이다. 대통령의 관료 장악 시도는 바로 정계와 법조·언론·군부·학계를 망라하는 다업종 카르텔과의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법과 시민 위에 선 부패 엘리트 카르텔

2022년은 다업종 카르텔과 엘리트 카르텔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백낙청 교수는 시민들의 힘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그 일을 정부에만 맡기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개인 또는 다양한 집단을 통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관건이다. 당장에 2022년 대선에서도, 마치 백화점에 쇼핑 나온 사람처럼 누구는 이래서 안 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 된다고 ‘높은 안목’을 과시하기보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이번 선거가 어떤 건곤일척의 대회전인지 직시할 일이며, 선거 이전부터도 ‘성공하는 2기 촛불 정부’ 만들기에 자기 나름의 최선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두 번째 소동의 이유, 아들

두 번째 소동의 이유를 살펴볼까요? 오늘 구약 본문 말씀에는 시험을 받았으나,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잘 극복한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헛것이 아니라, 진실을 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소유로 인해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소동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1-2)

아마도 아브라함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온몸이 떨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아버지답게 이 시험을, 이 걸림돌을 믿음으로 잘 극복합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 22:3-6)

이때 아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7-8)

얼마나 마음이 혼란스러웠을까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제단 쌓을 곳에 도착합니다.

▲ 카라바조 <이삭의 희생>(1603)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9-12)

여호와 이레입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비록 잠시 소동하였으나, 믿음으로 잘 극복한 아브라함을 위해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순종과 믿음으로 우리는 소동과 혼란을 면할 수 있습니다.

5. 겸손으로 만드는 세상!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이 순종과 믿음은 바로 겸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소동하지 않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마 21:1-3)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죠?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마 21:4-7)

이렇게 겸손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찬양합니다.

▲ 이폴리트 플랑드랭 <예루살렘 입성>(1842, 사진 위)과 빌라도의 예루살렘 입성(영화의 한 장면, 사진 아래)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 21: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세상은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듯, 왕이 군마를 타고 큰 권력과 영광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처럼 겸손하여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임하는 작은 겸손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중근병 걸린 똑똑한 엘리트 카르텔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시민들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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