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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2.03.04 16:29
▲ 누구에게는 거주할 동네이지만 누구에게는 가난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거주의 자유는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감천문화마을

새벽 첫 차를 기다리며, 시린 발을 동동거리고 손에 입김이라도 불어 본다. 온기를 주는가 싶더니 벙어리장갑 실오라기마다 하얀 얼음이 붙었다. 머리카락들도 바람에 나부끼어 얼른 점퍼에 달린 모자를 휙 덮어쓴다.

‘우리나라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어!’

누군가 나의 몸을 옭아 메어서도 아니고, 감시나 통제를 당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명천지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면박을 당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첫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빨리 타기위해 차 시간 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선 이들. 그 얼굴들을 어제도 보았다.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것이다. 서로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그러니, 보고 또 보는 그 얼굴들이 반갑기도 하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서로가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알아차려주는 누구가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첫 차. 처음이라고 하는 것이 활기차기보다는 고단하다.

‘출・퇴근이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심방 가는 권사님의 댁이 상당히 멀다. 권사님만 아니라 도시 교회에는 멀리서 오는 교인들이 제법 있다. 가만 보면, 대체로 근처에 살며 교회를 다니다가 새로운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개발되는 곳을 따라 이주한 것이다. 권사님 댁은 구축이니 재개발을 위한 투자일까?

“권사님, 교회에서부터 오는 길에 본 큰 교회만도 몇 개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교회들을 두고 우리 교회를 다니게 되셨어요?”

교회선택의 이유도 신앙생활을 돌보는 것에 중요한 요소도 되어 장난스럽게 여쭈었다.

“그러게요. 다른 교인들도 다시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라고들 하네요. 근데, 거긴 비싸서 못 가요.”

듣고 보니, 교회 근처에 살다가 사업의 실패로 교회와 점점 멀어지도록 몇 번의 이사를 하였단다. 그런 때마다 팔고나면 재개발이 추진되었다는 말에는 아쉬움이 잔뜩 담겨 있었다.

처음 이사할 무렵만 해도 1-2천만 원 정도의 차이가 나던 것이 지금은 천정부지 치솟고 개발호재로 지역편차가 커져서 현재의 형편으로는 교회 근처로 이사를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단다. 그런데, 집값이 상승했다는 지역에 사는 교인들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매 한가지였다. 집값이 올랐다고 해봐야 이 집 팔아서 근처 다른 데로는 갈 수가 없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내가 여기로 이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도 없었어요. 오죽하면, 나는 이삿짐도 안 쌌어요. 남편과 사정을 잘 아는 제 친구가 짐을 싸고 이사를 했는데, 거실에 있는 짐, 사실 짐이랄 것도 없는 보따리를 풀지도 않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어요.”

새벽에 설교한 창세기. 에서와 화해하는 야곱의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자신의 집에 심방을 요청한 것이란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보호하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뒤에 서던 자가 앞서 나아오게 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다. 편안한 어떠한 삶의 조건보다도 씨름하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그 것이 중요하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만난 권사님은 더 이상 숨는 자가 아니라 심방 1호 교인이 되었다.

권사님은 두툼한 pvc매트 위에 온수매트와 면 패드가 차례로 정갈하게 깔린 위에 심방상을 놓고 기다리셨다. 올라와 앉기를 권하며 전기난로를 가까이 가져다가 주신다.

누추함을 있는 그대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앉기조차 비좁고 추워서 누구도 초대하지도 않으셨다고 한다. 게다가 남들에게 이러저러한 말들을 듣게 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단다. 그런데, 이젠 우리 집이 좁아서 앉을 데도 없다고 지인에게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도 하고, 이사 온 지 팔년이나 된 지금에야 비로소 정붙이고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권사님. 저도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에는 하도 더우니까 손님을 못 오시게 했어요. 충분이 이해가 되요.”

우리는 마주 쳐다보며 큰소리로 깔깔 웃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내어놓아도 그대로 품어 주시는 분이시잖아요.”

권사님은 나를 가만 바라보며, 끄덕이셨다.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보니 높다란 이층광역버스가 정류장을 들어선다.

권사님댁 바로 앞에는 서울을 가는 광역버스가 정차한다.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이 동네에는 평수도 작고 집값도 싸서 서울로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산단다. 낮 시간에는 버스가 텅텅 비어 있었다.

저녁 퇴근 무렵에나 지친 몸을 이끌고 되돌아오는 이들로 다시 채워질 테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에 가능하다는 바울의 고백. 극단의 상황들이 오히려 치우지지 않는 믿음. 모든 것을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는 위로를 함께 버스를 올라타는 사람들마다 얻기를 바란다.

막바지 꽃샘추위. 아직은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이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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