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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의 장애는 ‘코넬리아 디 란지 증후군’이에요”천사를 키우는 중입니다
정리연 | 승인 2022.03.05 23:28
▲ 박연숙님과 아들 ‘창성이’ ⓒ박연숙님 제공

그녀는 첫아이를 낳고 이사를 했다. 동네도, 이웃도 낯설기만 했고 아이가 아파서 외출을 자주 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밖에 나왔는데 한 할아버지가 대뜸, “병신은 낳지도 말라고 했는데”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소린가?’ 말문이 막혔다. 옆 건물에 사는 분이었지만,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어쩌다가 한두 번 마주친 게 다였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소리 지르며 따져 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어금니를 굳게 악물었다. 그에게는 분노조차 아까웠다. 할아버지가 내뱉은 말은 오랫동안 날카로운 바늘처럼 그녀의 가슴을 찌르고 흔들었다. 찔릴 때마다 핏빛 멍이 드는 것 같았다.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에게 그렇게밖에 얘기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할아버지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의 육체는 멀쩡한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밖에 내뱉지 못하는 일그러진 영혼이 불쌍했다.

그녀는 내가 모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할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해주던 상사였다. 다그치기보다는 일이 많아서 힘들고 지칠까 봐 오히려 아랫사람을 걱정해주는, 꼰대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우리는 종종 사무실이 아닌 밖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왔다. 그러나, 오늘 그녀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게 조심스러웠다. 평상시에도 아이들 안부를 나누긴 했지만, 오늘은 그녀가 그동안 아프고 힘들었을, 혹은 여전히 진행 중일지도 모르는 상처를 건드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낯선 이름, ‘코넬리아 디 란지 증후군’

들었을 때, 생소했다. 사실은 스쳐 지나가면서 들어본 적도 없다. 이름도 어려워서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다. 처음에 이를 알았을 때 어땠을까? 출산 후 아이를 마주했을 때, 가족과 지인들도 많이 놀랐을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장애아를 낳았다는 것에서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던데….

‘코넬리아 디 란지’ 증후군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데, 난치성 희귀질환이에요(1933년 네덜란드 의사 ‘C. de Lange’가 증상이 비슷한 두 아이를 비교해 이 증후군의 증상을 기록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그 증후군의 증상이 여러 가지 장애로 나타나요. 발달장애, 인지 장애, 청력 장애, 시력 장애, 사지 기형 등. 지금 우리나라에 약 100여 명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반병원 의사들은 잘 몰라요.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임상유전학과 의사들이 지금도 연구하고 관찰하면서 진료해주고 있어요. 난치성 희귀질환이다 보니, 치료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때그때 증상에 맞춰서 봐주는 거죠.

출산하기 한 달 전쯤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수술로 아기를 낳고 마취에서 깨어나서 남편에게 아기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했어요. 산소호흡기를 달고 콧줄로 우유를 줘야만 하는 상황이라 인큐베이터 안에서 두 달을 보냈어요. 친정엄마는 늘 장애가 있는 아이 키우느라 딸이 힘든 것, 그 걱정을 제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난 괜찮다고 엄마 앞에서 씩씩한 모습 보여드리려고 애를 쓰는데도 엄마는 저를 늘 안쓰러워하세요.

창성이를 향한 시부모님들의 사랑은 특별해요. 아이 재활치료를 다니면서 만난 한 아기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시부모님이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도 안 잡아주었대요. 그 얘기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창성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보내신 선물”이라고 하셨어요. 시부모님께 늘 감사해요.

죄책감이라…. 처음에는 저도 죄책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아프게 낳아준 게 너무 미안하고 살아오면서 잘못한 일도 많이 생각나고. 전부 내 탓인 것만 같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왜 아이가 아프게 되었는지 보다 어떻게 아이를 보살필 것인가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어지더라고요.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 이런 게 더 크게 자리를 잡아 갔어요. 창성이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어떤 측면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 더해진 느낌이에요. 감사하죠.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죄책감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보드라운 마음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

올해 15살이 된 창성이가 돌이 되었을 때, 그녀는 그동안 썼던 일기를 엮어 「창성아, 사랑해」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다. 돌을 축하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나눠주려고 만든 책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어보면 그 어느 곳에도 창성이로 인해 신이나 현실을 원망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창성이를 향한 사랑과 감사가 곳곳에 스며있다. 아니, 종이 120장이 그런 마음으로 흠뻑 젖어 있다. 글머리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어머니가 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창성이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토록 가슴에 간직하며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항상 유지하기에 현실은 너무 힘들 것 같다. 장애아를 돌보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감정적으로도 고되지 않나. 그럴 때 남편과 다투거나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될 것 같은데, 평소 그녀를 보면 가족도 정말 화목하고 양가 부모님과도 사이가 돈독해 보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종교의 힘일까?

장애아를 키우다 보면 주변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어떤 분이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장애 있는 아이를 맡기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창성이를 출산하는 문제부터 지금까지 키워오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이나 아이를 원망하는 남편을 본 적이 없어요. 그냥, 그 사람의 성향인 거 같아요. 천성이 착하고 낙천적이에요. 만약에 남편이 힘들어 하고 그러면 우울질 기질이 다분한 저도 정말 우울하고 힘들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남편은 고통을 묵상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나 할까? 하하. 그런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남편의 태도를 보면서 어떤 모습이라도 정말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웠어요. 그리고 점점 강화된 거죠.

물론, 종교의 영향도 있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이니까 소중하잖아요. 제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힘들다고 해서 도망칠 수는 없지요. 창성이를 키우면서 성경을 통해 이론적으로만 알던 것들을 실제로 체험했다고 할까? 하나님이 만든 세상의 모든 게 다 소중하다고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잖아요.

가끔, 인생에서 큰 어려움이 없으면 더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닥쳤을 때, 그때도 감사하는 것은 깊이가 다른 것 같아요. 창성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예요. 삶의 신비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창성이가 보통 아이처럼 태어났다면, 지금쯤 수학이랑 영어 교육한다고 난리였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좀 느려도 괜찮고, 그냥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것이 뭔지 깨달은 거죠.

처음에도 말했지만, 부모님들과 가족들이 창성이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걸 느껴요. 큰 힘이 되고 감사하죠.

창성이로 물든 365일 모든 순간

▲ 박연숙님은 창성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깊은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시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정리연
“… 며칠 전에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손자가 다녀갔습니다. 아직도 손자의 울음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 품에 안길 때 주님께서 기뻐하셨겠죠? … 사랑하는 손자가 엄마의 젖을 빤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엄마의 젖을 아기가 물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손자의 작은 움직임을 볼 때마다 너무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창성아, 사랑해」, 할아버지가 쓴 편지 중에서)

도인의 경지에 오른 그녀. “깔깔깔” 잘 웃는 그녀 곁에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의 아픔을 기쁨과 감사로 승화시킬 줄 아는 그녀가 있는 곳에는 늘 웃음이 있다. 사랑을 주기도, 받기도 많이 해서일까? 그녀의 책에는 시아버님이 창성이 돌 때 쓰신 기도문이 있는데,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겁고 마음 한편에 뭔가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창성이가 인큐베이터에서 두 달 있었다고 했는데, 그 후에도 위험한 순간이 많이 있었을 것 같다. 나쁜 생각이지만, ‘이대로 끝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 둘째도 있는데, ‘혹시 둘째도’ 하는 두려움이나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출산하고 마취에서 깨어난 후 아이를 보러 집중치료실에 갔는데 산소호흡기를 한 채 온갖 줄을 매달고 있는 아기가 보였어요.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그냥 아기가 살아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복수가 가득 차서 위험하다고 했는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았어요. 2주 정도 후에 창성이의 병명을 알게 되고 검색 중에 2년이 고비라는 글을 보았어요. 증후군으로 인해서 오는 질병들이 많은데 그사이에 그걸 견디지 못하면 아무래도 살기 힘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창성이도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릴 때마다,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말할 수 없이 초조하고 불안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창성이는 수술 때마다 그 작은 몸으로 잘 견뎌주었어요.

환우회 카페가 있어요. 같은 질환이 있는 자녀를 키우는 가족들 모임이에요. 저도 가끔 거기 들어가서 정보도 나누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보고 그러는데, 어떤 분 글에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너무 싫어요.”

그 마음에 공감 가더라고요. 하루하루 맞이하는 게 힘든 거죠. 하지만, ‘생명’이잖아요. 제가 살면서 대단한 걸 이룰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생명을 돌보는 것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나이가 좀 많아서, 둘째는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창성이 키우기도 벅차고요. 그런데, 둘째가 생겼어요. 가족들도 모두 축하해줬어요. 둘째도 장애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형제들은 대부분 건강하다고 들어서 마음을 놓았어요. 아기도 뱃속에서 별문제 없이 잘 자랐고요. 그런데 의사가 막달에 초음파를 보더니, 다리가 짧다는 거예요.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런데 그게 뭐 대수인가, 창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둘째는 자라면서 다리가 길어졌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언젠가 그녀는 ‘사사키 시호미’라는 일본인이 쓴 『장애도 못 말리는 명랑엄마의 행복 선언』이라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장애아 세 명을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였다.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장밋빛이라고 했다고 한다. 인간에게 행복의 조건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걸까?

행복은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 태도에 달린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충분히 불행할 수 있는 환경인데 당사자는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얘기하기도 하니까요. 반대인 경우도 많고요. 사람에 따라 그 진리를 일찍 깨닫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모르고 죽기도 하는 거죠. 저는 창성이로 인해서 그걸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도 이런 삶의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여러 가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요. 어느 누가 자기가 장애아를 낳을 거로 생각하겠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또, 어떤 사고로 자기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그 상황을 맞이하니까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고 당황해요. 심지어는 자살하거나 복지가 좋다는 나라로 이민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장애아를 키우면서 교육에 관한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학교 공부로 해결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이 주가 되다 보니 삶에서 닥치는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낼 만큼 아이들 마음도 단단하지 못하고요. 우리가 보통 그런 것을 신앙의 힘, 신앙의 영역에 맡기고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데 일반 학교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성이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고 알고 있다. 동생은 형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같이 어울리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창성이는 현재 어떤 상태(신체*정신적인 성장)인가.

둘째는 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가끔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형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요. 엄마 아빠가 죽으면 자기가 형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형이랑 얼마나 같이 놀고 싶겠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거든요. 이런 것을 풀어줘야 하는 숙제가 저에게 있는 거죠. 장애가 있는 아이의 형제들도 아픔을 가지고 성장한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치유가 필요하대요. 둘째 같은 경우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심리 미술 활동하는 곳에 보내요.

창성이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입학했으면 올해 중학교 2학년인데 2년 늦게 들어가서 6학년이 되네요. 체구는 다섯 살 정도로 엄청 작고 많이 말랐어요. 15살인데, 16kg 정도예요. 왼쪽 뇌에 손상된 부분이 있어 오른쪽 손과 다리에 강직이 있어요. 뇌파가 불안정한 탓인지 가끔 경기를 해서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고요.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구요. 걷기는 하지만 까치발 수술을 받은 지 오래되어서 다시 한쪽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요. 말은 못 하구요. 지능이 두 살쯤 되는 거 같아요. 원하는 게 있으면 손을 잡고 데려가요. 배고프면 먹고 싶은 게 있는 곳으로, 요즘 한창 좋아하는 뽀로로 만화가 보고 싶으면 태블릿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고, 소리 나는 것들을 좋아해서 라디오도 켜달라고 해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기타 치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러는지 기타 소리를 좋아해서 자주 쳐 달라고 그러는데, 잔잔하게 치면 안 돼요. 세게 쳐야 좋아해요. 어떨 때는 계속 쳐달라고 해서 팔이 아파 기타를 감춰 놓은 적도 있어요. 하하.

이 증후군이 있는 애들은 섭식 장애가 있어요. 음식을 잘 씹지 않고 삼키니까 잘게 잘라서 줘요. 어떤 아이는 2년 동안 이온 음료만 먹었다고 해요. 창성이도 아기였을 때 100ml 우유 먹는 데 하루 내내 걸렸어요. 종일 우유를 먹이다가 제 목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더 좋아질 내일을 기대하기보다는 오늘의 좋음을 즐기는 것

한 생명을 감당하는 일이 이렇게나 버겁다. 창성이를 낳고 입원실에 누워 있을 때, “아우, 아기 얼굴이 진짜 크네”, “다리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라면서 웃는 다른 아기의 부모들이 부러웠다는 그녀. 그녀가 농담도 할 수 없이 심각했던 아기가 지금은 삶의 축복이 되었다. 과연,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장애아를 맡기지 않는다는 말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장애아를 돌본다는 건 너무 힘들 것 같다. 직장생활도 하지 않았나. 힘든 시기가 무척 많았겠지만, 특별히 힘든 적은 언제였나. 창성이에 대해서 남편과 자주 얘기 나누는 편인가.

생후 2년간 거의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어요. 그러니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고, 나중에는 어린이집을 보냈어요. 일반 어린이집은 생각도 안 했어요. 통합 어린이집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장애가 심해서 장애 전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는 특수학교에 보냈고요. 직장 생활하면서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았어요. 그게 있으니, 그나마 제가 일도 하고 숨통을 틔울 수 있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주로 병원에 있을 때에요. 수술실 앞에서 기다릴 때요. 그동안 일곱 번 정도 수술한 거 같은데 혹시라도 수술이 잘 못 될까 봐 너무 긴장되고 두려웠어요. 그럴 때마다 가장 큰 힘과 위안이 되는 건 가족과 신앙이에요. 세브란스병원 내에 있는 교회에 자주 가서 기도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병원에 있으면서 코드 블루 방송이 들릴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또 누군가가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나려나 보다 생각하니 아이가 지금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되새기게 되었어요. 얼마나 아쉬울까, 혼자서 얼마나 두려울까, 남의 일 같지만은 일을 자주 접하면서 살아있는 동안 더 사랑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냥 하루 세끼 밥 먹고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정말 소중한 느낌이 들어요.

마음의 준비는 항상 하고 있어요.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날지는 모르는 거지만. 남편하고도 창성이 얘기를 많이 나누죠. 죽음에 관한 것보다는 현재 상태,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해요. 어제도 “오늘 창성이가 방귀를 많이 뀌어서 기뻐”라고 말하면서 웃었어요. 왜냐면, 창성이가 공기 삼킴증이 있거든요. 행위 자체는 문제가 되는 게 아닌데, 계속 공기를 삼키는 호흡을 하다 보니 이게 밖으로 배출이 되지 않으면 장기에 가스가 가득 차서 배가 부풀어요. 작년에 이것 때문에 응급실 가서 열흘 넘게 입원했어요. 금식하면서 가스를 빼느라고 창성이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자기 전에는 항상 배를 마사지해 주면서 가스를 빼게 도와주고 있어요. 그러니 창성이가 방귀를 많이 뀌는 게 엄청 대단하면서 기쁜 일인 거죠.

세상보다 더 단단한 존재가 되어주는 사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선물이기에, 축복의 손자이기에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단다. 그리고 지금도 많이 보고 싶다. 많은 사람에게 너를 자랑하고 있단다. 이 할미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라 … 지금까지 모든 힘든 순간들 잘 이겨내고 견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창성이 잘하리라 믿는다. 너와 항상 함께 하는 좋은 엄마 아빠와 네 평생 함께하실 더 좋은 친구인 예수님이 계시니 할미는 걱정하지 않는다.”(「창성아, 사랑해」, 할머니가 쓴 편지 중에서)

창성이는 존재만으로도 가족들에게 큰 행복과 사랑을 주고 있음이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창성이를 자랑한다는 할머니의 말이 시리게 눈물겹다. 그녀는 앞으로 창성이와 동생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어떤 가족이 되기를 바랄까. 물론, 지금만으로도 충분해 보이지만.

예전에 있던 공동체에서 영성이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이라는 걸 배웠어요. 살아오면서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삶에서 넘어지는 순간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영성에서 나온다는 거죠.

아이들에게도 그런 걸 알려주고 싶어요. 살아가면서 겪게 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에서 너무 주저앉지만 않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신앙을 통해서 보여 주는 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요.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내가 도와줄 힘이 있으면 돕고, 필요하면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서로 이렇게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나 혼자 잘 살다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저 역시 창성이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가족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분이 기도해주고 힘을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사람마다 성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창성이는 정말 밝고 소리 내면서 잘 웃어요. 아빠를 닮아 낙천적인 것 같아요. 요샌 나름 고집이 세지고 울기도 잘하지만, 그것조차 예뻐요. 이일 저일 말썽을 부려도 괜찮아요. 창성이에게 뭘 기대하거나 바라는 게 없어서인지 화가 나지도 초조하지도 않아요. 그냥 건강하기만 했으면, 지금처럼 잘 웃으면서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창성이는 천사예요.

시리지만, 아름다운

“사랑하는 창성아! 정말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너무 예쁜 우리 아들 창성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해서 아빠가 너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창성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크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아빠가 가끔 빨리 크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 하지 않을게. 창성이는 창성이만의 속도가 있는 것이기에 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할게. 우리 아들이 요새 들어 아빠의 작은 장난에도 잘 웃어주어서 너무 행복하단다.”(「창성아, 사랑해」, 아빠의 편지 중에서)

작년 가을, 그녀에게 코스모스 사진을 보내면서 말했다. “당신을 닮았네요.” 여리지만 예쁜 미소를 짓고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꼭 그녀 같았다. 그냥 삶의 흐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흔들리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오늘도 삶의 가치와 행복은 싸워서 얻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에 울렸다. 창성이와 삶을 대하는 그녀의 진실한 눈과 단단한 마음으로 인해 세상이 새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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