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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쁘십니까?신앙의 출발점(요한복음서 1:9-14)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3.06 23:38
▲ Richard R. Caemmerer, 「Bang」 ⓒRichard R. Caemmerer

0.

오늘부터는 주일말씀에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장한장 읽어가면서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요한복음의 전체 주제인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뭘까?’ 하는 문제를 고민해 봅시다.

물론 요한복음 안에는 수많은 다른 주제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는 하나님과 나는 과연 어떤 관계인가? 하는 물음에 집중해서 고민해 보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실제의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신앙의 고백과 삶의 자리에 불균형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신앙고백의 근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타성적인 근본 말고, 옆에서 다들 그렇게 말하고 나역시 그게 정답인 줄 아니까 당연한 듯이 나도 그렇게 고백하는 그런 신앙근본 말고, 내 깊은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항상 새롭게 솟아나오는 뜨거운 눈물 같은 그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상태는 건강과 비슷합니다. 한 때 건강하다고 해서, 평생 그 건강함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장 건강했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지금도 그 때처럼 똑같이 건강하신가요? 아닙니다. 여기 저기 안 좋아진 곳이 있고, 노쇠해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잘 지키고 관리하지 않으면,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서 건강상태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면서 관리해야 합니다. 한때의 건강함만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때의 건강이 평생 그대로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도 한때는 건강하고 튼튼해서 매일매일 성령으로 불타오르며 굳건할 때가 있습니다.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고, 마음속에서 언제나 기도가 솟아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동되어서 모든 일 앞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반응하는 그런 때가 우리에게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신앙도, 내가 잘 관리하지 않으면, 혹은 악한 시험에 의해서, 혹은 안일한 신앙의 매너리즘에 의해서, 신앙의 상태가 변할 수 있습니다. 좋았던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내 신앙의 상태가 낮아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서 못하고 있지만, 전국의 목사님들이 노회별로 모여서 축구대회를 합니다. 제가 속한 서울북노회가 상당히 강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축구를 하다보면 불의의 사고가 생깁니다. 대단한 사고는 아니구요.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와서 공을 차다보면, 즐거운 나머지 지금의 몸 상태를 생각하지 못하고 젊은 시절처럼 뛰게 됩니다. 옛날 20대 30대의 기억만 가지고, 그 때와 똑같이 뛰려다 보니까, 넘어지고 자빠지고 쥐나고 탈진하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지금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옛날 쌩쌩하던 시절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옛날 불같이 뜨거웠던 때만 생각합니다. 아직도 내가 뜨거운 줄 압니다. 옛날에 불렀던 찬양, 옛날에 드렸던 기도, 옛날에 불탔던 성령의 역사, 이 추억에만 젖어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옛날만큼 뜨겁지 못하고, 옛날만큼 찬양하지도 않으며, 옛날만큼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내 신앙은 아직도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자기 신앙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내 신앙의 전성기가 언제인지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지금 내 신앙의 건강상태와 솔직하게 비교해 봅시다. 우리의 관심은 지금 내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지금 내 신앙의 솔직한 상태를 바라보지 못하고 옛 추억에 눈 멀어 있으면, 나의 진짜 신앙은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근본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나는 과연 무엇을 믿는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과연 나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성경의 증언; 그 성경의 증언에서 나는 어떤 확신을 얻는가? 그 확신이 내 마음과 내 영혼을 어떻게 감동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신앙의 기본들을 가지고 내 신앙의 상태를 진단해 보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처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을 정립하는 일입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립해 나가다 보면, 확실한 증언에 도달하게 될 텐데, 그 결론을 미리 맛보자면 17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드리는 마지막 기도입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버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전능하시지만, 저 멀리 나와 떨어져 있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계셔서 나와 하나가 되신 분이라는 것, 우리도 마침내 그 확신에까지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오늘 말씀을 보니까, 신앙은 기쁨에서 출발합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1절의 말씀입니다. 새번역이 ‘맞아들인다’고 한 말을 개역성경은 ‘영접한다’고 표현하고 영어성경은 ‘receive’라고 표현합니다.

맞아들이는 것, 영접하는 것, receive는 상대방이 건네주는 물건을 받는다고 하는 단순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환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환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맞아들임으로 인해서 이전의 내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 삶을 바꿔버릴 정도로 기쁘게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그대로 있고 거기에 예수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인해서 내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삶에 맞아들이는 사건을 떠올려 봅시다. 어부로 살던 사람들이 예수를 만났을 때 어떻게 예수를 맞아드렸나요? “당신이 하는 말이 참 괜찮고, 그럴듯하니, 나도 그 말대로 살면 참 좋겠습니다. 시간 나면 당신 이야기도 들어보고 당신 말대로 살아보도록 할게요” 하고는 고기잡이 하러 나갔습니까?  예전처럼 고기잡이 하면서 속으로만 ‘나는 이제 예수 믿는 어부야. 구원받은 어부야’ 하고 생각했습니까? 옛날의 삶은 그대로 두고 그 삶에 예수가 추가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물을 던져버리고, 배를 버려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섰습니다. 완전히 삶을 바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삶의 기준이 바뀌고 목적이 바뀌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삶의 즐거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으면, 하던 일 전부 팽개쳐 버리고 교회 일에 몰두하고 길거리로 전도하러 나가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내던져버릴 정도로, 예수를 내 삶에 맞아들인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 바뀌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옛날 기쁨은 다 내던져버릴 정도로 새롭고 강렬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강렬한 기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기쁘십니까? 살아가는 것이 기쁘십니까? 힘들고 어렵고 고되고 하는, 얼마나 잘살고 못살고 하는, 그런 삶의 형편이 아니라, 형편이 어찌하든지 그 삶을 살아가는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살아가는 날들이 기뻐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기뻐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의 나의 형편과는 상관없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그 기쁨의 원인은 오로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그 이름을 믿는 것(v.12)’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기쁨입니다. 기쁘지 않으면 믿을 수 없습니다. 기쁘지 않으면 믿어봐야 헛일입니다. 억지 믿음일 뿐입니다. 기쁘지 않은 믿음은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가짜 믿음입니다. 나도 모르는 와중에 하나님 말고 예수님 말고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기쁜가? 하나님을 믿는 나는 기쁜가? 하나님을 믿는 나는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시간 중에만 나누는 말씀으로 끝나버리지 말고, 예배를 마치고 삶의 현장 속에서 화두로 삼고 깊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고민의 마지막에 ‘그래, 나는 참 기쁘다. 즐겁다. 감사하다!’ 하는 고백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기뻐할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에게 엄청난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고,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심판받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 안에서 기뻐하면 됩니다.

예수를 맞아들이고 영접하면 자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내 육신의 의지 가지고도 못하고,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 가지고도 못하고, 혈통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써만,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대로 예수를 믿고 내 마음대로 자녀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 믿음으로 자녀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자녀가 되어서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못한다구요? 아닙니다. 기뻐하면 됩니다. 무엇을 기뻐합니까? 주님을 기뻐합니다. 예수를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에게 기쁨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내가 가진 세계관, 가치관, 진리와 논리, 이 모든 것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세계관, 가치관, 진리와 논리, 이런 많은 것을 주셔서 지니고 있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으로만 기뻐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순전한 상태를 기뻐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런 기쁨에 이르는 훈련을 ‘초탈’이라고 말했습니다. 돌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만 기뻐할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극복할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의 상태가 건강한 상태가 되도록, 옛날의 건강함을 기억하면서 지금도 건강하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일이 기쁜 일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하도록, 그 기쁨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이 기쁨의 길로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은혜임을 알도록, 그렇게 내 마음을, 내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됨입니다.

바로 그 때, 14절의 말씀이 다르게 읽힙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예수의 성육신에 신비에 대한 증언만이 아니라, 그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증언합니다. 예수가 내 안에 오시고, 그것도 기쁨으로 오시고, 그래서 내 삶이 완전히 바뀌고, 그 바뀐 삶을 통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광을 체험하게 되고, 그것이 은혜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가 내 삶에서 이루어지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가 나와 함께 내 안에 사시는 것, 그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성육신의 비밀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기쁘십니까? 우리, 오늘 온 삶으로 기뻐합시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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