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 제3차 총회에서 행진하는 아프리카 대표자들. ⓒWCC

‘유기체적 일치’에서 ‘협의회적 친교’(Conciliar Fellowship)에로

‘유기체적 일치’ 개념은 제2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에든버러, 1937년 8월3일부터 8월18일까지)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이 개념은 ‘엄격한 획일성과 연관된 채 경직된 정치적 일치’에 반대하여, ‘건강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의 다양한 차이들과 함께 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적 일치’를 의미한다.(1) 이런 유기체적 일치는 교회에게 하느님이 주신 모든 다양한 영적인 선물들을 한 공동체 안에서 회복하고 보존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유기체적 일치’가 조직체적 연합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효과적인 국제적 기구가 될 수 없는 것을 2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는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협의회적 친교’ 모델은 ‘유기체적 일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모색이었다.

협의회성은 그리스도인들이-지역적으로, 지방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공동의 기도를 위해, 서로 조언하기 위해, 신앙 안에서 결단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성령께서 그런 모임을 화해와 갱신과 교회의 변혁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실 수 있고, 거기에서 성령이 우리를 진리와 사랑의 충만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함께 모이는 것이 협의회성인 것이다.

교회일치를 협의회적 친교의 형태로 이해한 것은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1973년 스페인의 살라망카에서 ‘일치의 개념들과 하나 됨의 모델들’을 주제로 모이면서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논의된 중심적인 부분들은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제2분과의 보고서에 통합되었는데, 보고서는 협의회성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교인 개인과 개 교회의 은사, 타자성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결합된 협의회적 친교 모델은 사실 온전한 교회일치에로 나아가기 위한 전단계적 일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협의회적 친교도, ‘교회들이 서로를 동일한 진리를 소유하고, 동시에 고백하고 있는 교회로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3) 스페인의 살라망카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 모임의 논의를 더 심화시키기 위해 다음 해(1974년)에 아프리카 가나의 아크라에서 다시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모였는데, 그것은 ‘협의회적 친교’라는 개념이 갖는 모호성 때문이었다.

아크라 모임의 결과는 ‘교회의 일치-그 목적과 방법’이라는 보고서로 채택되었는데, 여기서도 여전히 협의회적 친교 개념을 밝히는데 토의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협의회적 친교의 성서적 전거를 사도행전 15장에서 찾는데, 여기에서는 “가장 충만한 상호 교제와 신뢰 속에서, 여전히 충만한 교제 안에 있는 하나의 교회의 서로 다른 부분들이 서로 다른 길을 따라, 그리고 서로 다른 양식들로 하나의 세계선교를 추구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진다.(4) 선교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길과 양식이 상호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다양성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성만찬적 교제가 있다.

그렇다고 협의회적 친교가 교회 이해와 신앙고백과 선교 이해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협의회적 친교는 갈등 속에 있는 일치, 진리를 위한 각각의 역사적 형태 안에서만 살아지고, 믿어지고, 전해질 수 있다. 협의회적 친교는 교회의 근본적인 동등성을 전제한다. 협의회적 친교는 교회들이 서로를 사도적 신앙을 소유하고 고백하는 교회로 인정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한 주님의 같은 몸 안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지역교회들의 구성원들은 성만찬의 거행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협의회적 친교는 여러 교파들의 해당 대표들을 상호 받아들이는 것을 필요로 한다.(5)

협의회적 친교는 교회공동체성의 정치적, 사회적 모순들을 지각하지만 그것을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협의회적 친교는 능동적 관용을 요구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전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6) 이런 개방적인 친교를 ‘콘비벤츠’에서 확인하는 테오 순더마이어는 교회의 일치를 구조적이고, 기능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상호인정의 가능성으로,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 진리를 찾는데서 서로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배움 공동체’에서 ‘도움 공동체’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축제 공동체’로서의 새로운 사귐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일치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7)

연합 모델

연합이란 넓은 의미에서 두 개 이상의 교파가 연합하여 일국적(national) 교회 혹은 대륙적 교회(교구연합이나 회중연합과는 구분되는)로 조직되는 형태를 의미하며, 동일 교파 내(미국 연합감리교)에서 혹은 교파 전통이 다른 교회들 사이에서(1947년 성공회, 감리교, 개혁교회 및 회중교회를 통합한 남인도 교회) 이루어질 수 있다.

교회 연합이 모색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식민지 경험을 한 제3세계 교회들이 교파분열의 역사적 의미를 별로 지니지 못했다는 경험과 그리스도교 증언을 공동으로 할 필요성이 놓여 있다. 지금까지 교회 연합을 성취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 실무자들이 준비하여 2년마다 ‘에큐메니칼 리뷰’에 발표하는 ‘교회연합 협상조사’에 따르면, 과거 60개 이상의 교회단체를 대표하는 18개의 초교파적 연합교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탄생했으며, 이 중 몇 개 연합교회(예를 들면 벨기에 연합 개신교회와 영국 연합 개혁교회)는 한 번 이상의 연합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교회 연합이 가장 활발하게 추진된 시기는 일치를 ‘각 지역의 모든 교회의, 완전한 참여의 공동체’로 규정한 세계교회협의회 뉴델리 총회(1961년) 이후였다. 뉴델리 총회에서는 국제선교협의회가 세계교회협의회에 완전히 통합되었고, 4대 동유럽 정교회들, 즉 러시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불가리아 정교회, 폴란드 정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했다.(8) 1965년과 1972년 사이에는 잠비아, 자마이카, 그랜트케이맨, 마다가스카르, 에콰도르,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군도, 벨기에, 북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자이르, 영국 등에서 연합교회들이 탄생했다. 1986년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2개 국가에서 14개의 초교파적 연합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9)

이들 연합교회 모델의 특징이 있다면, 이들이 신앙과 직제, 선교, 자체 자원의 사용 문제에 관해 공통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기적 또는 구조적 연합을 이룬다는 것, 각 교회들이 독자적인 목회 패턴을 지닌 예배하는 신앙공동체라는 것(이 점에서 협의체적 친교나 연맹의 형식과 구분된다), 물려받은 교파 전통보다 현재 일치운동의 맥락에서 복음의 신학적 표현을 추구한다는 것, 연합은 목적의식적인 연합 행동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10) 이것은 연합을 성취한 교회들이 교회의 교파적 정체성보다는 연합체의 정체성을 더 중요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교회가 연합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다양한 교파적 분열이 ‘화해되고 화해를 가져오는 백성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인 지역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에 손상을 입힌다’는 신학적인 것도 있지만, ‘중복과 경쟁을 피함으로써 더욱 훌륭한 자원의 청지기가 될 수 있고, 이 자원을 집중화된 방식으로 사용하여 복음증거와 봉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것에도 있다.(11) 복음증거와 봉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교회 연합은 일반적으로 지역 단위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며, 또한 자신의 일치운동을 온전한 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의 한 단계로 인식한다. 그럼 의미에서 ‘연합하는’(uniting) 교회라고 불릴 수도 있다(Uniting Church Australia의 명칭 등).

연합을 추구하는 일치운동이 직면한 최대의 장애 요인은 정체의 문제(특히 교역 조정의 문제)와 교회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체성이란 역사와 함께 형성되어 왔고, 그래서 쉽게 해소되거나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현실의 문제를 보고 판단하고 대응하는 방식에서의 차이 역시 중요한 장애요인이다. 그렇다고 인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문제(예컨대 인종차별이나 빈곤의 문제 등)를 외면한 채, 교리적이고 구조적인 장벽을 극복하려는 일치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교회와 인류의 갱신 없는 연합은 분열의 죄를 계속하는 것일 뿐이라는 연합교회와 연합하는 교회들의 제5차 국제 협의회(포츠담, 1987년)의 선언은 주목되어야 한다.(12) 물론 일치를 위한 신학적 작업의 중요성이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조적인 상호작용 형식을 통한 신뢰와 약속의 강화가 적어도 신학적 합의만큼이나 일치의 모색에 긴요하다는 점도 경험을 통해 드러났다.(13)

이런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연합을 성취하기 위한 조처로서, 우선 일치가 단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단계적 방식의 하나로서 구상되는 것은 ‘계약’(회원 교회들의 상호존중, 교역의 상호인정 내지 조정, 정규적인 성찬의 나눔, 공동선교 등과 같은 협의 사항을 포함하는)의 체결이다. 또한 일치를 위한 논의가 공식적인 대표간의 협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계층과 모든 장소에 있는 교회 회원들의 공동의지와 행동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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