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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듣는 교회“이 일을 위하여 이 때에 왔다” 2022년 한국기독교 부활절 맞이 묵상집 ⑫
NCCK | 승인 2022.03.12 17:01
▲ 평등한 공동체라는 말에는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동등하게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경청하는 모습이 들어 있다. ⓒGetty Image

마태복음서 13: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평화에 관해 청년 십여 명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평화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공동체가 꼭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공동체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억압, 강요, 간섭을 떠오르게 한 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지배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공동체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평화로운 공동체는 나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모두의 목소리가 인정받으며 평등한 관 계가 만들어진 공동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공동체’로 인해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는 말에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와 청소년은 판단력이 부족한 보호의 대상이 되고 청년은 역량과 경험이 부족한 지원의 대상으로 쉽게 생각합니다. 모두 교회의 구성원이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결정된 것을 따르는 대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교회가 정말 사랑의 공동체가 되려면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를 존중하고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하고 그것을 듣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염려한다고 하면서 의견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건 모순입니다. 교회가 어린이, 청소년, 청년에게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는 곳이 아니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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