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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때문이다시련 중에 기뻐하라(야고보서 1:5-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3.13 01:00
▲ 시련 중에 기뻐할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를 살리진 하나님을 희망 때문이다. ⓒGetty Image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번 주일은 사순절 둘째 주일이자 청년 주일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청년이 없기 때문에 청년 주일로 지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말씀을 나누며 지금 시대의 청년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욱 좋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면 청년 주일의 의미는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간 성서 일과에 따른 본문은 전도서 5장 10-20절, 시편 22편 23-31절, 마가복음 10장 17-31절, 야고보서 1장 2-11절입니다. 야고보서를 제외한 모든 본문은 재물에 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본문은 믿음의 시련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야고보서의 본문이 다른 본문들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선정된 본문이 시련에 관련된 내용만 담고 있기에 명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이 시련의 원인은 사람의 욕심에 있다고 말합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는 유명한 말씀이 바로 시련의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 기간, 그 둘째 주일에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들은 세상의 욕심,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특히 마가복음 10장 29-31절은 자신의 재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쫓은 이들은 현실 속에서 박해를 받더라도 더 많은 것으로 채움 받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재물을 늘려주시기 위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헛된 욕망을 내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바라보는 한 주간이 되시길 바라며 이번 주일의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늘 저희는 야고보서에 나타난 말씀을 통해 이 땅에서의 시련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시련의 이유

일전에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야고보서 1장으로 가정예배용 말씀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중점적으로 보았던 부분은 13절에 나타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이 시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시험인가? 야고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야고보서는 모든 시험이 사람의 욕심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전지구적 감염병도 어쩌면 지나친 개발과 성장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모든 인류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잘 살고 싶어 합니다. 더 좋은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마음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인류는 발전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함께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까지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사람만이 잘 사는 세상, 더 좁게는 나만이 잘 사는 세상을 추구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 문제,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가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이 받을 복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기독교는 세계의 역사 속에 수많은 악행을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의 이런 마음, 자신만 잘 되면 된다는 마음을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욕심으로 인해 세상이 나빠질 뿐만 아니라 본인 자신도 시련에 들게 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한 시련은 자신을 힘들고 어렵게 만듭니다. 낙담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특히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으로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가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시험은 어떤 특정한 상황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박해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개인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전반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도 야고보서가 말하는 시련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사도 바울

본문의 시련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살펴볼 점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아마도 예수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격이었던 야고보가 기록한 편지로 보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이나 바울서신에 나타난 이야기들을 볼 때, 초대교회 시절에는 유대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율법을 중시했고 특히 할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선교가 중심이었던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들은 불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생각만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때로 이들은 직접적으로 사도 바울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에 저희는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살펴보았는데,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희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고린도 교회에 유입되었고, 이들로 인해 사도 바울이 배척당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고보서 2장 14절 이후에 나타나는 말씀은 야고보가 사도 바울과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행함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와 상반된 이야기가 사도 바울의 편지에 나타납니다. 로마서 3장 28절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4장으로 넘어가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야고보와 사도 바울이 행함과 믿음에 관해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전하면서 똑같이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다는 점은 둘 중 한 명이 상대방의 글을 봤거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상대방과 똑같은 예를 들면서 행함 또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와 사도 바울 둘 중 누가 누구의 글을 봤고, 누가 누구를 반박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본다면 둘이 대립 관계에 있었고,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예루살렘 회의와 화해의 분위기는 실제 상황과 다르다고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이 대립 관계에 있었다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항상 말씀드리다시피 사도 바울에게서 행함은 기본 사항입니다.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극히 당연하게 선을 행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반대했던 점은 할례와 같은 유대교 중심의 율법주의였습니다.

야고보의 경우에도 믿음이 불필요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야고보는 선을 행할 필요 없이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야고보서는 할례와 같은 율법 행위의 준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에 나타난 율법 준수나 행함은 이웃을 향한 선한 행위입니다.

야고보와 사도 바울의 강조점이 달랐기 때문에 이 둘이 대립하고 있는 듯이 보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같습니다. 선을 행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야고보와 사도 바울은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예루살렘 회의가 그들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서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양보할 부분은 양보하고 협력할 부분은 협력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맞춰나갔습니다.

두 사람의 생각을 통해 초대교회 내부에 있던 갈등과 대립의 모습도 볼 수 있지만, 갈등을 넘어서 화해로 나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 사상을 배격하고 서로 손잡고 협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시련

그래서인지 시련에 관한 생각도 두 사람이 비슷합니다. 지난주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근심의 방향성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근심할 때 선한 일이 이루어지고 기쁨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도 오직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시련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12절은 시련을 이겨낸 자에겐 하나님의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기뻐하라’라고 말합니다. 앞서 1절의 마지막 말은 ‘문안한다’, 카이레인(χαίρειν)으로 끝나는데, ‘문안하다’라는 헬라어 카이로(χαίρω)는 ‘기뻐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2절은 ‘파산 카란(Πᾶσαν χαρὰν)’, ‘모든 기쁨으로’로 시작됩니다. 카이레인과 카란이 연속으로 사용되면서 기쁨을 강조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시련, 시험을 엄청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험이나 시련,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가 기뻐하라고 말한 것은 시험이나 시련 자체가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기에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을 바꿔 말하면 희망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시련 중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희망을 실현하시는 분이시기에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를 더 강조합니다.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지금 시대는 참으로 어렵고 험난한 시대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문제도 있지만, 전쟁과 같은 국제적인 폭력의 소식도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건조해진 지구 환경으로 인해 산불로 인한 피해는 점점 심각해져 갑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의 삶은 내일을 보장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는 날은 늘어났지만, 늘어난 삶의 기간을 보장해줄 안전망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떨어졌을 때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밑에 놓여있는 것인지, 맨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삶을 지속해야만 합니다.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기에 희망이 없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오늘 야고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언제나 동행하십니다. 우리의 발밑에서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허리를 단단히 묶고 있는 안전장치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대선이 끝나고 어떤 분들은 다행이라고 말하고 어떤 분들은 나라가 망하겠구나 걱정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점은 야고보와 사도 바울이 했던 것처럼 화해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뽑았건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비록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가 서로를 배척하며 갈등을 심화시켜 나간다면 그것은 결국 모두가 힘들어지는 상황을 만들 뿐입니다.

또 지금 근심과 걱정 중에 계신다면 야고보서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의 시기는 분명히 극복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뜻에 따라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희망을 현실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믿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희망이 현실이 된다는 점을 믿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금 큰 기쁨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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