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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새 창성이가 내 곁으로 왔던 날내 삶의 감사 ⑴
박연숙 | 승인 2022.03.16 01:03
▲ 예인이를 양육하면서 감사하는 날들이 늘어간다는 연숙님 ⓒ박연숙 님 제공
지난 3월5일 인터뷰 기사 “제 아이의 장애는‘코넬리아 디 란지 증후군’이에요”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를 나눴던 박연숙 님께서 선천성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자녀 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 게재하게 되는 박연숙 님의 “내 삶의 감사” 연재는 자녀 분을 양육하면서 느꼈던 점을, 특히 ‘감사 나눔’이라는 느낌에서 풀어낸 글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옛날 같으면 벌써 죽었다.” 인큐베이터에서 두 달을 보내고 집으로 데리고 온 큰아들을 보면서 친정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맞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임신 8개월이 되었을 때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기 배에 물이 차 있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 병원의 의사는 그때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하면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아기의 상태에 대한 염려와 건강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뒤섞인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후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가 풀린 후 깨어나 보니 침대 옆에 서 있던 남편의 얼굴이 어두웠다.

“아기는 어때?”
“얼굴이 비대칭이고 한쪽이 찌그러져 있어.”

남편의 대답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아기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향했다. 여러 개의 줄을 달고 있었고, 황달 치료 때문에 눈에 안대를 하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생명을 대하는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생명은 생명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직접 보니 남편의 말을 듣고 상상했을 때보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아기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태어날 때 태변을 먹어 양쪽 뇌가 손상되었고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코넬리아 드 란지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들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발달 장애 증후군의 하나로 지적 장애, 성장 장애, 사지 기형 및 특징적인 안면 모양이 주 증상이라고 한다. 진단서에는 열 개가 넘는 병명이 적혀있었다. 뇌, 심장, 신장, 폐, 간, 췌장, 눈, 귀, 손, 발, 팔, 다리 등 멀쩡한 곳이 없었다. ‘만신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혼자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과 각종 검사로 2년 넘게 병원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인이의 환한 미소와 이모저모로 도움을 주신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의 삶에 관심을 두고 손잡아주고 함께 걸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는데 큰 사랑의 손길들이 나를 감쌌다. 덕분에 예인이를 돌보는 일이 한결 가벼웠다. 젊은 시절 인생의 무상함을 곱씹고 있었던 나에게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큰 위로가 되었다.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뭔가 큰일을 해야만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보고 한탄하고 있을 때 작은 선행도 의미가 있다는 시인의 노래가 살아갈 이유를 더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헐떡이는 작은 새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았고, 내 작은 새인 창성이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창성이가 재활치료를 받을 때 병원에서 만났던 한 아기 엄마는 시부모님이 장애를 가진 아기의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녀의 아픈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장애가 있건 없건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소중하다.

환우회의 카페에서 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다. 영상에 나오는 환우의 언니는 여섯 살 정도 됐는데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아프게 태어날 수도 있고 건강하게 태어날 수도 있잖아요. 동생은 아프게 태어난 것뿐이에요.”

엄마가 알려준 것이겠지만 그 말을 하는 아이가 존경스러웠다. 그래. 사람이 건강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살다가 내가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불평하기보다는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창성이를 맞이하고 난 후, 나는 웬만한 일에 좀처럼 불평하지 않는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세월이 흘러 얼마 전 창성이는 열네 살 생일을 맞이했다.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걸어 다니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하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운다. 콧줄로 우유를 주느라 진땀을 빼던 시간, 새벽에 경기를 종종해서 정신없이 울고불고했던 시간,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부러운 눈길을 뗄 수 없었던 시간, 아이 나이를 묻는 말에 답하기 주저했던 시간….

창성이와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이 나를 얼마나 성숙시켰는지. 옛날 같으면 벌써 죽었을 창성이의 환한 미소를 지금도 볼 수 있음이 감사하다.

박연숙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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