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좋은 목사가 되고 싶다

미술은 예술이다. 예술은 무엇이다. 색채는 무엇이고 선은 무엇이며 구성이나 조형은 어떤 것이다. 미술 선생들은 이러한 류의 문제들을 고교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강의를 하게 마련이다. 인상파의 그림이 갖는 특징은 무엇이고 표현파나 미래파가 갖는 특징은 무엇이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조리 있게 말하여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나름대로 미술 선생들은 설명해 주기도 한다.

동양화 내지 한국화는 서양화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이해시키려고 작품을 만드는 재료의 차이나 공간처리의 다른 점 등을 또한 미술 선생은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여느 미술 선생과는 아주 다른 분이 있었다.

평생 기억하는 미술 선생님, 그는 말이 없었지만...

학기 첫 시간에 "여러분 모든 사물을 사랑하는 눈으로 보라. 그냥 얼핏 얼핏 보지를 말고 뚫어지게 보라. 카메라의 렌즈처럼 보라. 그러나 사람의 눈은 기계가 아니다. 눈이 보는 것은 마음이 보는 것임을 항상 여기면서 어떤 사물이든지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아라."

비록 유창하지는 않으나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여 학생들이 귀를 기울이게 했다. 미술 선생은 그 이후로 학기가 다가도록 미술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저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게 했고 어쩔 수 없이 성적을 내야 하므로 한 학기 동안 세 장씩 그림을 그려서 제출하라고만 했다.

매달 한번씩은 산하로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다. 야외에 나가면 학생들에게 사생을 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산천을 보면서 놀고 싶으면 놀고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으면 그려 보라는 눈치만 주었다. 그리고 선생은 무심하게 우두커니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가만히 있었다.

매달 두 번씩은 미술특활실로 학생들을 데려가 손수 모델이 되어 주면서 연필이나 목탄으로 선생 당신을 그려 보라고 했다. 그것도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집을 보라고만 말했다. 그 미술선생은 여러 권의 화집을 골고루 마련해 두고 있었다. 화집의 작품 밑에 으레 기록되어 있는 작품의 이름이라든지 작가의 이름 등은 모조리 지워져 있었다. 작품들만 보라는 것이다. 한 권의 화집을 다 보고 나면 다음 같은 글귀를 선생이 써두고 있음을 학생들은 알게 된다.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다” 학생들은 왜 그러한 글귀를 적어 두었는지 알 길이 없다고 수군거리도 했다.

매달 한 번씩은 수채화를 그리게 했다. 정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색깔로 구성을 하고 싶으면 하고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붓질을 어떻게 하면 수채화 물감이 맑게 또는 칙칙하게 겹치는 것인가를 설명 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열심히 그리게만 했다.

첫 시간 몇 마디 말씀만 하고 내내 미소 짓는 얼굴 모습으로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하는 짓들을 보기만 했던 그 미술 선생은 한 학기가 그치자 자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 선생은 미술선생의 소질이 없나보다면서 스스로 사표를 쓰고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목사인 나는 선생노릇을 잘 하고 있을까

새로운 미술 선생이 왔었다. 말이 유창했고 아는 것들이 많았다. 인상파의 바네 모네 쇠라 피사로 등등을 구성진 입담으로 강의도 해주었다. 그리고는 인상파들의 작품이 실려 있는 화집을 학생들에게 돌려보게 하였다. 그러자 그림을 보는 학생들마다 아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새로 부임한 선생은 자신의 열강에 효과가 있었다고 여겼는지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떠나간 선생이 보여 주었던 화집에서 눈에 익었던 작품들이 누구의 것이며, 무슨 파의 것인가를 학생들 스스로 확인하게 되어 탄성을 질렀던 것이다. 뒤에 온 선생은 졸업할 때까지 미술을 가르쳤지만 한 학기 가르치다 떠나간 미술 선생을 학생들은 잊지 못했다. 미술을 보는 눈을 뜨게 하는 비밀을 알려주고 실천하게 했던 까닭이다. 그러한 까닭은 새로운 선생이 오고 나서야 학생들은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가끔 목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1980년부터 나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라는 이름으로 선생노릇을 했다. 선생이 될 만한 인격이나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신학교를 다니면서 어쩔 수없이 내 힘으로 학비를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나이의 절반을 교회울타리에서 지낸 셈이다. 2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러면 지금은 선생노릇을 훌륭하게 잘 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미숙하기 짝이 없다. 교인들에게 목사인 나를 본받으라고 할 만큼 신심이 깊지도 못하고,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도 못했다.

나의 내면을 갈고 닦는 일에도 불성실했다. 호수같이 맑고 고요한 심성을 지니지 못하고 언제나 마음상태가 세상 것으로 번잡하다. 조용히 내가 아는 바대로 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사람들에게 큰소리만 친다. 속이 빈듯하면 영락없이 목소리만 높이게 되어 있다.

낙제목사에게 하나님은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셨다

어느 날 저녁 예수께서 자신의 앞으로 있을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내다보시고 갑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돌연한 행동을 하셨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며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 하십니다"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다음에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는지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목회자의 삶이란 한마디로 "섬김의 삶"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아,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점수를 매긴다면 나는 낙제목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느님은 벌써 낙제를 시켜야 마땅할 테인데 자꾸 당신의 길을 가라고 하신다. 내가 결함과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하느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나는 다시 그리스도의 길을 간다.

다행히 하느님은 내게 좋은 사람들을 붙여 주셨다. 교인들이 얼마나 착한지 형편없는 나를 제법 괜찮은 목사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한 번도 내치지 않고 나를 붙잡아 둔다. 어디 그뿐이랴. 밥까지 먹여 준다.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나의 남은 인생은 목사노릇 제대로 하다 죽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을 열심히 행하다 가야 할 것이다. 아는 것이면 실천하라. 알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같다.

박철 pakchol@empal.com

트윗하기

박철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