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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분단의 짙은 어둠”(에베소서 2:11-1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3.15 00:17
▲ 「Sheep in paradise」 ⓒArt in the Christian Tradition, a project of the Vanderbilt Divinity Library, Nashville, Tenn.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며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며칠 전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1위와 2위 간에 가장 적은 표 차이로 당선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투표율을 보면 거의 반반에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혐오의 선거’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누가 좋아서 뽑았다기보다는 너무나 싫어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후보자를 뽑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효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았다는 결과도 함께 나왔습니다.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반응을 보면서 저는 내일이라도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마 다른 결과가 나왔어도 ‘다른 편’의 사람들로부터 같은 반응이 나왔으리라 확신합니다. 전 궁금했습니다. 왜 우리나라 선거는 늘 ‘어떤 편’으로 심각하게 나뉘어서 혐오하고 차별을 할까? 비난, 비방, 조롱, 심지어는 폭력까지 동원이 될까? ‘이편, 저편’으로 나누어 죽도록 싸울까?

성경이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살펴보았습니다.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되면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인들과 남유다의 유대인들 간에 벌어졌던 혐오와 차별, 갈등이 바로 북과 남으로 나뉜 후의 우리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스룹바벨과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에게 와서 말하였다. “앗시리아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을 때부터 이제까지, 우리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줄곧 제사를 드려 왔으니,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성전을 짓도록 하여 주시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그 밖에 이스라엘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오. 주 우리의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할 일이오.” 이 말을 들은 그 땅 백성은 성전 짓는 일을 방해하여, 유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렸다.”(에스라 4:1-4)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한복음 4:9)

방금 읽어드린 에스라 본문에서 대적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말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단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혐오, 차별, 갈등이라는 담을 쌓아 올렸습니다. 둘 간의 어두움은 더욱 짙어졌고, 이 짙은 어둠은 몇 대가 흘러도 여전히 서로 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대상을 혐오하고 살아야 하고, 증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평안을 누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온전한 사랑을 누리고 행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마음 한 켠에 늘 미움과 분노가 있는데 어떻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지역 주민분과 이야기 나누면서 북한과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북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하면서 “아무래도 북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겠죠?”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이 저의 질문을 들으시고서는 “아니, 북한과 남한이 전쟁할 때 북한 군인한테는 도움을 받고 오히려 남한 군인들이 못살게 굴었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그래, 워낙 서로 간의 폭격이 많이 이루어진 곳이니까, 누군가에게는 그랬을 수도 있겠다. 착한 북한 군인도 있고, 나쁜 남한 군인도 있었겠지.’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우리 고성의 역사를 모르고서 한 질문이라는 걸 근래에 지역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1945년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졌습니다. 이 당시에는 고성, 속초, 양양은 북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고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진 뒤에는 고성, 속초, 양양은 남한 땅이 되었습니다. 이 역사의 기록이 의미하는 바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을 아마 고성에서 나고 자란 성도님들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휴전선이 그어지고 남한 땅이 된 이후, 쉬쉬하게 된 또는 묻지 않게 된 것은 아버지가 또는 할아버지가 북한군이었는가 아니면 남한군이었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북한군이었거나 또는 북한군인들을 도왔던 사실이 밝혀지면 간첩, 빨갱이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오해 때문에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이 대대로 피해를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엄청난 상처와 과거에 대한 침묵, 서로 간의 차별이 우리 고성 땅에서 이루어졌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분단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단으로 인한 트라우마, 정신적인 상처가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분단병, 이건 개인이 당하는 개인적인 병이 아니라 우리 민족 7천만이 당하는 민족 화병입니다. 한반도 안에 사는 사람만 이 병을 앓는 것이 아닙니다. 해외에 사는 일천만의 동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갈라진 땅에 선 예수>

분단 트라우마와 관련된 <갈라진 마음들>이라는 책의 내용도 소개해 드립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불쑥불쑥 등장하는 분단이라는 폭력에 허우적거린다. 태극기를 들고 나라 걱정을 하는 어르신부터, 북조선을 한국 경제의 ‘먹거리’로 해석하는 회사원들, 젊은 시절 기억을 반추하며 통일 문제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는 중장년층, 북조선에 관심 없다는 청년들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분단 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과잉된 혐오와 적대감으로, 아니면 무관심과 무시로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게 나름의 대응방식을 체화하고 있다. 분단은 그렇게 남북 모두의 삶을 비틀어버렸다.”

군대에 가면 주적은 북한이라고 가르칩니다. 언제는 한 형제자매라면서 또 언제는 주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정신 분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교회는 분단의 영향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단 트라우마로 인한 교회의 문제점들을 짚은 책도 최근에 출판되었습니다. <한국교회 분단과 분열의 트라우마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책의 한 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견디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월남하여 교회를 세우고, 경제성장과 함께 양적, 영적으로 성장과 부흥을 이룬 한국교회의 성공 신화들은 교회 안에서 수없이 회자되었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출애굽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부흥을 이룬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특별한 선민이자 핍박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또 다른 표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분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상처받은 그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채 원수가 ‘무너지고 징벌받도록’ 기도하며 그들을 악마화, 비인간화하였다.

그들의 회복, 혹은 그들과 자신들 사이의 용서, 화해와 같은 것들을 놓고 기도하거나 행동하려는 노력 역시 부족했다. 자신들을 핍박한 공산주의자들은 절대악이며 변화될 수 없는 존재로 여겼고, 이는 자연스럽게 어떠한 대화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노력도 기울일 수 없도록 하였다.

그들은 무너지고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로, 결코 교류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 되었다. 이는 의심과 불신, 적대감이 증폭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자아와 피아의 경계를 강화시키며 교회공동체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는 데 기여했다. 희생과 가해라는 언어는 인간의 주체적인 활동을 약화시키고 희생자를 무력하게 만들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이야기 안에 그들을 가두어 놓는 역설적이며 파괴적인 경향을 띤다.

한국교회의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는 상호교류를 통한 이해와 인정, 용서와 화해, 과거의 상처로부터 회복하고 건강한 공동체와 사회, 미래를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들은 그 이전 세대들로부터 고통의 상흔과 해결되지 않은 분노, 적대감, 공포 등을 물려받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역사 속의 공과 실을 바라보도록 교육받을 기회를 잃었다.”

분단의 트라우마는 전 사회, 가정 그리고 교회 안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혐오, 차별, 용서하지 못 할 적을 우리 안에서 계속 재생산했습니다. 

상처로 인해 파탄이 나버린 가족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이렇게 상처 받고 나뉘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연구하다가 그 꼭대기에 남과 북의 ‘분단’의 문제가 있음을 알고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단으로 파생된 이런 삶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런 결과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에서는 분단 된 두 나라가 다시 하나 되는 날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써라. 막대기를 또 하나 가져다가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써라. 그리고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게, 그 막대기를 서로 연결시켜라. 그것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네 민족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겠느냐?’ 하면, 너는 그들에게 말해 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에브라임의 손 안에 있는 요셉과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지파의 막대기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유다의 막대기를 연결시켜서, 그 둘을 한 막대기로 만들겠다.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하셨다고 하여라.”(에스겔 37:15-19)

분단되었던 두 나라가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었습니다. 나뉜 것이 하나가 될 때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되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어지게 되어 우리가 온전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분단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그 막힌 담을 허물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전체를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12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17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분단으로 인해 벌어졌던 유대인의 사마리아인을 향한 차별이 이제는 사마리아인을 넘어 유대인들은 이 차별을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확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과 같이 신약에서 분단되고, 나뉜 것들을 예수님은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보여주셨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단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하나님과 인간의 하나 됨보다 더 쉬운 과제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몸으로 허물려 할 때 분단 트라우마 극복이 가능해집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분단 된 이 땅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50대 50으로 분열된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선출된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는 ‘화합과 통합’이라고 합니다. 화합과 통합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몸으로 허물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분단 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도록, 이 분단의 결과로 이루어진 짙은 어두움,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나라가 되도록, 고성에서 가정에서 이 분단의 상처 여파로 지속되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 또 어떻게 행해야 할지 길이 보이리라 믿습니다. 기도와 행함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하나 되기 위해 내 몸으로 담을 허물어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이루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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