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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발을 씻기셨다, 왜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3.20 15:14
▲ Judas seen kissing Jesus, betraying him to soldiers ⓒGetty Images
유월절이 가깝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그의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3,1)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이제 (마지막) 유월절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유월절 양의 희생과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굳이 이 날이 언급된 이유는 예수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유월절 양은 그 피로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지나가게 하여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고 그 살로 그들을 움직이고 해방의 길을 갈 수 있게 했습니다. 유월절 양의 그림자가 예수의 길에 길게 드리웠습니다. 그 의미는 변함이 없어도 예수께서 유월절 양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아는 대로 가롯 유다에게서 시작됩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회자하든 예수께서는 그를 알고 계셨고 그를 말리지 않습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예수를 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된 것도 사탄 때문인데,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빨리 하라고 하심으로써 사탄의 계획을 승인하십니다.

요한복음은 사탄이 예수를 시험했던 것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데, 사탄은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자 예수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유다를 이용하는 사탄에게 네 할 일을 빨리 하라고 ‘명령’하십니다(27절).

상황이 이러함을 아시는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그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란 무슨 말인지요? 목숨을 내주시기까지라고 즉각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 해도 이 구절로 시작되는 본문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줍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사건이 바로 이어서 보도되는데, 이 사건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자리에는 유다도 있습니다. 차례차례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께서 유다 차례가 되었을 때 어떠한 마음이었을까요? 유다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게 하는 자임을 아셨기 때문일까요? 그는 유다의 발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팔아넘기기로 한 예수께서 그의 발을 씻어주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너무 늦었다고 할까요? 멈추어야 하나 했을까요? 기묘한 긴장감이 예수와 유다 사이에 흘렀을 것 같습니다. 유다 역시 그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일까요? 침묵 가운데 유다의 발까지 씻어주신 것이 예수께서 그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모습일까요?

유다가 그의 사람들과 끝까지 갈 수 없고 결국 그의 사람들에 속하지 않게 될 그 순간이 오기까지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신 것을 그에게 다 하셨습니다. 이것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의 예라면, 끝까지 그의 사람들에 속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일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과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오늘이기를. 지친 발을 닦아주시며 새힘으로 계속 길을 가게 하시는 주님과 함께 길을 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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