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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가르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말씀을 이용하는 신앙(마태복음 23:2-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3.20 15:16
▲ 저 사람이 말하기 때문에 싫다는 것은 자칫 말씀 자체를 버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Getty Image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번 주일은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라 명하셨는지,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되새기며, 이를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간 성서일과에 따른 말씀은 전도서 9장 11-18절, 시편 19편, 마태복음 23장 1-12절, 고린도후서 11장 19-30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지혜에 관한 내용입니다. 전도서는 지혜가 우매함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시편 19편은 율법이 전해주는 지혜를 가지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말씀의 흐름은 약간 변합니다. 마태복음은 머리에 있는 지혜가 아닌 실천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혜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은 하나님 안에서 약함이 아니기에 이를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전체적인 말씀의 흐름을 정리해본다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참된 지혜를 깨우치고, 그 지혜를 행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이를 자랑하진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로 강하게 하시며, 미련해 보이는 방식으로도 놀라운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는 이 본문의 말씀들 중에서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어려운 말씀은 아니기 때문에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말은 따르되 행태는 경계하라

본문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를 보았을 때, 말씀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아닌 유대-로마 전쟁 이후로 보입니다. 유대-로마 전쟁으로 성전이 파괴된 AD 70년경 이후, 사두개인이 사라진 자리를 바리새인들이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본문에 나타난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복음서가 창작한 말씀이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던 대상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마태복음은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의 상황에 맞춰 비판의 대상을 변경시켜놓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본문 말씀이 특정 대상을 비판하기 위한 말씀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이 비판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고,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시기를 살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비판의 대상을 바꿔 놓아도 말씀의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대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바꾼 것입니다.

본문은 특정 시대를 살았던 특정 집단을 비판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리새인들에게 악감정을 품을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느 시대를 살고 있건 어느 집단에 속해 있건 그들이 보이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한 비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비판받고 있는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의 이야기인 듯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말과 그 행동에 따르는 비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하는 말은 듣고, 이를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했던 말은 율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 바리새인들이 이야기하는 율법에 잘못된 점이 있음을 지적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율법준수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판단은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저희가 레위기 14장에 나타난 ‘집에 생긴 곰팡이에 대처하는 법’에 따라 벽에 곰팡이가 생겼을 때, 며칠씩 집을 비우고, 집 벽을 허물 이유는 없습니다. 벽에 곰팡이가 생겼으면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면 됩니다.

이런 율법의 해석과 적용의 영역에서는 충분히 토론과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입으로만 외치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외치는 율법은 사람들에게 짐을 지워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자신들은 이를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하십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 시대에도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정치인들의 모습 속에서도 볼 수 있고,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에게 무리한 행동을 강요합니다. 그러면서 그 무리한 행동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겉으로만 정의로워 보이는 거짓일 뿐이고,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전가하고 누군가가 겪게 되는 어려움은 특정한 이들에게 이익을 남기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들의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늘려갑니다.

몇몇 언론의 행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대선 전까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외쳐오던 언론들이 대선 직후 ‘부동산 상승 기대감에 부풀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부동산 문제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의를 가장한 선동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왔던 사람들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들의 참모습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있는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한 이야기를 가장한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말을 완전히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올바름의 포장지로 거짓을 말하고 있기에 안에 들어있는 거짓은 경계해야 하지만, 포장지 자체는 올바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이단에 관해 연구하는 한 신학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이단을 규정하면서 그들의 교리 전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교회의 올바른 모습까지도 부정하는 꼴이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올바른 교리를 약간만 비틀어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집단입니다. 그들의 비틀어놓은 부분은 지적해야 하지만, 그들의 말 전체를 부정하면 때로, 바른 신앙까지도 저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들의 행태를 본받지는 말고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서 거짓된 이야기들,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는 이야기들은 제거하고 그 안에서 참된 말들은 받아들이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이용한 신앙

말과 행동을 구분하고 주의하며, 참된 말씀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두 번째 말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본문에서 말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5절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로 시작됩니다. 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어떤 행위를 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행위 자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아마도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앞선 이야기와 5절 이하의 이야기는 서로 모순됩니다. 4절까지의 이야기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들로 나타났는데, 5절 이하에서는 율법준수를 비롯한 어떤 행위를 하는 이들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대상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전체 집단이 아닙니다.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이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전가하는 이들을 비판하신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비판받는 대상도 일부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거나 올바른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합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원하고 선생님이라 불리길 원하고 높은 자리를 원합니다.

마태복음이 이 두 이야기를 연결시킨 이유는 전자와 후자의 사람들이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자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이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면, 후자의 사람들도 결국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남들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을 통해 자기 자신이 선하게 변화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또 남들을 선한 길로 이끌려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자신의 행동을 보는 사람들을 자신을 높이려는 대상으로 이용합니다. 전자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율법 짊어지게 하고, 후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고 칭송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호구도, 우리를 높여줄 도구도 아닙니다.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들입니다.

8절 이후에 나타난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연이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을 향해 저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경고하십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는 어떤 신앙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사람들의 모습처럼 살아가는 분들은 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기 위해 실천하거나,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기 위해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내 유익만을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말했던 적은 없는지, 내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을 전하며 실천하는 가운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사명보다 남들 앞에서 돋보려고 말씀을 이용한 일은 없는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은 먼저 우리 자신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만들기 위해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며, 우리는 이들과 함께 구원의 길을 걷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모습이 조금이라도 우리 안에 자리 잡지 않기를 경계하면서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받들고 그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 땅에서는 작고 낮은 모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시고 귀히 쓰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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