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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감사는 은혜를 여는 문”(시편 100:3-5)
이상중 목사 | 승인 2022.03.22 14:59
▲ 내 손에 무엇인가 있기에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평안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택하며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눈을 감은 채로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기도입니다.

새벽 3:30 정도에 하는 이 기도는 온 하루 동안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천 번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하고, 어떤 상황에서 ‘그렇지, 내가 보고, 겪고 싶은 상황은 이게 아니지.’ 하며 다시 감사와 사랑을 선택하게 합니다.

순간순간 이런 고백과 선택이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삶과,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성령께서 들으시고 기꺼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함께해 주십니다.

특별히 성도님들과 함께 사순절을 통해 매일 감사일기를 쓸 결심을 하게 된 다음부터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람과 상황과 물건에 대해서까지도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욱 풍성한 감사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고백에 대해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쓸수록 힘이 나고 하루가 행복해지는 마법의 한 줄’, ‘하루 한 줄로 행운과 기적을 끌어당기다.’ 표현이 그럴듯하지 않나요?

이런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찾아온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인가요? 행복한 하루인가요, 불안하게 출발한 괴로운 하루인가요? 아니면 매일 똑같은 하루를 그저 습관처럼 보내고 있나요? 저의 하루는 단언컨대 행운이 가득한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확신하느냐고요? 제가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행운이라든가 행복 같은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일상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고 혀를 끌끌 차며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행운을 선택하는 순간, 저는 행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꽉 움켜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무리 작고 사소한 행운이 빠르게 스쳐가도 저는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감사함과 행운을 선택합니다.”

아무도 추천하지 않은 이 책을 책의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읽어드린 것처럼 저자가 매일 아침 하는 의식이 제가 매일 일어나자마자 하는 기도와 같았고, 이런 의식이 하루의 삶을 다르게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사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대한 방향성에 관해서는 이 책과 말씀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감사는 전적으로 나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제사이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더욱 풍성한 삶으로 안내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셨나요? 매일 한 번 감사의 고백을 해보셨나요? 그 감사의 고백이 성도님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경험하고 계신가요? 성경의 말씀은 저와 성도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말씀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계속해서 말씀에 대한 순종, 즉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역대하 14:1-6의 말씀을 보시면, “1 아비야가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다윗 성'에 장사하였고, 그의 아들 아사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아사가 다스리던 십 년 동안은 나라가 조용하였다. 2 아사는 주 그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 올바른 일을 하였다.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석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부수었다. 4 그는 또 유다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서, 주 조상들의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실천하게 하였으며, 5 또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 버렸다. 그의 통치 아래 나라는 조용하였다. 6 주님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나라가 조용하였고, 여러 해 동안 아무도 그에게 싸움을 걸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사는 유다 지방에 요새 성읍들을 만들 수 있었다.”

시편 128:1-6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 2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네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의 묘목과도 같다. 4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5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평생토록 너는, 예루살렘이 받은 은총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6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역대하에서 아사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일, 좋은 일을 했기에 다스리던 10년 동안 평안했다고 기록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나라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시편 128편에서는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평안을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3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내 말대로 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안다면 당연히 그 말씀대로 따라 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사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3절은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들은 자신의 방식과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삶을 감사로 고백하게 됩니다.

신약의 말씀은 이런 순종에 대해 어떻게 전하고 있을끼요? 야고보서 1:22-25의 말씀입니다. “22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습니다.” 네, 이것은 100% 맞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행하는 성도는 복과 은혜를 반드시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에 관해 성경은 단순하고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가 왜 중요할까요? 감사가 우리의 삶에 임하게 될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성실하심을 경험하게 될 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구절입니다. “4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거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 대대에 미친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주님의 은혜를 덧입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6-7의 말씀을 보면, 감사를 통해 문을 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오늘 본문과 동일한 전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립보서에 ‘그리하면’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면, 그리하면 주님의 선하시고, 그의 인자하시고,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친다고 시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중요합니다. 매우 실제적이기도 합니다. 그저 입술로 또는 마음으로 고백할 뿐이지만 이 고백이 가지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가 감사로 문을 열면 우리에게 펼쳐지는데,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손해 볼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도님들께 전화 드리거나, 잠시라도 만나게 되면 요즘 계속해서 드리는 질문이 “감사일기를 기록하시나요? 감사의 고백을 하시나요?”입니다. 절반의 성도님이 적고 계시고, 절반의 성도님이 적지 않고 계십니다. 꾸준히 하신 성도님 가운데서는 감사로 인해 어떤 삶의 변화까지 왔는지도 말씀해 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감사는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인정하는 성도는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길만이 유일하게 따라야 할 삶의 길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삶을 통해 계속해서 감사를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감사는 더 풍성한 은혜와 복을 경험할 수 있는 문을 열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44에서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습니다. 땅을 파는 사람만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하늘나라를 발견하거나 경험하지 못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께 매일 감사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매일 감사일기를 기록하십시오. 감사일기는 사순절에 집중적으로 안내하기는 하겠지만, 사순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다시 감사의 제단을 하나님께 쌓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릴 때, 감사로 은혜의 문을 열 때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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