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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 조선인의 삶이 녹아 들어 있다드라마 「파친코」 보기
권요섭 선교사(일본) | 승인 2022.03.26 16:34
▲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인 「파친코」 ⓒ애플TV

소설 『파친코 1, 2』

일제 시대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소설 『파친코』는 오사카를 주무대로 펼쳐지고 일본의 여러 지역과 미국에까지 유학 가는 장면도 나오며 마지막 오사카의 무덤에서 끝이 난다. 기간은 1910년부터 시작하여 1989년까지 80여 년간 자이니치(在日) 조선인 3대(영도의 어머니가 오사카로 건너오니 4대로 볼 수도)가 살아온 장편 역사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영도에서 하숙집 딸로 태어나 살던 선자와 평양에서 내려온 백이삭이 결혼해 형 요셉이 살고 있던 오사카로 건너가 일제 시대의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파란만장하고도 슬픈 드라마이다. 특히 자이니치 조선인 3대가 오사카와 도쿄, 요코하마, 나가노 등에서 살며 겪게 되는 차별과 설움과 갈등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자이니치 조선인이 받은 차별

자이니치 조선인에 관한 몇 권의 책과 소문으로만 알았던 것들을 이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운영되는 파친코의 상당수를 자이니치들이 경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저 소문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지금도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파친코에, 직원으로 시작해서 사장으로 경영하기까지의, 자이니치 조선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타국 땅에서의 환경과 그 시대의 이방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음을 알게 되어 공감할 수 있었다. 일본인은  타국에 사는 자이니치 조선인을 ‘조센징’이라며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차별했으며 지금도 그런 차별은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등장인물 일본인 하나라는 여성이 자이니치 조선인 3세 백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 넌 언제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 거라고. 절대 일본인이 되지 못해.”

일본인은 외국인을 ‘가이진(外人)’이라 표현한다. 일본이라는 섬의 바깥사람이라는 뜻으로 철저히 구별하고 있다. 구별만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차별로 까지 이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자이니치 조선인 2세 백모자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하고 돈을 벌었어. 내가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날 존경할 거라고 생각했지.”

오사카에서 태어난 백모자수가 아무리 정직하게 일하여 파친코를 운영하는 사장까지 되어도 여전히 무시당하고 차별당한 것을 아들에게 고백하는 대사이다. 저자 이민진도 감사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슬프게도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과 일부나마 조선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한 역사는 길고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조선계라는 사실을 절대 밝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체 일본은 언제부터 차별하는 문화를 갖게 되었을까? 이 차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내내 궁금해 하며 읽었다.

자이니치 조선인의 정체성

오사카로 건너 간 1세대에게 조국은 있었다. 그 이후로 조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죽어 묻혀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2세대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국적이 조선과 남한과 북한이라고 서류상 되어 있지만 정녕 조국은 없었다. 조국이 없이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차별이 없이 공평한 나라로 동경하는 곳이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뉴욕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들을 인터내셔널 스쿨에 다니게 하고 결국 뉴욕의 콜롬비아대학에 유학을 보내 경제학을 전공시킨다. 다시 일본을 돌아와 좋은 직장에 취업되어 일했으나 부당해고 당하는 것도 결국 자이니치 조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노아는 와세다대학을 중퇴해서 가족과 연락을 끊고 일본 여인과 결혼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다가 몇 년만에 찾아온 어머니를 만나고 헤어진 직후 자살을 해버린다. 이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나는 누구인가? 나의 부모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고 묻는 정체성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 권요셉 선교사

신사참배와 순교

평양에서 부산을 거쳐 오사카로 건너온 백이삭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로 감옥에 갇혀 2년간 옥고를 치루고 거의 죽기 직전에 풀려나 집에서 죽게 된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으로 목회를 하던 류 목사는 가장 가까운 신사에서 거행되는 신사참배에 참석하며, 신도들에게 더 위대한 선을 위해서 신사참배에 참석하라고 했다.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많은 신도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내용이 떠올랐다. 교우들의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했던 그들의 결단을 무턱대고 배교라고 정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재일대한기독교회 목사는 물론 모든 교우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일본에서 한인 목회를 하든 일본인 목회를 하든 목사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이 들어 강추한다.

글쓴이 권요셉 선교사는 전북대 사학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 Ph.D 과정 중에 있다. 2002년 일본선교사로 파송받아 2006년 Keisen Christ Church Kodaira Chapel 개척하여 목회 중이다. 미우라아야코독서회 운영위원이며 한국담당이다. 또한 인터서브재팬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권요섭 선교사(일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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