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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의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형이다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거리로 나온 장애인들의 요구
정리연 | 승인 2022.03.28 15:16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오랜 숙원인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정리연

23일 밤, 편집장님의 호출(그냥 맘 편히 둘러보라는)로 이미 잡혀 있던 일정을 부분 조정하고 참여한 3월 2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1박 2일간 기자회견, 행진, 투쟁결의 대회, 전국장애인대회, 420공동투쟁단 출범식,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 등이 계획되어 있었다. 합동추모제 이후에는 함께 노숙 농성을 한다는 일정이다. 마음 같아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고 싶었지만, 사정 상 가능한 일정만 참여하기로 했다(그냥 연대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참여한 것이어서 세세한 내용도,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몰라서 이름을 기재하지도 못했다. 이해해주시기를)

목적지는 여의도 ‘이룸센터’. 가본 적이 없어서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 여러 번 경로를 확인해봤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국회의사당역에서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검색해보면서 예상보다 늦어져서 마음이 급해졌다. 동작역에서 9호선을 갈아타는데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였다.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해 이룸센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따라 가보니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장애인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마주하니 눈물이 났다. 사회를 향한 안타까움과 분노, 차량을 통제하고 시위하면 욕먹을 줄 알면서도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 등이 뒤섞였다.

그동안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미안한

살아오면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동네도, 학교도, 지역사회에서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장애인들을 모두 시설로 보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오늘 여의도 대로를 꽉 메운 장애인들이 전국에서 모였다고는 하지만, 오지 못한 이들이 몇 백 배는 될 거다. 그들이 모두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면 하루에도 여러 명을 마주했을 것이고, 그들이 마주치는 불편을 더 일찍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리가 가장 크게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가한 시위자들은 각 지역 깃발이나 구호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카드들을 들고 있었다.

▲ 유일하게 최저임금적용이 제외되어 있는 장애인들의 노동. 노동계에서도 함께 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나 국회는 해결의지가 없다. ⓒ정리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장애인 권리 보장법 제정하라”, “국회는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하라”,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제정하라”, “장애등급제 폐지”, “이것도 노동이다-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확대하라” 등이 눈에 보였다. 이 중에서 “이것도 노동이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잘 안 갔는데 나중에 장애인들의 연대 발언을 듣고 알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저는 맞춤형 일자리 공공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문화 공연 활동도 하고 있는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춥니다. 투쟁도 합니다. 계속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이는 “비장애인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데 왜 장애인들은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능력제로 임금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의 노동도 노동입니다!” 아, 그렇구나. 이런 뜻이었구나. 비장애인은 한 시간에 열 개를 만들어도 다섯 개를 만들어도 최저임금을 받는데, 장애인은 만든 개수에 따라서 임금을 받는구나. 이런!

통제된 곳에서의 해방감

장애인들의 대열에 합류해서 계속 걸었다. 행렬이 멈춰서 계속 구호를 외치면서 행사를 진행하니 담당 경찰서장이 방송을 했다. 행진하겠다고 해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데, 왜 진행하지 않고 계속 멈춰 있느냐, 길이 막혀서 교통이 마비되었고 주변 시민들이 불편해한다, 어서 행진을 마무리해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행자는 연이어서 지역에서 모인 동지들을 앞으로 불러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었다.

평소에는 쉴새없이 차들이(국회의원들이 탄 차도 있겠지) 이동했을 국회대로를 오늘은 장애인들이 점령하고 행진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노래 부르며 춤도 춘다. 구호를 외치며 소리도 지른다. 투쟁! 하면서 주먹을 높이 올린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 “너 여기에 왜 왔니?”라는 말 듣지 않아도 되는 곳, 누군가 느리고 어눌하게 말하거나 움직여도 끝까지 기다려 주는 곳, 불구의 몸을 불구로 바라보지 않는 곳, 여기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아닌가? 양옆에서는 의경들이 차량과 장애인들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장애인들은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덩달아 나까지 막 흥분이 되면서 통쾌해졌다. 지금, 여기는 파라다이스가 분명해!

▲ 국회의사당 앞 국회대로를 점령하고 장애인들의 의사를 요구하고 있다. ⓒ정리연

다 계획이 있구나

오후 3시에 있을 전국장애인 부모연대 기자회견에 참석하려고 다시 지하철을 타려고 역사로 내려갔다.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근처가 소란스러웠다. 가서 보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 네 명이 열차에 승차하고 있었다.

근무 직원: 왜 꼭 한 곳에서만 타는 겁니까?
맨 앞에 있던 장애인: 우리도 지하철 탈 수 있잖아요!
근무 직원: 아니, 타지 말라는 게 아니라, 문이 여러 개니까 나눠서 타도 되잖아요. 이렇게 한 군데서만 타니까 열차가 지연 되잖아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직원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생각이 없었겠나? 일부러 한 줄로 서서 하나의 문으로만 승차한 거겠지.

‘앗싸! 계획이 있으시군요!’ 기쁜 마음으로 응원했다.

청와대 앞 효자치안센터로 이동

경복궁역 출구로 나가니 입구에서부터 의경들이 서 있었다. 차별은 뭔가, 어떤 게 차별인가, 혹시 나도 그러한 무리 안에 서 있지는 않았었는가, 혼자 20여 분을 걷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솔직하게 답변하기 쉽지 않았다.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으로 위치를 확인하면서 갔는데, 어느 정도 가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모인 이들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도 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는데 여의도 쪽에 있던 장애인들이 효자동으로 계속 이동하는 중이어서 숫자는 계속 늘고 있었다.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가족들에게 전가해 발생하고 있는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은 비극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정리연

‘가족이잖아’라는 말로 다 위로되지 않는 현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매스컴을 통해서 접했었다. 또한 죽음까지는 가지 않았더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사연을 접할 때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출산할 때까지의 인내와 불편함,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상황들 그리고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때 온몸이 어긋나도록 힘든 고통의 시간, 이러한 것들을 견뎌내면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품에 안긴 아이를 보는 순간 그 모든 게 눈 녹듯이 사라진다. 모든 엄마가 그렇다. 그런데 그토록 처참하게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엄마’에게 짐이었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대체 현실이 어떻길래! 알고 싶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극단적 선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 복지체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자녀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암담한 미래를 견디지 못해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거나, 자녀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 이와 관련한 정책을 세워줄까? 에휴….

우리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2022년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과 제18회 전국장애인대회’가 있었다. 공동투쟁단 대표들과 지역 참여자들의 연대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 등 기본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 가족과 형제, 이웃이 있는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노동하고, 교육받고 살아갈 권리를 20년째 외치지만 그 당연한 권리를 아직도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사회”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 기본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장애인평생교육법·특수교육법 제·개정과 2023년도 권리예산반영”을 촉구했다. 함께 외쳤다. 투쟁!!!

문화 노동하는 분의 현란한 춤사위와 노래도 들었다. 전남에서 온 장애인 대표가 사회를 맡았는데 어찌나 재미나게 잘하시던지! 계속 있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미 5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다음 일정을 위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빠져나오면서 한쪽에 마련된 굿즈 판매점을 찾았다. 내가 입을 티셔츠 한 장과 선물도 할 겸 손수건은 여러 장 샀다. 물건도 좋았지만, 조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경복궁역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하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지하철이 안 오고 있어. 장애인 시위 때문에 그렇다고 하네.”
“오 역시! 대단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건 혁명이야. 그렇지? 혁명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지인에게 물었다.
“혁명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 유토피아는 현재는 없는 세계를 그리는 것,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그 세계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라는 답변이 왔다.

그렇다. 나는 오늘 수많은 혁명가를 만났다. 그들이 부르는 혁명의 노래를 들었고 혁명의 몸짓을 보았다. 더디고 느려도 그들의 외침이 귓가에 생생하다. 투쟁! 또 투쟁!!!

▲ 장애인들의 요구는 어쩌면 간단하다. “차별 없는 세상”이다. ⓒ정리연

가만히 있으면 알아주지 않아

다양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비장애인이 모였다. 그들은 함께 생활한다. 팔다리에 힘이 없어서 풀썩 넘어지면서도 야구를 한다. 발음이 잘되지 않아서 어눌하지만,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춤을 추면서 깔깔거린다. 어떤 날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연애도 하고 키스도 한다. 토론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스스럼없고 거리낌 없다. 그냥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언제나 ‘바깥’ 인물로 여겨지던 장애인들이 사회와 집을 떠난 ‘바깥’에서 억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가는 모습들이 흑백 필름으로 재생된다.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2020, 미국) 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셸 오바마와 버락 오바마가 함께 만든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이 제작한 작품으로 1971년에 캠프에 참여했던 십 대 장애인들의 당시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캠프(캠프 제네드)는 또래와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다른 시선을 받던 이들이 장애인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이고 말해도 되는 곳, 누군가의 지나친 간섭도 없고 스스로 결정대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캠프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가야 하는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존재로 여겨주지 않는 캠프 ‘바깥’ 세상에서 그들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저 장애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캠프를 통해 이들은 더는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장애인 활동가로 널리 알려진 주디 휴먼(당시 지도 교사로 활동, 최근에 자서전 『나는, 휴먼』을 출간했다)의 이끎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장애인 정치 단체 ‘디스에이블드 인 액션’ 대표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1972년 재활법 중 섹션 504는 차별 금지 조항이었는데, 닉슨 대통령이 발안을 거절했다. 주디와 장애인들은 뉴욕시 한복판에서 시위했다. 사거리 가운데에서 휠체어를 타고 빙 둘렀다. 그러자 어느 곳의 차들도 움직이지 못했고 교통이 마비되었다. 1973년에는 워싱턴 DC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닉슨은 서명하였고 섹션 504는 통과되었다. 그러나 그 후 4년 동안 집행이 이루어진 게 없었다.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법안을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조지프 칼리파노 보좌관이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이 되면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무효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디와 동지들은 시위로 칼리파노를 압박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건교육복지부 샌프란시스코 지사 건물을 점거하고 건물 안에서 생활하면서 농성하기에 이른다. ‘섹션 504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의 시작이었다.

캠프 제네드가 없었다면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과 미국 장애법도 없었을 것이다. 이 운동은 한 달여의 점거 농성 끝에 법안 실행 통과의 결과를 도출시켰다. 비장애인 공동체들의 활발한 도움과 장애인 공동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안이 통과되고 실행되어 실질적으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기본 ‘인식’, ‘관습’,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수십 년간 투쟁해서 더 나은 세상이 된 건 맞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이다.

문턱을 넘어서고, 없애고

이번에 전장연 시위에 다녀온 후, 전에 봤던 이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부분부분 두 사연이 겹쳐지는 장면이 많았다. <크립 캠프>에서 장애인들이 깨닫고 직접 몸으로 행동하고 부딪치면서 한 걸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짐으로써 존재를 드러냈다. 끝이 보이지 않았고, 실패할 거라고 손가락질당했지만, 그들은 견뎠다. 혐오와 차별로 더 어둡고 깊은 곳으로 숨어야 했던 이들이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서 목소리를 내었다. 이게 혁명이 아니라면, 뭘까?

이젠,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크립 캠프> 시즌2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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