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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로 소중하게 대하는 사회를 꿈꾸며내 삶의 감사 ⑶
박연숙 | 승인 2022.03.30 15:48
▲ 장애의 유무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존중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Getty Image

결혼한 지 삼 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다. 결혼 후 남편은 아침마다 함께 기도할 때 아기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마흔을 넘긴 나이를 생각해서 ‘주시면 낳고, 안 주시면 못 낳고’ 하며 담담한 마음으로 신랑의 열정적인 기도에 맨송맨송한 ‘아멘’을 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아기가 생겼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던지. 내 안에 한 생명, 내 안에 한 사랑, 내 안에 한 영혼, 아- 생명을 잉태하는 기쁨이 이렇게 큰 것인 줄 미처 몰랐다.

한편으로는 ‘내가 과연 이 생명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생명의 존엄성, 그 고귀함을 생각하면 나 같은 사람이 과연 사랑의 결정체를 품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생명을 품는 환희와 본능적인 두려움이 교차했던 시간, 지나고 가니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간 느꼈던 신비는 잊히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그중에 가장 귀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남편은 사랑할 대상이 많아지므로 자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데 아내 나이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 나는 세상의 부정적인 면을 크게 보았고 그로 인해 이 세상에 생명을 더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낳아놓은 아이들이나 잘 돌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냈는데 결혼과 함께 생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내려놓았다.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날 닮은 딸을 낳고 싶다고 애타게 기다리더니 드디어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날아갈 듯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임신을 하니 이건 해도 되고, 저건 안 되고…. 태교라고 하는데 나름 복잡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혹여 우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크고 작은 일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속도 미식거리고 감정의 굴곡도 심해지고 여러 가지 내적‧외적인 변화에 적응해 가는 동안 참 많은 씨름을 했지만 한 생명과의 새롭고 신비한 관계를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내 존재에 의미를 더해 준 한 생명과의 동행은 경이로웠다.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고 할까? 나보다 먼저 아기를 생각하게 되었고, 아기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늘 함께 있으면서 모든 것을 나누는 존재. 남편은 부대 일로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었지만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는 아기가 있어서 깊은 산골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아! 그 친밀함이란.

신혼 때 남편이 군 복무 중이어서 강원도 산골의 한 군 교회에서 매주 백오십 명 정도의 군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아이를 배고 여러 가지 이유로 편찮은 몸과 마음으로 맞이했던 한 주일 아침, 그날따라 교회에 들어오는 군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 부모 된 자가 얼마나 힘쓰고 애쓰고 고생해서 낳았으며 애지중지 길렀을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떼어 놓은 아들들의 모습 속에서 부모들의 절절한 사랑이 읽어지니 가슴이 먹먹했다. 들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외모가 어떻든 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갖가지 잣대로 아무리 난도질하여도 한 생명이 가진 고귀한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 다들 너무 비슷해 보여도 제 부모의 눈에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일지. 자주 볼 수 없어 그리운 마음 달래며 무사히 제대하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직 생명을 기른다는 얘기조차 하기 어려운 초보 엄마였지만 공감이 되었다. ‘이렇게 애쓰셨구나. 자기 자신보다 더 아끼고 마음 쓰셨구나.’ 세월호에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떨지 감히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겠다.

생명은 사랑으로 잉태되고 사랑을 먹고 살다 사랑을 향해 간다. 생명을 위해 사랑을 쏟아 부은 사람은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다. 사랑할 대상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그 대상이 곁에 없을 때 깨닫게 된다. 죽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그 절대적인 가치를, 생명을 위해 애쓰신 부모님의 사랑과 인내를. 하마터면 인생에 소중한 경험 하나 놓치고 갈 뻔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생명이 생명을 낳은 일이 온전히 기쁨이 되고 축복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생명의 어떠함을 이리저리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가치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그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지고 법이 세워지고 실행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 땅에 생명을 낳는 것이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을 가르치는 생명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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