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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종교에서 바라본 변찬린과 한국 기독교“한국 민족종교와 한국 기독교” ⑶
이호재 원장(자하원) | 승인 2022.03.31 15:40
▲ 한밝 변찬린 선생의 저서들

민족종교라는 말은 흔히들 민족에 한정되어 있는 국수주의와 등치어로 상상되곤 한다. 한국민족종교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기복적인 성격에서 탈피하지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하지만 윤승용 위원장은 한국민족종교에 대한 그러한 평가 자체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한국민족종교는 “한국문화 토양에서 자생적으로 배태되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제의 대상이 한민족으로 한정되는 종교는 아니다.”고 단언했다. “창시자의 종교경험에 기반을 둔 근대적 종교개념을 가진 근대적 종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러한 한국민족종교의 틀에서 바라 본 한밝 변찬린 선생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특히 최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옥스퍼드 한국성서 핸드북”에 소개되어 있는 변찬린 선생과 관련된 부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 나아가 한국민족종교에서 바라 본 기독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한국적 기독교’의 해석 틀을 만든, 변찬린

이호재 원장(이하, 이): ‘한국의 기독교’라고 하는 화제가 나와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제가 연구한 변찬린 선생이 최근에 세계 신학계에서 권위가 있는 《옥스퍼드 한국성서 핸드북(The Oxford Handbook of the Bible in Korea (OXFORD HANDBOOKS SERIES, 2022)》에 그의 ‘도맥(道脈)과 선맥’이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집필자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이번 대사전에 변찬린 선생도 그리스도교 인물 가운데 수록이 되어 있는데 한국 종교사에서 어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요?

윤승용 위원장(이하, 윤): 제가 변찬린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풍류 도맥을 기초로 기독교의 새로운 해석 틀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기독교계는 지금까지 대체로 3가지 방향에서 토착화내지 한국화 작업을 해왔습니다. 첫째는 성(誠)의 신학을 주창한 윤성범, 풍류신학을 제기한 유동식, 불교와 화합한 변선한과 같은 문화신학 또는 종교신학 그룹입니다. 이들은 한국문화와 기독교의 만남과 화해를 추구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온전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한국문화를 점령하고자 하는 정복주의적인 신앙형태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둘째, 유형모, 김교신, 함석헌 등과 같은 주체적인 성경해석 그룹입니다. 이들은 민족주의 바탕 위에서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서구의 패권적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자주적 민족적 기독교를 만들어 보려는 것입니다. 동양사상의 우주론에 입각한 유영모의 신학, 김교신의 조선산 기독교, 함석헌의 씨알의 역사 해석 등은 모두 한국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서양의 기독교 신앙을 수용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한국적 기독교 형성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현재 한국의 기독교 신앙현장과는 다른 전혀 별개 흐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셋째는 주의 재림이라는 영통계시에 의한 기독교계 신종교 지도자 그룹입니다. 1920-30년대 신령파들을 비롯해 통일교의 문선명, 전도관의 박태선,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 등과 관련된 영통 계시파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혈맥을 중시하고 한국에서 재림주가 탄생하며, 한국이 새로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민족적 선민의식을 강하게 깔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민족종교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으나 대표적인 이단종교로 규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찬린 선생의 성경해석학과 한밝사상은 이상의 ‘한국적 기독교’를 추구한 이들 모두의 문제의식을 함께 아우르는 신학사상으로, 또한 새 축(軸)의 시대 ‘한국적 기독교’의 해석 틀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문화신학자들이 가졌던 기독교와 한국문화의 진정한 화해, 초종교적 자리에서 주체적 성경해석 그룹이 추구한 기독교의 주체적 수용, 영통 계시파들이 바라는 성경해석의 통일 한국론 등은 저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변찬린 선생의 구도와 학문적 여정은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서만 조명될 수 없을 정도로 구도자, 종교개혁가, 문명사가, 한밝 성경해석학의 창시자 등의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논의를 한정해서 변찬린 선생이 전개한 새 교회운동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윤: 변찬린 선생의 새 교회운동은 세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 문명의 개벽을 위해 소규모(120명 단위)의 인격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새교회 운동을 전개했지요. 새 교회는 건물 성전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성전이 되어야 하고, 종교인은 종파 중심의 직업 종교인이 아닌 각자 깨달음의 영성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이 같은 종교운동은 우리의 삶의 현장을 고려한 주체적 신학담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래 인류의 생명과 문명을 고려한 생명신학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 신학이고, 새로운 축의 시대를 대비하는 인류 미래신학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민족종교 신관을 통해 본, 한국 기독교

이: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는데 일부 신학자와 종교학자는 한국의 지고신이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범재신론의 신적 속성을 가졌다고 평가를 합니다. 서구의 유일신관과 삼위일체 신관을 개념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적 언어-창조성, 초월성, 내재성, 과정성 등-로서 한국의 신, 특히 민족종교의 신관이 개념화될 수 있는지요? 이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한국의 신관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윤: 서구 기독교적 언어로는 민족종교의 신관을 개념화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세계종교사에서의 신관은 자연과 인간을 신격화하는 고대종교의 자연신관과 인간의 이상과 그 삶을 담은 고전종교의 신관으로 크게 구분됩니다. 그 가운데 고전종교의 신관은 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진 유대-기독교의 신관이고, 다른 하나는 순환론적 시간관을 가진 인도-중국의 신관입니다.

전자에 속하는 기독교의 경우, 세상의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직접 관리하는 유일신을 전제합니다. 그 유일신을 모두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마다 그 명칭은 다릅니다. 유대 기독교의 야웨, 이슬람의 알라 등이 그것입니다. 후자인 인도-중국의 경우, 지고신은 우주질서를 창조하지는 않으나 그 우주질서를 주재하는 주재신(主宰神)으로 등장합니다. 인도-중국의 우주론은 항시 우주질서의 순환적 변화 원리나 법칙을 전제하고 있어서, 그 원리나 법칙 자체를 신성화하거나 의인화하가도 하며, 혹은 그 변화를 주재하는 최고 신격(神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전자의 예는 인도의 다르마(法)와 브라만(梵), 중국의 도(道)와 천(天) 등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예는 불교의 법신불, 도교의 원시천존, 유교의 상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신관의 논의는 대체로 신의 존재와 그 역할에 매달려 있습니다. 신은 서구종교에서는 핵심문제로 등장하나 그렇지 않은 종교도 적지 않습니다. 변화의 원리를 종교의 핵심이라고 보는 종교에서는 신관은 그리 중요치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 모든 종교에서 신관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을 뿐 아니라 그 종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종교의 서구화[文明宗敎化]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대 신관에 대한 모든 학계 논의들은 서구적인 유일신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사고를 그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비서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신관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리어 장애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민족종교의 신관을 설명하는데 자주 활용되는 신의 ‘초월적 내재론’을 주장하는 ‘범재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초월적인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적 평면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것이며, 본래 초자연적인 유일신관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신론입니다. 존재론적인 유일신을 인식론적인 차원[理神論]에서 혹은 생성론적인 차원[過程神學]에서 다시 바라본 신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초월적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 입장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그런 신론임에도 비서구의 내재적 신관을 설명하는데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지고신 신앙은 초월세계에 존재하는 인간과 분리된 그런 신이 아닙니다. 그러한 특성은 한국 민족종교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국의 민족종교는 한국 문화전통에서 발생한 자생종교이고 동시에 19세기 후반 내외 위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대망하는 개벽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족종교는 먼 옛날 무속과 선, 삼국시대 이후 정착한 유불선 삼교, 조선시대 성리학의 경직화와 상제론만 강조하는 서학의 도입 등의 영향을 받고 등장하였습니다. 그것도 민중종교로서 출발했기 때문에 민중적 전통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정 종교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전통종교의 신격들을 재해석해서 활용하고 있거나 또는 서로를 융합시켜 민족종교의 창교주들이 신앙경험을 통해 재창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민족종교의 신관은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도 사실입니다. 무속을 비롯한 고대의 전통적인 자연신관, 인도-중국의 순환론적 우주관에 기초한 신관, 직선적인 시간관에 기초한 신관 등을 함께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계통의 신앙양식이라고 하더라도 민족종교 창교주들이 신(神)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여러 형태의 신격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족종교 신관은 모두 한국 고유의 하늘(천) 신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상제님, 하느님, 한울님, 한얼님, 하날님 등의 민족종교의 최고신들은 하늘과 연관된 다양한 지고신의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먼 옛날 전통적인 하늘님 신앙을 토대로 선교의 신선관, 불교의 범천관이나 정토관 유교의 천관, 서학의 상제관 등의 영향을 받아 창교주들이 자신의 신에 대한 경험을 기초로 신관을 새롭게 형성한 것입니다. 이들 신관들은 대체로 자연과 인간을 신격화한 자연신관에서 비롯된 최고신이거나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우주질서를 주재하는 조화신(造化神)으로서 성격이 짙습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사를 주재하면서도 우주 만물과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민족종교는 대체로 우주 조화신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인간의 수련을 요구합니다. 자기완성을 통하여 우주 자연의 운행을 담당하는 조화신과 신인합일(神人合一)하고, 또한 신과 인간이 상호 협력을 지향하는 신인합발(神人合發)의 신인관계을 가집니다. 이런 관계가 수련적인 인간관과 화합과 상생의 세계관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신관과 아주 다른 것입니다.

이: 신관은 사실 종교연구에 있어 구원관과 더불어 핵심적인 담론입니다. 한국 종교문화의 맥락에서 민족종교의 신관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윤: 우선 민족종교의 효시라고 하는 동학의 신관은 주문[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과 <논학문>에서 주문을 설명한 내용[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을 보면 수운의 우주론적 천신관(天神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동학의 지고신은 ‘지기(至氣=天主)’로 표현되고 활동하며, 더구나 그 신을 모시는 것을 ‘내유신령 외유기화’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혼연일기의 지기는 한울님으로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이고, 그 신은 내 안에 내재하면서, 그것을 초월하여 저 너머에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보면, 한울님을 최고의 신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면에서 서학의 유일신 신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나 내 안에 내재한 신이라는 면에서 동양의 전통적인 천관(天觀)을 토대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동학의 지고신 한울님을 우주에 가둬 버린 범신론도 아니고 완전히 우주 밖에 있는 유신론도 아니라는 점에서 ‘내재적 초월론’의 형태를 지닌 ‘범재신론’의 성격을 지녔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재신론으로 설명할 경우 동학의 지고신은 우주를 주재하는 조화신의 성격을 가지며, 동학의 기본 주제인 순환사관에 기초한 동학의 개벽관을 적절히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하늘 지고신의 존재론에만 집착한 나머지 천주(天主)의 신격이 가지는 한민족의 고유의 하늘님 신앙이나 동양종교에서 우주운행의 원리나 질서 자체를 의인화하거나, 그것을 관리하는 조화신의 역할, 그리고 상제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은 수운의 종교적 위상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1960년 동학을 창교한 수운의 대각은 상제의 계시설(啓示說)에 근거합니다. 여기에 서학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한울님은 무극대도를 게시한 계시자일 뿐 서학에서와 같이 유일 절대자로서 외경의 대상이 아닙니다. 도리어 게시의 과정을 보면 그 상제는 전통적인 하늘님을 복원한 측면이 더 많습니다.

또한 1901년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의 대각은 상제의 강림설(降臨說)에 근거합니다. 이른바 증산상제는 뭇 신명들의 호소에 못 이겨 천하 대순하고 직접 하강한 인간신(人間神)입니다. 마치 미륵하생신앙에서 미륵이 하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의 운도를 직접 고치는 천지공사를 행하면서 인간 세상에 상제로 현현(顯現)한 것입니다.

또한 대종교를 창교한 홍암의 대각은 전통의 전수설(傳受說)에 근거합니다. 즉 삼일신(三一神)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래되어 온 단군신앙을 ‘중광(重光)’함으로써 강력한 민족종교를 창립하였습니다. 1909년 서울에서 단군신위를 모시고 제천의례를 행한 이후 <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하였는데, 그 포명서는 백두산의 백봉신사에게 사사받은 두일백에게서 전달받은 것입니다. 또한 원불교를 창교한 소태산의 대각은 1916년 일원상의 진리를 대오함으로써 광의 법신불(法身佛)로 받아드렸습니다. 그의 일원상은 법신불이라고 하지만 신성만 있을 뿐 하늘님과 같은 신격은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각은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인륜도덕의 실천과 진리적 종교심의 회복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말하자면, 신이설(神異說)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일원상에만 전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요컨대, 전통적인 하늘님은 수운에게 무극대도를 전한 천주로, 홍암은 민족 고유사상을 기반으로 한 삼일국조신으로, 증산은 절대권을 가진 상제로 각각 체현한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각 종교마다 지고신에 대한 독특한 입장과 견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공통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들의 천신관은 모두 지고신으로서 귀일사상(歸一思想)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수운의 한울님도 한누리의 주재자요, 상제와 삼일신으로서의 한울님도 유일신이요, 비록 신성만을 갖춘 일원상도 신격만 갖춘다면 유일신으로서 주재자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천부경(天符經)의 한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아무리 천신(=無極)이라고 하더라도 풍류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접화군생(接化群生=太極과 皇極)에 의해서라야 비로소 우리 민족의 천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민족종교의 천신들은 한결같이 텅빈 하늘을 말하지만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 인간화함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지고신 신위(神位)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민족종교의 현세적 인간관과 구원관에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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