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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발전(counter development)“이 일을 위하여 이 때에 왔다” 2022년 한국기독교 부활절 맞이 묵상집 ㉛
NCCK | 승인 2022.03.31 23:22
▲ Orazio Borgianni, 「Christ in the Garden of Gethsemane」 (1610) ⓒWikimediaCommons

마태복음서 26:37-39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진정한 진보는 보태기의 진보가 아니라 빼기의 진보라는 말이 부쩍 와닿는 요즘입니다. 생태적 삶이란 뺄셈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대항발전’이라는 말이 있는데, 온갖 인간 중심 문명의 산물들, 과학 기술에 의존한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빼기의 노력’을 말합니다. 인간이 만든 도구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은 풍요롭고 편리한 것 같아도 무언가 불안하고 늘 쫓깁니다. 인간에게 원래 있었던 많은 ‘야생 능력’을 잃은 때문이지요.

인간을 나타내는 말로 보통 라틴어 ‘Homo’를 사용하는데, 호모 사피엔스, 호모 에렉투스 등은 여기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호모는 그리스어 호모스(ὁμός)에서 온 말로, ‘같다’라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은 끝없이 기계에 몸을 결합해 ‘안드로이드’(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행동을 하는 로봇) 인간이 되려고 합니다.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손전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같다’를 확인하려 하죠.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의 대가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무서운 기후 재앙을 맞고 있습니다.

‘대항발전’의 싸움은 ‘깨어 있음’이 기본이어야 합니다. “나는 슬퍼서 죽을 지경입니다. 여기에서 기다리며 깨어 계세요.” 겟세마네의 당부와 기도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신경, 관심을 끊고 깊이 잠들어 버립니다. 내 운명이 아니라 예수님 혼자서 겪을 운명이라는 듯이요. 내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는 없을까요? 함께 대항발전을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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