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창조세계의 빛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가칼 바르트의 빛의 론 ⑴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4.02 15:38
▲ 이른바 자연신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창조세계의 빛들을 통해 구원의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논쟁의 핵심이다. ⓒGetty Image

칼 바르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중심성, 그리고 그의 복음에 관심을 가졌던 기독교 신학자였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영을 통해서만 진정한 하나님의 지식에 이를 수 있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죄인들은 그분과 화해되고 용서와 중생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와 기독교 신앙을 떠나서 하나님께 다가설 수 있는 길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유일한 자기계시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른 계시는 없고, 그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도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변화의 조짐

바르트의 이런 신학적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보는 ‘자연신학’과 명확하게 대립된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계시의 본성에 관하여 언급한 바는, 그가 흔히 즐겨 사용한 “하나님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는 구절로 요약된다(CDⅡ/1, 179).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계시하시기 때문에, 바르트는 “모든 자연신학은 교회 내에서 논쟁의 여지없이 불가능하다”(CDⅡ/1, 85)고 주장했다.

자연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이와 같은 강력한 반대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참된 지식이 그것을 단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신학이 불필요한 것은 참된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알려졌기 때문이고, 또한 자연신학이 불가능한 것은 기독교의 계시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본성, 즉 십자가에 달린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바로 그 계시라는 것은 결코 다른 곳에서는 알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1)

그러나 바르트는 1959년에 출판된 『교회 교의학』 화해론 제3권에서 “창조세계의 빛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논의한다. 세계의 빛들은 그 나름의 확실성과 상대적인 타당성 안에서 “실제적인 가치, 힘과 의미”(CDⅣ/3-1, 163)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빛을 반영하고, 그의 말씀에 답하고, 그의 진리에 상응”(CDⅣ/3-1, 164)한다고 말한다. 이것만을 놓고 본다면,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인정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한스 큉이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신학과 존재유비에 대한 이전의 기소자가 피조된 세상의 빛들, 말들과 진리들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이것은 바르트가 그의 이전의 입장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수정했다는 것을 뜻한다.”(2)

바르트 좌파에 속하는 마르크바르트(F. W. Marquardt)는 더 나아가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적 해석학(Anhypostasis-Enhypostasis)을 자연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바르트를 종교다원주의와의 대화를 위해 중요한 전거로 파악하기까지 한다.(3)

정말 변했는가

정말, 바르트는 전에 그렇게 철저하게 반대했던 자연신학을 세월이 흐르고 정치적으로 보다 안정된 상황이 되자 은밀하게 인정했을 뿐 아니라, 마르크바르트가 이해하듯이, 종교다원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해놓기도 한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흔히 “빛들의 교리”라는 단순화된 용어로 말해지는 성서와 교회 밖의 참된 말들에 대한 교리(CDⅣ/3-1)에서 바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고대 교회의 Anhypostasis와 Enhypostasis의 교리를 바르트가 어떻게 이해하고 해명하는지를 살펴보자. 난해하고 복잡한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의 특징을 해명함으로써 우리는 그가 『교회 교의학』 전체에서 일관되게 그의 신학의 방법론적 특징인 ‘그리스도론적 집중’(4)을 관철시키고 있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이어서 화해론 제3권 “생명의 빛”이란 항목에서 바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신학이나 종교다원주의적 관심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예컨대 그뤼네발트(M. Grünewald)가 이센하임 제단 뒤편에 그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림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처럼, 화해사역을 성취하신 “생명의 빛”,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우주적 주권만을 전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었음을 해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세계의 빛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러나 피조된 빛들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들이 어떻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되는지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바르트가 해명한 “빛과 빛들의 교리”는 오늘날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가 되고 있는 종교 간의 대화에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미주

(미주 1) J. Thompson, The Holy Spirit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 14.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을 통한 계시의 독자성이 위협받게 되는 곳에서 자연신학의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고 본다. Charles T. Waldrop, Karl Barth’s Christology, Its Basic Alexandrian Charcter, 167 이하를 보라. ‘자연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지난 “칼 바르트는 과연 자연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나?”를 참고. 필자는 이 글에서 바르트의 신학의 전체 발전과정을 살펴보면서, 그가 일관되게 자연신학을 거부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주 2) H. Küng, Does God Exist?, 526 이하. 같은 저자의 최근의 저서, Grosse Christliche Denker (1994), 205-209 참고. 몰트만도 같은 입장이다. J. Moltmann, Gott in der Schöpung (1985), 김균진 옮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76-81을 참고.

(미주 3) F. W. Marquardt, Theologie und Sozialismus: Das Beispiel Karl Barths,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72를 참고. 칼 바르트의 화해론을 종교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정승훈, “칼 바르트와 타자의 해석학” 「말씀과 교회」 2000년 여름호 (서울: 기장신학연구소, 2000), 140-156, 특히 142쪽 이하를 참고.

(미주 4) Karl Barth, 『바르트 사상의 변화』, 62 이하. 바르트는 말한다: “기독교 교리는 … 배타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가 되어야 한다. …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론적 집중이라고 부르고 싶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