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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여행보다 낯선 라오스 이야기 ④
관택·유은 | 승인 2022.04.07 15:03
▲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교복 문화가 남아 있다. ⓒ관택·유은

드디어 라오스국립대학교의 오프라인 등교가 시작되었다. 지난 해 9월 라오스국립대학교 삐끼암 과정에 입학원서를 접수한 이후 정확히 6개월 만이니,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코로나 위기로 멈추었던 사회가 지난 해 말부터 서서히 락다운 방역조치를 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까지 열리지 않았던 공간이 학교였다. 이는 풍운의 꿈을 안고 학업에 전념해야하는 학생들에게 너무나 큰 불안감과 막막함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입학신청 후에 몇 번이나 학교에 가보았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을 만큼 적막한 학교의 교정은 절망적인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했다.

적막을 깨고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지난 1월 부터였다. 길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하나 둘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주 작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저마다 비슷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어린 학생들은 목에 ‘패’라고 불리는 붉은 스카프를 하고 있었고, 대학생은 넥타이를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중고의 스카프 색깔은 학생들의 품행 점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또 대학생의 넥타이 색깔은 전공하는 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으로 보아 이 스카프와 넥타이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오스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학생들의 교복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등교 첫날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교복을 다리고, 넥타이를 둘러맸다. 인디(정유은)는 원래부터 학생이었던 것처럼 익숙한 자세로 자신에게 꼭 맞는 교복을 멋들어지게 착용했지만, 생애최초로 교복을 입는 나로서는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교복자율화 세대가 아니었지만 사복을 입는 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살면서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더구나 정장을 입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 마흔이 넘는 지금까지도 넥타이를 매지 못하여 얼마나 낑낑되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첫 등교의 설레임도 불편한 교복차림 때문에 뭔가 어색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수업은 아침 8시부터 시작하지만 우리는 7시가 채 되기 전에 교실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보는 교실은 예상했던 것처럼 좁은 공간과 낡은 책걸상을 비롯하여 열악한 환경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에어컨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천장에 달려있는 두 대의 선풍기도 고장난 것처럼 보였다. 또한 교실은 1년 넘게 청소를 안했는지 천장을 바라보는 모든 평면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물티슈와 휴지를 꺼내 내가 앉을 책상과 의자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더위였다. 아침 7시인데도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의 한복 더위가 몰아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 기후가 나름 시원한 편이었는데 장대비가 몇 번 오더니 열대야가 엄습해왔다. 열대야라도 침실에는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으니 더위를 그다지 체감할 수 없었지만, 이 곳 교실은 달랐다. 땀이 흘렀고, 더운 숨이 규칙적으로 흘러나왔다.

▲ 아침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학교에 가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관택·유은

수업시간이 임박해오자 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에 도착했다. 저마다 설레이는 표정이었고, 몇몇은 수줍어했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삐끼암 과정>은 외국인이 라오스의 4년제 본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1년 동안 라오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여기서 ‘삐끼암’은 라오어로 ‘준비하는 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라오스라는 나라에 와서 언어와 문화 그리고 향후의 삶을 준비하는 시간을 함께하는 교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반에는 당연히 외국인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데, 총 30명의 학생 중 한국인 3명, 캄보디아인 6명, 중국인 3명, 나머지는 베트남 학생들이었다. 나이는 평균이 19-24세였고, 나 이외에도 40세가 넘는 학생은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베트남 여성분이었다. 도대체 그 분은 어떤 사정과 계획을 가지고 47살의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교실에 앉아 계실까. 이 교실에서 내가 최고령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그 분이 더욱 궁금해졌다.

8시가 되자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그러자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교수님이 “여러분 앉으세요!”라고 말하자, 모두가 “감사합니다 교수님”하면서 자리에 앉는다. 괜스레 반장도 없는데,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누가해야 하나 걱정했던 내가 민망스러워졌다. 괜한 걱정하지 말고 그저 교실의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야지 정신을 가다듬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재미있는 부분은 캄보디아, 베트남 등 같은 인도차이나 사람들도 라오어는 어려워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기초 라오스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수업의 진도를 따라가기 수월했는데, 처음 라오어를 접하는 학생들은 진땀을 흘렀다. 그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발음”이었다. 타국의 언어를 공부하면서 가장 신기한 발견은 ‘발음’이라는 존재였다. 나라마다 각 자가 할 수 있는 발음과 할 수 없는 발음이 너무나 다양했는데, 예를 들어 라오스 사람은 ‘ㄹ’발음을 전혀 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은 라오어의 성조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중국, 베트남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발음으로 타국의 언어를 흉내 낼 뿐이지 그 ‘발음’의 방식에 쉽사리 도달하지 못한다. ‘발음’은 구강구조와 혀 그리고 턱의 움직임, 호흡 조절 등 총체적으로 움직여서 발화하는 언어의 최종단계이다. 어떤 현상과 사물은 ‘발음’이라는 행위로 의미를 얻게 되며, 그 결과로 사람들은 서로의 발음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타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동안 내가 한 번도 움직여 본 적이 없는 구강근육을 움직여야하는 일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소리의 질감에 민감해져야 한다. 어쩌면 서로가 한 번도 소리 내에 본 적 없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보고,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를 듣는 일이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는 예를 들어 라디오 주파수(헤르츠)가 달라서 전혀 들리지 않았던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혀 들리지 않았던 주파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나의 가청 주파수를 넓히는 노력. 그 노력이 그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를 처음에는 ‘지지-직’하는 소음과 함께 듣게 해줄 것이고, 노력여하에 따라 선명한 음질을 선사해줄 것이다.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친구들과 함께 안되는 라오스어를 배우는 과정이 사뭇 놀라우면서도 재미있다. 신기하게도 수업을 듣다보니 어느새 더위가 사라졌다. 천장을 바라보니 고장이 나있던 선풍기가 천천히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낡은 선풍기 하나에 웃음 지을 수 있는 교실. 저마다 안 되는 발음을 해보느라 소음이 난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 또한 타인과 소통하고 또 다른 세상과 접속하고 싶은 노력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사라지고, 더 많은 사람들과 대면하여 침 튀기며 웃을 날을 열망하는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떠올랐다. 한국은 오미크론의 여파로 어느 때 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모든 것이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수업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학생들과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관택·유은

관택·유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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