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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욥 31:1-8; 벧전 4:1-11; 마 20:17-19)사순절 여섯째주일(4월10일) 종려주일/씨뿌림 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4.08 15:26

1. 종려주일과 씨뿌림 주일

▲ 예수님의 종려주일 입성 이콘

오늘은 사순절 여섯째주일이자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Palm Sunday)은 잘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날입니다. 부활절 바로 전 주일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기 때문에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물론 ‘종려나무 가지’라고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요한복음입니다(요 12:13). 공관복음서에는 그냥 ‘나뭇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마 21:8, 막 11:8). 종려나무는 순교자를 상징합니다. 또한 승리, 승천, 재탄생 및 불멸의 의미도 지닙니다.

아무튼 교회는 전통적으로 종려주일에 사용한 종려나무 가지를 한 해 동안 별도의 장소에 따로 잘 보관합니다. 바싹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행사 때, 종려나무 가지를 불에 태워 재로 만든 다음, 사람들의 이마에 발라 사순절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또한 중세 때는 종려주일 날, 한 교회에서 종려주일 예배를 드린 후에 가까이 있는 다른 교회로 걸어가며 축하하는 것이 종려주일의 예배 풍습이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되새깁니다. 물론 이러한 전통은 동로마 교회에 속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는 동로마 교회의 이러한 축하 분위기 대신, 애도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이후, 예수님께서 수난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월요일부터 성금요일까지를 고난주간(Passion Week)이라고 합니다. 수난주간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간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냅니다. 특히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세족 목요일’과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은 더욱 경건하게 보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은 씨뿌림주일이기도 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은 2005년 9월, 제90회 총회에서 ‘씨뿌림주일’을 총회제정 주일로 정해, 매년 4월에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씨앗을 뿌린다.”라는 행위 속에 담긴 신앙적 성찰과 고민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농부가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이 바로 그 창조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참여한다는 적극적인 신앙고백과 결단, 실천의 의미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는 수난 예고의 말씀입니다. 수난 예꼬는 마태복음에 세 번 나오는데, 오늘 본문은 마지막 세 번째 수난예고 말씀입니다. 따라서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을 대비하라고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통받고 수난당하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방법을 구약 욥기 말씀을 통해 들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내적 순결’과 ‘외적 행동’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걸어논 길을 살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세시는 분이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 고난의 때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렇게 비록 수난의 시대가 닥쳐도 내・외적으로 순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면 마침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그렇습니다! 고난의 씨앗이 뿌려져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부활의 소망으로 늘 이겨 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을 것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수난 예고 세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마 20:17-19a)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올라가, 같은 민족과 이방인 양쪽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조롱당하며 채찍질로 온몸이 찢어진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안팎으로 버림받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수난 예고는 공관복음에 세 번씩 예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도 세 번의 수난 예고가 있습니다(16:21, 17:22-23, 20:17-19) 그리고 이러한 수난 예고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에게 3번이라는 것은 완전한 횟수입니다. 우리도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나요? 따라서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수난 예고를 세 번씩이나 한다는 말씀은, 그 의미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처음 한 두 번째는 제자들의 무지와 오해로 수난의 의미를 이해 못 하겠지만, 세 번째는 온전히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같이 십자가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셨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도 같은 수난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는 당시 로마의 박해로 고통받는 교회에 격려의 편지를 씁니다. 이때는 로마 황제 네로(A.D. 54-68)의 통치 기간인데, 네로 황제 말년에 로마 대화재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A.D. 64). 네로는 화재의 원인으로 그리스도인을 지목해, 이후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를 교회의 역사는 대박해(A.D. 64) 시대라고 합니다. 이렇게 대박해로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받을 때입니다. 베드로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고난에 맞서 싸우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위로로 고난에 맞서 싸워 이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3.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벧전 4:1)” 무슨 말씀인가요? 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기에, 그리스도인들도 고난받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이제 죄와 인연이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고난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공동번역 말씀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지상의 남은 생애를 인간의 욕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이방인들이 즐겨하던 일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곧 방탕에 빠지고 욕정에 흐르고 술에 취하고 진탕 먹고 마시며 떠들어대고 가증한 우상 숭배를 일삼아 왔으니 그만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이방인들은 여러분이 이제 자기네와 함께 방탕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해서 괴이하게 생각하며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 앞에서 바른대로 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육체로는 인간이 받는 심판을 받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을 따라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벧전 4:2-6)

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이 처음에는 먹고 마시고 취하고, 우상 숭배하며 방탕했으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러한 생활을 버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욕한다고 합니다. 자신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주 설교 제목처럼, 하나님은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난의 때에 사랑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8-11)

그렇습니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0:19b)” 할렐루야! 부활로 완성이 됩니다. 지금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것이나, 삼 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 스물다섯 스물하나

▲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

tvN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16부작, 2022.2.12.~4.3)가 지난주에 끝이 났습니다. 참으로 엄혹한 IMF 외환위기 시대!, 승승장구하던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김영삼 정부의 외환위기를 김대중 정부가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시대가 배경입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극단적인 양극화가 시작되었던 출발점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 백이진(남주혁 분)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으로 가서 우주선 조종사를 꿈꾸었지만, IMF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내면서 망하고, 그 결과 학교를 휴학하고 꿈을 빼앗겨버립니다. 특히 아버지로 인해 그 누군가의 삶이 절망과 고통 속으로 빠졌다는 자책감으로, 아버지의 빚을 받으러 온 이들에게 이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정말 행복하지 않을게요.”

참 아픈 말입니다. 시대가 이 젊은이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 나희도(김태리 분)는 이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해지자!” 이 말에 이진은 위로를 받습니다. 사실 희도는 어린 시절 펜싱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좋아하고 동경하는 동갑내기 국가대표 고유림(김지연 분)에게 무시당할 만큼 존재감 없는 선수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도 희도는 그 어떤 순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소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학교 펜싱부가 해체되자, 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 시대가 뭔데 내 꿈을 뺏을 수 있냐 말이야!” 그렇게 희도는 꿈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 달려가는 길에는 ‘그날그날의 연습에 대한 기록과 반성’들이 쌓여있습니다. 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맨날 진다고 매일이 비극일 순 없잖아. 웃고 나면 잊기 쉬워져. 잊어야 다음이 있어.” 실패하는 걸 겁내지 않고 당당한 희도의 마음을 보며 이진도 힘을 냅니다. 그리고 희도를 응원합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

오늘 또다시 IMF와 같은 절망의 시대를 직면한 젊은 친구들에게, 무한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에, 온갖 스펙을 갖춰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도와 이진의 ‘스물하나, 스물다섯’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삶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진의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시대는 충분히 네 꿈을 뺏을 수 있어. 꿈뿐만 아니라 돈도 뺏을 수 있고, 가족도 뺏을 수 있어. 그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빼앗기도 하고, 오늘, 네 계획이 망한 건, 내가 망쳐서가 아니야. 틀린 계획이었기 때문에 망한 거야. 다시 세워 계획!”

그렇습니다. 절망과 고통은 오늘 구약 본문 말씀의 주인공 욥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꿈과 돈과 가족까지 뺏어 버리는 이 고난의 시대에 우리는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지금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한 주간이지만, 다음 주에는 반드시 부활주일이 올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제대로 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고교 방송부원이었던 이진은 학교 점심시간 방송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힘내. 할 수 있어. 그런데 과연 우린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는 말이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못해도 되고, 실패해도 괜찮은 세상을 우린 아직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봅시다. 최선은 다해봅시다. 다만 바랍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 편 이길!”

5. 내적 순결과 외적 행동으로 부활의 첫 열매를 이루자!

오늘 구약 말씀에서 욥도 이렇게 회상합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기에게 닥친 고난에 관해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며 말하는 것인데, 공동번역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젊은 여인에게 눈이 팔려 두리번거리지 않겠다고 나는 스스로 약속하였네. 하느님께서 위에서 나누어주시는 분깃은 무엇인가? 전능하신 분께서 높은 데서 떼어주시는 유산은 무엇인가? 악당에게는 파멸이, 바람둥이에게는 고독이 아니던가?”(욥 31:1-3)

이것은 욥이 ‘마음의 순결’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적 순결과 더불어 ‘외적 행동’에 관한 회상이 이어집니다.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을 살피시고 나의 발걸음을 세시는 분, 내가 허황한 생각으로 살았다거나 이 발이 거짓으로 서둘렀다면, 바른 저울에 달아보시면 아시리라. 하느님께서 나의 흠 없음을 어찌 모르시랴? 내 발길이 바른길에서 벗어났다든가 이 마음이 눈에 이끌려 헤매고 이 손바닥에 죄지은 흔적이라도 묻어 있다면, 내가 뿌린 것을 남이 먹고 내 밭에서 자란 것이 뿌리째 뽑혀도 좋겠네.”(욥 31:5-8)

욥은 자신의 외적 행동이 떳떳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흠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욥은 자신에게 불어닥친 불행에 관해 세 친구와 논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치열한 논쟁을 일단락 짓고, 차분히 자신의 삶을 돌이켜봅니다. 먼저 욥은 지난날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선을 행하며 형통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과거 자신의 복된 삶을 회상하고(29장). 과거의 복된 삶과 지극히 대조되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현재의 고통을 한탄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던 욥이 이제 비천한 자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음을 한탄합니다(30장).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다시 주장합니다. 사실 욥기 13장에 보면, 욥은 친구들의 냉혹한 비방을 듣고 하나님께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습니다(욥 13:22-23). 이렇게 과거의 복된 삶과 현재의 비참한 참상을 한탄하며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후 엘리후가 나타나 논쟁을 끌어가고(32-37),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욥 42:7-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 욥과 같이 내적으로 순결하고 외적 행위도 온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살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뿌리는 씨앗입니다. 이렇게 고난 가운데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이들은 부활의 첫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에서 희도와 이진도 젊은 시절 뿌렸던 그 눈물의 씨앗이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집니다. 물론 두 사람이 결혼하여 부부로 함께 하지는 못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했으며,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권면합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b).” 이렇게 정신을 차려 내적 순결과 외적 행동으로 부활의 첫 열매를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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