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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리라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2.04.08 15:37
▲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를 위해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다. ⓒGetty Image

“인사는 왜 하시는 거냐?”

운전하던 남편은 그대로 앞만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옆모습을 흘깃 보았다. 잔뜩 굳은 표정이다. 말투에서 남편 역시 잔뜩 속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짜증나!”

울음 섞인 내 목소리가 이내 귀로 돌아서 들려왔다. 격양된 감정으로 이미 눈물을 참을 수 없던 나도 추스리려 한마디를 내뱉었다.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지났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교회에서 나오면 제법 환하다. 그렇다하더라도 엊그제 제법 눈도 내리고 아직은 시샘하는 계절의 추위에 몸을 곱송거린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그런데, 걸어가는 그 일이 쉽지 않다. ‘조만간 그리하겠노라!’ 하는 빈 다짐만 있을 뿐. 새벽시간에 실눈을 뜨고 시계를 보며 딱 1분!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로 시간을 빠듯하게 채우니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교회 바로 앞의 대로변에서는 두 대의 청소차가 만나서 쓰레기를 나누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신기하였다. 짬 시간에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반가이 환한 웃음을 짓는 그 분들을 뵙는 것이 기도 이상의 활력을 갖게 한다. 매일 여러 대의 청소차들을 만난다. 그것은 우리 새벽기도의 루틴이 되었다.

골목길에서는 별 수 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좁은 골목길을 청소차가 꽉 채웠다. 정확히는 양쪽으로 주차된 차들 때문이다. 앞선 청소차가 노련한 운전으로 비좁은 주택가의 골목을 아슬아슬 잘도 지나가는 중이다. 그런데다 기다리는 뒤의 차량, 아니 정확히는 차량에 탑승한 시민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청소노동자들은 서두르며 애를 쓴다.

작업자는 재빨리 뛰어서 쓰레기 봉지를 서너 개씩 양손에 낚아채듯 들어 청소트럭에 던진다. 봉지를 던지기가 바쁘게, 부리나케 가서 연달아 쓰레기들을 집어 든다. 봉지를 집으면서 시선은 앞으로 향해 이미 다음 쓰레기가 있는 곳을 확인한다.

청소차는 작업자가 탑승하기도 전에 이미 서서히 출발을 시작한다. 그는 달려서 올라탔다. 리듬감을 가지고 가뿐하게 오르는 것이 지긋 해 보이는 연세가 무색하다.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그 일이 연신 반복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서둘러 일하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뒤를 따라 가기 때문에 더욱 부담을 드린 것으로 느껴져 죄송한 마음도 든다.

새벽 청소차량을 처음 본 것은 새로 이사를 온 올 해, 1월이었다.

혹한기에도 청소차 뒤에 차디찬 철봉을 붙잡고 서서간다. 보여지지 않은 또는 보지 않은 그 일에 대해 보았을 때에 사뭇 놀라웠다. 조금만 생각해 보았어도 되는 것을. 차량 실내에 탑승한 채로 이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관심도 없었다. 공유하는 삶의 터전에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전혀 상관없는 자리를 만들어 앉아 있었다. 히터를 켜고 자동차로 이동하는 편히 앉은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기마저 하였다. 새벽기도 참석이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불과 몇 시간 전에 깨끗하게 청소된 거리를 당연하게 지나고 말았을 테다. 그러니 기도하게 된 것은 감사다. 그러나, 오늘 약자를 위한 나의 기도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깨닫는 나의 회개는 오늘도 거듭 새롭게 하신 은혜이기에 더 감사할 따름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꼿꼿하게 몸을 세워 서있는 좌우 두 명의 청소노동자. 쓰레기가 잔뜩 실린 트럭짐칸 뒤로 얼굴과 몸을 숨길만도 하다. 그런데 이미 마비라도 되어 느끼지 못하는 것 마냥 바람을 맞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두껍지 않은 짧은 점퍼를 입었다. 작업 활동의 편리를 위한 것인가? 두툼하고 긴 패딩 점퍼를 목 끝까지 잠그고, 춥다고 옷에 달린 모자까지 쓴 대조된 나의 차림이 무색한 지경이다.

그렇다고 작업자들은 그나마 계속 차를 그렇게라도 타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다. 골목 가가호호마다 놓인 쓰레기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저것 섞인 쓰레기더미 가운데서 해당하는 날짜의 담당수거 쓰레기를 싣는다.

안전모와 안전띠가 위아래 붙은 작업복을 입은 미화원은 대낮에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는다. 기피직종으로 꼽히던 환경미화원 공개 채용이 이제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2~ 30대의 지원도 몰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만으로 사회적 인식과 근로 여건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여유로운 마음으로 청소차 뒤에서 기다린다고 한들 그들의 다급하여 분주한 몸놀림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에게 최소한 우리도 같이 인사를 건넬 여유라도 쌍방에 있었어야 한다. 고개를 숙임과 동시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가는 청소차. 3개월이 되어가는 지금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중인데도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 그 상황에 그저 말문이 막혔다. 버석버석 메마른 현대 도시민, 우리에게 인사를 남긴 오늘 새벽의 그 일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여전히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진짜로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이겠는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잇대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 절실히 감사한다. 가만히 생각하여 기도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 일어나 새벽을 깨우리라.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나님나라가, 그의 통치가 이 땅에,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로 오늘의 삶을 시작한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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