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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치경제와 살림의 경제고 김용복 선생이 꿈꾼 세상 (3)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2.04.09 17:02

김용복 선생은 세계화가 민중의 삶과 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때 특유의 경세사상을 펼쳤다. 그의 경세사상은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그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고, 사회경제적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펼치는 실천론이다. 그러한 경세사상은 세계화에 맞서서 대안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의 경세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세계화를 어떻게 파악하였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세계화가 민중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

김용복 선생의 경세사상이 9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화되었다는 것은 많은 점에서 시사적이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동구의 현실사회주의 체제는 붕괴했고,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일방적 승리가 선포되었다. 세계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화를 통해 급속히 재편되기 시작하였다. 화폐자본이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운동하게 되었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세계경제질서를 새롭게 조율하게 되었다. 거대한 독점자본은 생산기지를 해외에 구축하고 글로벌소싱을 통해 수직적인 국제분업을 이루고자 했다. 일본과 유럽의 금융자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 유입되면서 그 지역에는 엄청난 경제 붐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화”에 들뜬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거대기업들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엄청난 규모의 신규투자를 하였다. 국민소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이와 더불어 노동임금도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기록한 1990년대 전반기에 민중은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사태 전개를 주시하면서 그는 세계화가 민중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보았다. 세계화는 빈부격차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심화하고, 초국적 기업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만들었다. 세계화는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세계화는 국민국가를 침식하고, 사회국가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빈부격차, 초국적 기업의 통제 불가성, 생태계 위기, 사회국가의 침식 –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져온 디스토피아다.

빈부격차

빈부격차의 심화와 관련해서 김용복 선생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논리 아래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이 심각한 불균형을 보임으로써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의 처지가 급속히 악화한다고 진단했다.

“우선 모든 나라나 기업이 경쟁력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시책을 강행할 것이므로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문제를 소홀히 다룰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기술개발과 설비의 자동화와 현대화 등 고정자본의 비율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축적하여야 한다. 그것은 임금 부분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자본 투입은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것이고,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노동력이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투자가 늘어나면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된다는 고전적인 등식은 사라지고, 세계화가 강요하는 노동절약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이 증가한다.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세금이 거두어져야 하는데, 자본은 이에 거세게 저항한다. 그나마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 선진국들은 궁여지책으로 노동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도록 조세정책을 개편하고,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가계부채를 크게 늘릴 것이다. 그 결과,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새로운 가난’이 확산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들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처하는 궁핍과 절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를 가릴 것 없이 사회적 양극화가 악화한다.

초국적 기업

김용복 선생은 세계화가 초국적 기업과 국민경제의 탈동조화를 촉진하고 확대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세계의 거대기업들은 그들의 법적인 소속이 어느 나라든지 지구적으로 경쟁하고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국적을 두고 있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과 우리 국민의 세계적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게 되는 것은 초국적 기업이 국민경제 운영에서 독립된 체제를 이루며 지구적 차원에서 경영을 펼치고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세계 자본의 기술구조’이다. 그 구조는 초국적 기업이 최대의 효율성을 달성하게 하고, ‘통제 불능의 세력 조직’으로 현존하게 한다. 초국적 기업은 자본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전략에 따라 지구적 차원에서 움직일 뿐, 한 나라의 국민경제 차원에서 일반복지를 향상하기 위해 기업의 경제정책, 사회정책, 사회기여 정책 등을 어떻게 서로 연관할 것인가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초국적 기업은 지구적 차원에서 생산과 교역의 조건들을 결정할 수 있는 거대한 경제 권력이다. 바로 그렇기에 초국적 기업은 세계시장에 편입된 모든 나라의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그 시장에 생존의 기회를 내걸다시피 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 생활을 지구적 차원에서 결정하다시피 한다.

그는 이처럼 세계화가 가져온 잉여가치의 수취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기에 민중의 삶에 접근하는 방법도 이제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계 위기

김용복 선생은 세계화가 민중의 삶에 부정적 결과를 미칠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지구의 생명은 더 커다란 희생을 당하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생태계의 위기는 서구형 산업 경제 체제와 산업 발전의 모순,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관계에서 인식되어 왔다. 이제 시장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시민의 정치적 압력을 초월하여 군림함으로써 그 사회정책적으로나 생명계에 대한 정책에 있어 더욱 파괴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1996년에 작성된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그는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세력들이 생태계의 파괴와 민중의 사회경제적 희생이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한다고 인식했다. 그것은 사회정의와 생태학적 정의를 따로 보지 않고 둘의 유기적 연관을 내다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물론 그는 사회적 가난을 불러일으키는 자본의 축적과 팽창 기제가 생태계 위기를 불러들인다는 점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것은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이 JPSS 논의로부터 JPIC 공의회 과정을 거쳐 PWE 과정에 이르기까지 점차 명료하게 가다듬어간 통찰을 선구적으로 제시했다. 탐욕의 경제가 사회적 가난과 생태계 위기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2013년 PWE 과정의 최종문서에 담긴 결론이었다.

사회국가의 침식

김용복 선생은 세계화의 진전함에 따라 국민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보장하는 역할의 한계를 점점 더 드러내리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것은 국민국가 주권이 영토에 묶여 있어서 국경을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자본의 운동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는 세계화된 시장을 규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시장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정리하였다.

“국민이나 시민이나 민중은 국가체제나 정부에 그들의 사회적 안정보장을 위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민족국가체제는 약화되고 정부는 국민에게 봉사하기보다는 시장에게 봉사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위 정치개혁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국가가 민중의 사회적 삶의 안정을 위해 펼치는 정책은 크게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민중이 국가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서 대안 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세계화가 민중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들을 거시적 관점에서 진단했다. 그의 진단은 현상에 대한 분석이기보다는 현상에 관한 서술에 그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는 손색이 없다. 세계화가 인간과 자연, 삶과 생명을 희생시키고,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존의 패러다임들이 실패하였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어느 것도 ‘기독교적 경제질서’로 간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세계화의 조건들 아래서 세계가 지정학적으로 재구성되고 모든 차원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기에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도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고, 지역과 국민국가, 더 나아가 지구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정치경제

김용복 선생의 경세사상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맺은 계약의 현실성에서 출발한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맺은 계약의 현실성은 그가 펼친 정치신학의 핵심이고, 그가 전개한 민중신학의 관점과 방법을 규정하는 축이다. 그의 경세사상은 경제에 대한 성서의 기본원칙에 바탕을 두었는데, 그 기본원칙은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계약의 현실성에서 도출되었다. 그 계약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그 주권이 관철되는 정치경제가 곧 하나님의 정치경제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그 백성의 정치경제는 서로 연관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그는 묻는다.

“만약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하나님의 백성의 정치경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복음이 일차적으로 빈곤에 의해 규정받는 삶을 사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의 정치경제가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는 경제라면, 그러한 정치경제는 어떤 기본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는가? 그는 그러한 기본원칙을 성서에서 찾고자 했고, 성서의 민중전기를 통해 하나님과 가난한 자들이 맺은 계약에서 경제생활에 관한 기본원칙을 추적했다.

그는 하나님과 민중의 계약이 하나님과 민중의 해방적 관계에 바탕을 두었다고 인식했다. 민중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파트너라는 것은 민중이 억압과 착취를 일삼는 이 세상의 권세들에 더는 종속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해방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민중의 계약에서는 지배의 일대 전환이 일어난다. 민중을 억압하고 노예화하고 죽이는 이 세상 권력의 지배가 자유와 형제적 결속과 생명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지배로 전환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민중의 해방적 관계가 실현되는 정치경제의 기본원칙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의 지양, 살림의 경제를 위한 청지기 직분, 참여의 경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은 모든 경제활동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을 제시한 이상, 경제활동의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효율성이나 수익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민중의 사회경제적 안정을 해치는 경제적 효율성과 수익성의 추구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은 기업의 효율성과 수익성이 절대화되는 세계화 과정에 맞서는 경제의 원칙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의 지양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을 지양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민중의 사회경제적 안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만약 부와 재산이 민중의 삶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정당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민중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사람도 재산과 부를 향유할 권리가 없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그는 물건에 대한 절대적, 배타적 지배권을 의미하는 소유권에 제동을 걸고 ‘잠정적 소유권’을 대안으로 주장했다. 그가 ‘잠정적 소유권’의 예로 든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토지점유권이다. 땅과 토지의 소유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한 원시 이스라엘에서는 땅과 토지의 사적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았고, 단지 토지의 용익권만이 인정되었다. 그러한 땅과 토지의 점유형태에서는 점유된 토지의 온전성을 보전하여 차세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물려주는 일만이 인정된다. 그러한 ‘잠정적 소유권’은 부와 재산에 대한 고대 로마법의 입장과는 충돌한다. 고대 로마법의 소유권 개념에 입각한 근대적 사유재산권도 근본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을 제한하면, 토지공개념을 확장할 수 있고,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에 근거하여 노동의 경영 참여를 한사코 거부하는 경영 독재의 논리를 깰 수 있다. 한 마디로, 경제질서를 새로 짜는 기획이 ‘잠정적 소유권’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청지기 직분

김용복 선생의 경세사상에서 청지기 직분은 경제활동의 기본원칙의 지위를 갖는다. 그는 그 원칙을 제시하면서 두 가지 점에 유의했다. 하나는 하나님의 정치경제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맡은 관리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의지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살림살이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경제주체들의 기능분화와 분업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전체의 살림살이를 정의와 평화와 생명 보전의 기틀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정치경제에서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규율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제까지의 경제 체제가 자연을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았지, “자연을 보다 존중하고 자연을 돌봄의 대상으로 여기는 호혜적 자연관”과는 동떨어져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이야기를 엮어 읽으며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정원을 이루는 동등한 참여자이고 인간은 이웃 피조물과 더불어 그 정원에서 ‘충만하고 온전한 정의와 샬롬의 삶’을 가꾸는 정원사로 부름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공동체를 정의와 평화가 숨 쉬는 생명공동체로 형성하고 가꾸는 직분을 맡아야 한다. 그는 이러한 통찰을 통하여 경제학과 생태학을 서로 결합하는 단서를 확보했고, JPSS 패러다임을 생명신학 패러다임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참여의 경제

김용복 선생은 참여를 경제활동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정치신학의 틀에서도 이 중요한 주제를 끊임없이 강조해 왔는데, 경세사상의 틀에서는 자본의 노동 포섭 구조를 해체하고 소비자의 객체화를 극복하는 참여경제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그는 참여경제와 관련해서 노동과 자본의 동등권에 입각한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이나 국민경제 차원의 소득분배 계획 등과 같은 참여경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정치경제의 실천론

김용복 선생은 하나님의 정치경제의 기본원칙들을 밝히는 동시에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실천론의 대강도 나름대로 제시했다.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현실에 적용하는 실천론의 핵심을 이룬다.

디아코니아

디아코니아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하나님과 민중의 계약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 계약의 파트너는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주인으로 섬긴다. 여기서 두 가지 준칙들이 도출된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권력도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고, 권력의 위계질서를 당연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디아코니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고 권력의 추구를 포기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남을 주인으로 세움으로써만 참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가리켜 ‘종의 도’(Doulologie)라고 불렀다. 종의 도는 “상대방을 영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노예된 상태에서 일으켜 세워 주인으로 삼고 주인이 되게 하는 관계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추구를 포기하고 남의 주체성을 세우는 디아코니아는 바로 이러한 종의 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그는 디아코니아 실천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전제라고 생각했다. 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추구되는 현실에서 민중의 살림살이 공동체는 지역적, 민족적, 세계적 차원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확보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민중이 살림살이를 경영하는 주체로 등장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경제 민주주의가 지역적, 국민적, 세계적 차원에서 어떤 제도적 형태들로 구현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두 가지는 분명하다. 첫째, 지역적, 국민적, 국제적 차원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들이 구축되어야 하고 경제운영에 대한 민중의 통제력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 민주주의는 민중이 살림의 경제를 꾸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주체적으로 구축하는 일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서 그는 민중이 경제적 살림살이의 주인이 되도록 기독교인들이 디아코니아의 실천에 나설 것을 역설했다.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koinonia, 나눔)은 종의 도를 수평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종의 도의 실천, 곧 디아코니아는 모든 것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와 분리될 수 없다. 거기서는 나누는 자와 나눔을 받는 자 사이에 ‘호혜적 연대의 원칙’이 수립된다.

“일방적인 섬김은 진정한 정의와 참여의 실천일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쌍방적 섬김이 진정한 참여의 주체를 세운다. 쌍방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통하여 진정한 사랑과 정의의 연대를 이룩할 수 있다.”

그러한 연대는 물질의 나눔, 삶의 경험의 나눔, 감정의 나눔, 생명의 나눔을 포함한다. 한 마디로, 삶의 전 영역에서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이는 코이노니아가 사회적 연대의 바탕이다.

김용복 선생은 섬김과 나눔의 통전적 성격을 강조했다.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의 종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선교적 실천의 내용이지만, 그 선교적 실천은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 안에만 머무를 수 없다. 세상이 그 실천의 영역이다. 그는 세상에서 섬김과 나눔을 펼쳐 공동체를 이루는 전망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재물을 가진 자는 재물로,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은 정치적 영향력으로, 지식을 가진 자는 지식으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자는 경험과 지혜로, 능력과 기술을 가진 자는 능력과 기술로, 농민과 노동자는 생산활동으로, 종교인은 종교적 진리로 이웃을 섬겨 일으켜 세워 주인이 되게 하고 이러한 섬김은 공동체 안팎에서 상호적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이 곧 나눔이 된다.”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펼치는 민중의 힘과 지혜

김용복 선생은 민중의 주체성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이 하나님의 정치경제의 실천 주체로서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다지기도 했다. 민중은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의 언어를 간직하고 그 언어를 통해 그들의 좌절과 갈망을 표현한다. 민중은 섬김과 나눔을 통해 동참동활체(同參同活體)로서 살아갈 힘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민중은 권력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민중의 힘을 북돋아 주는 민중의 지혜를 존중했다. 그는 경세사상을 펼치면서 아시아 종교들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는 민중의 슬기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도교에서 말하는 인간과 자연과 초자연의 ‘완벽한 조화’라든지, 불교의 승가, 유교의 태평성대, 정약용의 토지개혁안의 골자인 여전제(閭田制)를 진지하게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미국과 유럽의 자본이 정한 기준을 세계적인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를 거스르면서 그는 민중의 지혜에서 경세사상을 길어 올리려고 했다. 그는 민중의 힘이 민중의 지혜와 더불어 강화된다고 확신했고, 민중의 지혜가 경제사상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고 김용복 선생은 민중의 주체성에 대한 신학적 확신에 근거하여 세계화의 조건들 아래서 민중의 생명과 삶을 보장하는 경세사상과 기독교적 실천론을 제시했다. 그의 경세사상은 민중신학의 지평을 넓혔고,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을 한 차원 더 높였다. 그는 하나님과 민중이 맺은 계약의 현실성에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본원칙들을 도출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의 지양, 살림의 경제를 위한 청지기 직분, 참여의 경제가 그것이다. 세계 현실이 변하고 경제 상황이 바뀌면, 그러한 기본원칙들은 하나님과 민중이 맺은 계약의 현실성을 고려하면서 수정되고 보완될 것이다.

김용복 선생의 경제사상은 문제가 되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의 제약조건 아래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 모델을 구상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어지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가 영원한 안식에 들었으니,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과제가 되었다.

민중의 지혜가 민중의 힘을 강화한다는 고 김용복 선생의 확신을 나누는 사람들은 민중의 메시아적 실천에 동참하고 살림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다.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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