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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기준으로 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사야 50,4-9; 요한복음 17,25-33)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4.13 23:58
▲ Pietro Lorenzetti, 「Jesus enters Jerusalem and the crowds welcome him」 (Assis Frrescoes) ⓒWikipedia

예수께서는 언젠가 자신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13,9-15; 눅 8,9-10). 이것은 이사야의 예언과 연관이 있으므로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감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심판 실현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의 말씀과 행위들을 자주 예언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예언의 실현이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심판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오심이 심판의 실현이기도 했으니 뜻밖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주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여기에 예언된 심판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듣는 이들에게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서 비유의 의미가 항구적으로 닫혀져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께서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해주시기도 하고 성찰의 과정을 거쳐 깨달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명하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도 비유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들이 있고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비유가 닫힌 말씀이어서 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비유를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동시에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비유로 말씀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라고 예수의 약속은 심판의 종언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유는 두려움보다는 겸손을 요구하고, 몰이해의 답답함보다는 깨달음의 기쁨을 선물할 것입니다. 심판이 은총으로 바뀝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의 모습도 비유입니다. 예언자 스가랴는 이 비유로 새 시대를 선언합니다. 나귀타고 우리에게 오시는 왕, 그는 겸손하고 공의와 구원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의 상징이었던 전차와 군마를 없애고 활을 꺾음으로 전쟁을 폐지할 왕입니다. 세상의 왕들이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던 것들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나귀 타고 오시는 왕, 보잘 것 없고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조차 한 왕, 바로 그가 하나님께서 강한 힘을 추구하는 권력들에 맞서 그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내세운 왕입니다. 지금 그 분이 예루살렘을 향해 오고 계십니다. 꿈속에서나 그려보았음직한 사건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거기서 분명한 하나님의 활동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를 보고 외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환호 속에는 평화와 평등을 향한 그들의 오랜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새 세상, 새 시대, 새 사람! 참으로 오랜 미래입니다.

이 비유적 사건에서 모든 비유의 의미들을 드러내는 창이 열렸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비유로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할 때가 올 것이라고 하시며,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는 심판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그 그림자를 걷어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 오셨고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시는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으로 걷어낸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의 나귀 사건을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새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아직 다 알 수 없지만, 그 사랑의 사건은 예수께서 세상을 이긴 사건으로 환란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평화를 향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사건이 십자가를 향하는 길의 시작임을 압니다. 사람들은 폭력에 기반한 권력들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 길 끝에 십자가가 있음을 보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쁨의 호산나를 외치는 대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분노의 소리를 쏟아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십자가에 이르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또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나귀에서 십자가까지 그 길은 예수께서 세상을 이긴 길입니다. 평화로 세상을 이기고 평화의 세상을 이룰 이김입니다. 권력의 폭력에 맞서게 하는 이김입니다.

우리는 이 평화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준거로 삼을 때 거기에는 세상 권력들에 의해 일그러지고 상처입고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권력들은 이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이를 말할 수 없게 자갈을 물리려 하지만 평화의 눈을 이를 보고 평화의 귀는 이를 듣고 평화의 마음은 깨닫고 평화의 입은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서 일하며 평화의 손과 발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 응답하는 평화가 우리에게 있기를 빕니다.

이사야서에는 종의 노래로 불리는 몇 개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종의 노래는 일반적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그것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이해하게 하시고 들을 수 있게 하십니다. 학자는 아니어도 학자들 보다 더 깊이 더 넓게 볼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에게 실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상처받는 또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위협을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를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위기 가운데서도 굳게 서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인정해주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수치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하셨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시듯 예수에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때문에 세상을 이겼다고 당당히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서 종의 노래에 나오는 종의 모습을 볼 수 있는지요?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신뢰로 띠를 두른 종의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서도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든 어떤 일이 우리 앞에 있든 용기 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평화를 이룹니다. 안심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계십니다. 도전 하십시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도우심이 우리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이 기쁨 가운데 평화에 이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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